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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맨유 무승부, 박지성은 부진하지 않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UEFA 챔피언스리그 32강 1차전 벤피카 원정은 '산소탱크' 박지성 선발 출전이 일찌감치 예고 됐습니다. 주중 경기에서는 박지성이 프리미어리그에 전념하는 애슐리 영에 비해 선발 출전 기회를 잡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큰 경기 경험에서도 애슐리 영보다 더 많은 것을 무시 못하죠. 하지만 결과는 1-1 무승부 였습니다.

박지성은 벤피카 원정에서 풀타임 출전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많은 출전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던 영향 때문인지 지난 시즌처럼 패스를 통해서 팀 공격을 풀거나 득점력에 의욕을 나타내는 감각이 무뎌졌습니다. 실전 감각 저하에 의해 경기를 지배하는 기질이 떨어진 것이 아쉽습니다. 잦은 무릎 부상을 감안하면 충분한 휴식은 어쩔 수 없지만 지난 시즌의 폼을 되찾으려면 시간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맨유가 챔피언스리그 체제에 접어들었고 다음 주중에는 칼링컵이 있는 만큼, 박지성이 실전 감각을 회복할 기회는 충분합니다. 그럼에도 박지성은 평균 이상 활약 했습니다.

[사진=박지성 (C) 맨유 공식 홈페이지 (manutd.com)]

'동점골' 긱스는 경기 내용상 부진했다. 박지성이 힘들 수 밖에...

맨유의 벤피카전 1-1 무승부는 결과보다는 과정이 아쉬웠습니다. 경기 내용에서는 맨유가 벤피카에 패한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점유율에서 61-39(%)로 앞섰을 뿐, 슈팅 4-14(유효 슈팅 2-5, 개), 코너킥 5-9(개)의 열세를 나타내며 상대팀보다 골 기회가 적었습니다. 포백을 전진 배치하면서 지공을 시도하는 '점유율 축구'를 했지만 상대 수비를 뚫기에는 패스의 세밀함과 선수들의 약속된 움직임, 활동량이 부족했습니다. 그 결과는 허리 싸움에서 벤피카에게 실질적으로 패했고, 젊은 수비수들의 실수까지 더해지면서 실점을 허용했습니다. 전반 42분 긱스가 스스로 창출했던 왼발 동점골이 없었다면 맨유는 벤피카전에서 패했을 겁니다.

그러나 긱스는 경기 내용상 부진했습니다. 4-2-3-1의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특유의 칼날같은 패싱력으로 팀 공격을 전개하는 임무가 주어졌을텐데, 가르시아를 비롯한 벤피카 미드필더들의 협력 수비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맨유의 공격이 중앙쪽에서 풀리지 못했던 문제점이 드러났습니다. 경기 중간에는 박지성-긱스가 자리를 바꾸는 분위기 전환에 나섰으나, 박지성의 움직임과 연계 플레이 관여가 많아졌을 뿐 긱스에게 많은 볼이 배급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긱스를 경기 내내 중앙에 포진하기에는 벤피카 미드필더들의 압박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긱스의 공격형 미드필더 전환은 결국 실패작 이었습니다.

맨유는 공격의 구심점이 없었습니다. 긱스가 중앙에서 틀을 못잡으면서 루니가 계속 밑으로 내려오고, 박지성 활동량이 늘어나고, 팀 공격이 오른쪽에 치우치면서, 비효율적인 롱볼이 올라오는 문제점이 드러났습니다. 특히 후방에서는 박지성쪽을 향해 롱볼을 띄울 정도로 패스 게임이 잘 안됐습니다. 박지성은 몇차례 공중볼 경합에서 상대 선수에게 밀렸지만, 평소에 높은 볼을 따내는 성향이 아님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롱볼이 수시로 올라온 것은 상대 박스 쪽에서 유기적인 공격 전개가 연출되지 않았음을 뜻합니다. 낮은 패스가 통하지 않으면 볼을 높게 띄울 수 밖에 없죠.

