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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박지성 1호골, 산소탱크에게 위기는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일부 여론의 '호돌갑'이 문제였습니다. '산소탱크' 박지성이 선발 제외되거나 결장하면 '주전에서 밀렸다'는 근거없는 반응을 내비칩니다. 맨유가 스쿼드 로테이션 시스템을 쓰는 팀이자 BEST 11이 고정되지 않는 것은 이미 많은 축구팬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애슐리 영이 왼쪽 윙어로 선발 출전을 거듭했지만 어디까지나 팀 적응의 일환일 뿐입니다. 맨유가 애슐리 영에게 이적료 1600만 파운드(약 282억원)를 투자하면서 시즌 초반부터 많은 출전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박지성이 주전에서 밀렸다기 보다는 맨유가 애슐리 영에게 배려하는 것 뿐입니다. 나무가 아닌 숲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합니다.

물론 '아스널 킬러'의 선발 제외는 많은 축구팬들이 아쉬워 했습니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은 지난 23일 '영건 위주였던' 토트넘전 선발 전원을 아스널전에 출격 시켰습니다. 그 선수들이 맨유의 미래를 가꿀 존재들이죠. 박지성-에르난데스-긱스 같은 강팀 경기에서 충분히 검증된 선수들 보다는 젊은 선수들의 미래를 내다봤습니다. 그 선수들이 성장하려면 강팀과 싸우는 경험이 풍부해야 합니다. 이것이 맨유와 아스널의 차이점 입니다. 박지성의 경우에는 언제 어느 상황에서든 충분히 자기 몫을 할 수 있는 존재로서 퍼거슨 감독이 아끼고 싶었겠죠. 지금까지 산소탱크를 무리하게 기용하지 않았던 것이 그 이유입니다.

[사진=박지성 (C) 맨유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manutd.com)]

박지성의 아스널전 시즌 1호골은 '산소탱크에게 위기는 없었다'는 것을 일깨웠던 장면 입니다. 교체 투입된지 3분 만에 골을 터뜨렸죠. 애슐리 영과 패스를 주고 받는 과정에서 아스널 수비의 노마크를 틈타 왼발 슈팅으로 맨유의 6번째 골을 기록했습니다. 경기 종료 후 국내 여론에서 불거질지 모를 '박지성 위기론'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결정타가 됐습니다. 굳이 '위기'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도 박지성과 관련된 부정적인 언급을 되풀이하며 국민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그런데 박지성의 왼발 슈팅 한 장면이 산소탱크의 시즌 1호골을 축하하는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결국, 선발 출전 이전에는 활약상이 더 중요합니다.

특히 박지성 1호골은 애슐리 영과의 공존을 통해서 얻어낸 결과물 입니다. 박지성이 박스 정면으로 쇄도하기 위해 왼쪽에 있던 애슐리 영에게 패스를 밀어주면서, 다시 애슐리 영에게 패스를 받으며 왼발로 골을 넣었습니다. 포지션은 오른쪽 윙어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중앙에서 공격을 풀어갔으며 애슐리 영과의 호흡에 문제 없었습니다. 1호골 이후에는 오른쪽 측면과 최전방을 넓게 움직이고 패스 플레이에 관여하며 아스널 수비 진영을 흔들었습니다. 1:6으로 기진맥진했던 아스널 수비를 더 지치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맨유가 2골을 더 넣었죠. 박지성이 오른쪽 측면에서 중앙으로 이동하여 애슐리 영을 비롯한 동료 선수와 패스를 주고 받는 패턴은 앞으로 계속 될 겁니다. 특정 공간을 가리지 않고 움직이는 선수이기 때문입니다.

