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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또 졸전' 허정무호, 월드컵 진출 '의지 없었다'



"한국은 수비 위주의 전술을 쓰는 북한보다 기술이나 전술적인 면에서 우위에 있으며 확실히 그들을 이길 수 있다. 이번 북한전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며 이번 승리를 통해 침체된 한국 축구에 활력을 불어 넣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

허정무 국가대표팀 감독은 북한과의 경기 직전 아시아 축구연맹(AFC) 공식 홈페이지에 게재된 인터뷰를 통해 북한전서 승리하겠다는 의지를 힘주어 표현했다. 이번 경기 승리로 ´축구장에 물 채워라´는 비아냥을 받던 한국 축구에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싶었던 것이 허 감독과 축구팬들의 간절한 바람.

그러나 뚜껑을 열었더니, 허정무호는 ´또 졸전´으로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그것도 북한과의 올해 네 번째 A매치서 4연속 무승부를 이어간 것. 무성의한 패스와 소극적인 움직임은 여전했고 경기에서 이기겠다는 선수들의 똘똘 뭉친 조직력과 투지도 없었고 북한 밀집 수비를 뚫으려는 공격수들의 대처는 여전히 어설펐다. 언뜻 보면 이번 북한전이 단순한 친선 경기인 것 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월드컵 본선 진출이 걸린 첫번째 실전 무대였다.

한국은 10일 오후 9시 중국 상하이 홍커우 스타디움서 열린 북한과의 2010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B조 1차전서 1-1로 비겼다. 후반 18분 김남일의 핸드볼 파울에 이은 홍영조의 페널티킥 슛으로 선제골을 내줬지만 5분 뒤 기성용이 가슴 트래핑에 이은 동점 발리슛을 꽂으며 1-1로 비겼다. 19세 막내 기성용이 골을 넣으며 위기의 한국을 구했지만 역설적인 관점에서 볼 때 허정무호는 이해할 수 없는 경기를 펼쳤다.

허정무호는 이번 북한전서 사활을 걸어야 하는 경기를 펼쳐야 했다. 중동 3개국(사우디 아라비아, 이란, UAE)이 포함된 ´죽음의 조´ B조에서 살아남기 위해 북한전 승리는 ´필수 요건´이었던 셈. 또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첫 경기부터 승점 3점을 따낸다면 세 번의 중동 원정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어 이번 북한전은 좋은 경기 내용으로 승리해야 마땅했던 경기였다.

이미 북한과 세 차례의 맞대결에서 비겼지만 그래도 많이 겨뤄봤던 상대였기에 이번 경기에서는 승리가 예상됐다. 일부 팬들은 그동안 졸전으로 일관했던 허정무호의 업그레이드를 기대했지만 경기 내용은 정반대의 양상으로 전개되며 이번에도 북한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5-4-1 포메이션의 북한은 원톱 정대세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밀집 수비진을 형성하며 한국과 상대했다. 미드필더진은 한국 수비 뒷공간을 노리는 침투 패스로 역습 기회를 노리는 등 ´선 수비 후 역습´ 작전을 쓴 북한의 한국전 전략은 대성공이었다. 특히 홍영조는 후반 18분 김남일과의 문전 경합 과정에서 그의 핸드볼 파울을 엮는 테크닉을 발휘하며 북한의 에이스 다운 진가를 발휘했다.

문제는 북한과 홍영조의 경기력에 한국 선수들이 올해 네번이나 농락당한 것. 한국 선수 어느 누구도 홍영조를 밀착 봉쇄하는데 실패하여 번번이 역습 기회를 허용했고 ´김남일-기성용´으로 짜인 더블 볼란치는 북한과의 중원 경쟁에서 끌려 다니는 불안한 경기를 펼쳤다. 특히 두 선수는 북한의 쉴세없는 역습을 끊지 못해 공격 과정에서 앞으로 치고 나가지 못했고 그 여파는 한국 공격에 힘이 실리지 못하는 요인이 됐다.

이번에도 밀집 수비를 뚫지 못한 것은 허정무호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허정무 감독은 ´김치우-조재진-최성국´을 스리톱으로 배치하고 김두현이 그 뒷쪽을 보조하는 공격전술을 구사했으나 네 명 모두 북한 수비진을 적극 공략하는데 실패했다. 네 번의 북한전 A매치 모두 스리톱으로 북한과 상대했지만 그들의 촘촘한 수비 진영을 뚫고 골을 넣는 공격수는 단 한명도 없었다.

이들은 골을 넣겠다는 적극적인 자세 없이 상대 수비에 막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고 패스 과정에서의 호흡까지 맞지 않았다. 특히 원톱 조재진은 문전에만 머물려는 ´뛰지 않는´ 움직임을 일관하며 자신의 고립을 부추겼고 그를 뒷받침하는 세 선수의 움직임도 부지런하지 않았다. 후반 15분에는 서동현과 이천수가 해결사의 임무를 맡아 투입됐으나 두 선수도 북한 골문을 위협하는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지 못해 골 넣는데 실패했다.

공격진으로 연결되는 후방의 패스 역시 매끄럽지 못했다. 전반 30분 김진규는 조재진을 향해 부정확한 롱패스를 날리며 북한에게 역습 기회를 내줬고 후반 초반에는 공을 돌리기만 하는 답답한 공격 전개를 일관했다. 더구나 한국은 이번 경기서 17-10으로 북한과의 슈팅 수에서 우세를 점했으나 유효슛 4개, 1골을 넣는 골 결정력 부진으로 국민들의 가슴을 더욱 졸이게 했다.

북한을 이기겠다던 허정무 감독은 전술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아무런 소득을 거두지 못했고 승점 3점 확보에 실패하면서 월드컵 본선행을 낙관할 수 없게 됐다. 이 날 경기는 선수 기량의 문제가 아닌 북한을 꺾겠다는 ´의지´의 문제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어떠한 경기에서든 승리를 따내겠다는 선수들의 정신력이 부족해 올해 4번씩이나 북한전서 승리를 거두지 못한 것.

이번에도 답답한 졸전을 펼쳐 승점 2점을 날려버린 허정무 감독. 만약 한국 대표팀이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 허정무 감독의 전술은 여론으로부터 '끝 없이' 비난의 도마 위에 오를 수 밖에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