정확히는 맨유가 벤피카 압박에 고전했습니다. 맨유가 FC 바르셀로나를 상대하듯, 벤피카는 맨유를 상대로 한 수 접고 들어갔습니다. 4-3-3 체제에서 공격수들이 포어체킹을 펼치며 맨유의 빌드업을 늦추거나 커팅에 이은 역습을 시도했고, 볼이 벤피카 진영 가운데쪽으로 들어오면 포백과 미드필더 사이의 간격이 좁아지면서 윙 포워드가 수비에 가담했습니다. 맨유는 후방과 2선에서 무수한 패스를 시도하며 점유율을 늘렸을 뿐 벤피카 진영을 가르는 킬러 패스가 부족했던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긱스가 아무런 구실을 못하면서 맨유 공격이 암울하게 되었죠. 발렌시아쪽으로 볼을 밀어주거나 그것도 아니면 롱볼 이었습니다.

맨유의 4-2-3-1에서 긱스는 공격형 미드필더, 캐릭-플래처는 수비형 미드필더 였습니다. 그런데 긱스의 포지셔닝이 떨어지면서 캐릭-플래처가 전방쪽으로 패스를 공급하는데 어려움을 느꼈을 겁니다. 점유율 축구가 성과를 달성하려면, 유기적인 패스 워크가 가능하려면 볼을 소유한 선수가 패스를 줄 곳이 늘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맨유의 중앙 옵션들은 상대 선수들이 몰려있는 쪽으로 볼을 배급하는 답답한 경기를 펼쳤습니다. 긱스-캐릭-플래처의 시야가 좁았다는 것이죠. 세 명의 미드필더도 실전 감각 부족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마치 '1+1+1=2'가 된 듯한 느낌입니다. 반면 벤피카 미드필더들은 경기 내내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맨유 미드필더들을 괴롭혔죠.

결국 박지성은 맨유의 공격 밸런스 붕괴에 의해 힘든 경기를 펼쳤습니다. 동료 미드필더처럼 많은 출전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으니 스스로 경기를 바꾸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죠. 가까운 동료 선수에게 볼을 배급할 뿐입니다. 경기 감각이 쌓였다면 평소처럼 종패스로 공격 템포를 높이거나 동료 선수와의 원투패스를 통해서 골 기회까지 노렸을텐데 그 작업이 잘 안됐습니다. 그나마 에브라와의 호흡은 잘 맞았습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비롯한 경험있는 미드필더들을 너무 아낀게 아닌가 싶은 아쉬움이 듭니다. 리빌딩 때문에 젊은 선수들의 출전 시간이 많았던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요.

그럼에도 박지성은 소기의 임무를 달성했습니다. 벤피카 오른쪽 풀백이었던 막시 페레이라를 봉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경기 초반부터 페레이라와의 경합을 늘리면서, 왼쪽 측면에서 상대 선수가 소유한 볼을 여러차례 커팅하면서 벤피카 오른쪽 공격이 제 기능을 못했습니다. 막시 페레이라는 부지런한 움직임으로 팀의 오른쪽 공격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성향이지만 '수비형 윙어' 박지성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박지성이 벤피카전에서 풀타임 출전했던, 다른 동료 미드필더들에 비해 나았던 것은 수비였습니다. 자신의 특출난 수비력이 맨유가 벤피카 원정에서 더 이상 고전하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결과적으로 박지성은 벤피카전에서 부진하지 않았습니다. 개인 경기력이 지난 시즌보다 떨어졌을 뿐, 다른 동료 선수들도 폼이 안좋았고 팀 공격 전체가 풀리지 않았습니다. 벤피카에게 먼저 실점했을때는 에반스의 판단미스 및 느슨한 대인마크가 아쉬웠죠. 적어도 박지성은 자신에게 떨어진 임무 만큼은 충실히 해결했습니다. 19일 오전 0시(이하 한국시간) 라이벌 첼시전에서 선발 출전 기회를 잡을지는 모르겠지만, 첼시의 측면 중심 공격에 대응하려면 애슐리 영이 아닌 박지성이 필요하다는 개인적인 견해를 끝으로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