박지성의 골이 반가웠던 또 하나의 이유는 지난 시즌 8골을 넣었던 득점 감각이 여전함을 알렸습니다. 한때는 골이 부족했던 단점이 있었지만 지난 시즌을 계기로 득점력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공격력과 수비력이 골고루 뛰어난 윙어로 거듭났습니다. 그 기세를 이번 아스널전에서도 이어갔습니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많이 먹는다'는 속담처럼 주기적인 골 생산이 기대됩니다. 항상 끊임없이 발전했던 지난날의 노력이 얼마전 맨유와 세번째 계약 연장을 체결하는 기쁜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맨유의 고참급 선수입니다. 예년보다 젊어진 맨유의 공격 전개에서 기준을 잡아주는 것이 올 시즌 목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미드필더 전 포지션을 뛸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을 아낄 수 밖에 없습니다. 아마도 시즌 초반에는 박지성에게 많은 출전 시간을 제공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맨유가 1주일에 2경기를 치르기 시작하는 9월 무렵부터, 또는 본격적인 우승 경쟁이 시작 될 박싱데이를 전후로 박지성의 출전 시간을 점점 늘리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우리들이 잠시 잊고 있던 것은, 박지성은 무릎 부상이 잦았던 선수입니다. 맨유에서 오랫동안 뛰고 싶은 꿈을 이룰려면 무리한 출전이 도움되지 않습니다. 시즌 초반부터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면 시즌 중후반부터 힘들어질지 모릅니다. 특히 나니는 시즌 초반과 중반에 엄청난 체력을 소모하면서 시즌 막판 경기력 저하로 고전했습니다. 그 결과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선발 제외 였죠. 지금은 박지성에 대해서 '편한 마음'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또한 애슐리 영은 전반 48분 월컷이 아스널의 추격골을 넣을 때 수비력 약점을 노출 했습니다. 맨유 왼쪽 공간에서 누군가 아스널 침투를 사전에 대비해야 하는데, 당시 3:0으로 앞서면서 너무 수비 집중력이 떨어졌습니다. 애슐리 영이 애초부터 월컷을 놓친 상태였죠. 아스널을 상대로 2골 3도움을 기록했지만 실점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분명했습니다. 또한 나니는 여전히 출중한 공격력을 자랑하지만 수비력은 애슐리 영과 더불어 취약합니다. '부상중인' 발렌시아에 비해서 오른쪽 측면에서 박스쪽으로 밀어주는 볼 배급이 다소 길때가 있죠. 맨유가 수비력이 강한 팀과 경기할 때는 박지성이 첫번째 측면 옵션이 될지 모릅니다.

그리고 맨유는 후반 초반에 수비수-미드필더 사이의 간격이 벌어졌던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아스널전 이전에도 단점이 노출되었지만, 애슐리 영-클레버리-안데르손-나니로 짜인 미드필더 조합의 무게 중심이 앞쪽으로 올라가면서 포백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아스널이 속공으로 대응했다면 골 기회가 주어졌겠지만 '밋밋한' 지공으로 경기를 풀어가면서 맨유 수비에 읽히는 패턴을 일관했습니다. 파브레가스-나스리 같은 킬러 패스와 문전 침투에 일가견 있는 선수가 있었다면 후반전 양상은 달랐을 겁니다. 앞으로 맨유와 상대하는 팀은 그 약점을 노릴 겁니다.

애슐리 영-나니가 전형적인 공격형 윙어로서 개인 파괴력을 끌어올리는 유형이라면, 박지성은 맨유의 공수 밸런스를 잡아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적극적인 수비 가담으로 동료 수비수와 협력 수비를 펼치거나 상대의 공격을 1차 저지하는 패턴에 강합니다. 그리고 맨유가 공격을 시도할때 주변 선수와 잔패스를 시도하거나 또는 종패스로 동료 선수의 침투 기회를 돕습니다. 활동 폭이 넓고, 헌신적이며, 전술 이해도가 풍부한 선수이기 때문에 가능한 역할입니다. 그러면서 맨유는 '박지성 있음에' 짜임새 넘치는 경기를 펼치게 됩니다. 박지성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할 수 밖에 없지만 맨유 전력을 꾸준히 지탱하는 이점이 있죠. 그런 박지성의 올 시즌 전망은 밝을 것으로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