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축구

이청용 골절 부상, 한국 축구의 손실

 

"충분히 휴식을 했다. 최고의 컨디션으로 시즌을 맞이할거라는 생각에 기대 많이 하고 있다"

'블루 드래곤' 이청용(23, 볼턴)의 지난 7월초 출국 인터뷰 였습니다. 2011/12시즌에는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3년차 선수로서 성숙한 기량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이미 볼턴 잔류를 선언했지만 그동안 리버풀의 꾸준한 영입 관심을 받았기 때문에 어쩌면 올 시즌이 빅 클럽에 진출하는 절호의 기회였을지 모릅니다. 6월 7일 A매치 가나전 이후 휴식을 취하면서 그동안 지쳤던 몸과 마음을 해소했죠. 그가 경기를 뛰는 순간마다 한국 축구의 족적이 새롭게 쓰여졌던 것은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이청용의 새 시즌을 향한 기대와 희망은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벌어진 일이라 축구팬들의 충격이 큽니다. 지난 30일 저녁(이하 한국시간) 웨일즈 뉴포트에서 진행된 볼턴과 뉴포트 카운티(5부리그) 경기 도중 톰 밀러의 잘못된 태클에 의해 정강이가 골절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전반 중반 즈음에 왼쪽 측면에서 볼을 잡아 중앙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면으로 달려들던 밀러의 오른발 태클에 의해 정강이를 가격 당하며 그라운드에 쓰러졌습니다. 경기 종료 후 볼턴이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이청용은 최소 9개월 동안 경기에 뛰지 못한다"고 밝히면서 시즌 아웃이 유력합니다.

특히 밀러의 태클은 매우 잘못 됐습니다. 태클은 상대팀 선수가 소유한 볼을 따내는 것이 목적입니다. 상대와의 신체 접촉을 피하면서 안전하게 차단해야 파울을 범하지 않게 됩니다. 경기 흐름이 끊어지지 않기 위해서 무리한 태클은 위험합니다. 그런데 밀러의 오른발 태클은 이청용의 정강이를 향했습니다. 고의성 여부를 떠나서 사람을 다치게 한 것이 문제입니다. 태클의 기본에 위배되는 플레이였죠. 이청용 입장에서는 왼쪽에서 중앙으로 이동하며 빠른 가속력을 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밀러의 태클을 피하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자신의 축구 인생에서 절대로 기억하고 싶지 않을 장면이 되고 말았죠.

흔히 축구에서는 '살인태클' 이라는 말이 통용됩니다. 축구 선수의 과격한 태클을 비유하는 뜻이죠. '살인'이라는 단어는 나쁜 어감을 지녔지만 그만큼 축구에서 위험한 태클이 외면받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살인태클의 대표적인 피해자가 크로아티아 국적 공격수 에두아르두 다 실바(샤흐타르) 입니다. 에두아르두는 아스널 시절이었던 2008년 2월 24일 버밍엄전에서 마틴 테일러의 거친 태클에 의해 발목이 골절되면서 1년 동안 경기에 뛰지 못했습니다. 당시 부상 장면은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죠. 하지만 에두아르두는 그때의 충격 여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부상 이전의 기량을 회복하는데 실패하며 지난해 여름 우크라이나 리그로 떠났습니다.

에두아르두의 아스널 시절 동료였던 애런 램지도 피해자입니다. 2010년 2월 28일 스토크 시티전 당시 라이언 쇼크로스의 태클에 의해 발목이 부러지면서 9개월 동안 결장했습니다. 쇼크로스는 램지에게 사과하며 고의성이 없었다고 밝혔지만 잉글랜드 현지 여론의 비난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자신도 잘못된 플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죠. 어쩌면 쇼크로스의 살인태클은 당사자에게 운이 없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램지는 지난 5월 1일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에서 결승골을 넣기까지 부상 악령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부상을 딛고 이겨내기까지 오랜 시간 동안 자기 자신과 힘겹게 사투를 벌였죠. 그 과정을 거치면서 경기에 뛸 수 있는 기회를 잃었습니다. 그래서 살인태클이 무서운 겁니다.

밀러의 살인태클이 원망스러운 이유는 이청용이 부상 이전의 기량을 회복할지 장담 못합니다. 만약 부상 회복이 빠르더라도 무리하게 복귀하면 더 큰 부상을 부르거나 경기력이 떨어지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2008/09시즌 프리미어리그 웨스트 브로미치에서 뛰었던 김두현(경찰청)은 시즌 초반 무릎 인대 부상을 당하면서 6주 동안 결장했습니다. 상대 선수 태클이 아닌 몸을 돌리는 과정에서 무릎에 무리가 생겼죠. 몸이 충분히 회복되지 못한 상태에서 복귀하면서 부상 이전의 기량을 찾지 못한 끝에 주전 경쟁에서 밀렸습니다. 그리고 2009년 8월 수원으로 복귀했죠. 굳이 상대 선수 태클은 아니더라도 심각한 부상을 당하면 그동안 축구하면서 유지했던 리듬이 깨지면서 몸의 회복에 영향을 끼칩니다.

이청용은 최소 9개월 결장을 진단 받았습니다. 9개월 뒤에는 2011/12시즌이 끝날 무렵입니다. 문제는 그때 복귀할지 알 수 없습니다. 몸의 회복이 늦어지면 그라운드 복귀가 지연 됩니다. 축구팬 입장에서 빠른 쾌유를 바라겠지만, 충격적인 부상을 당했기 때문에 이른 복귀가 능사는 아닙니다. 이번 부상과 별개의 이야기지만, 지난 2~3년 동안 각급 대표팀과 소속팀을 오가며 힘든 일정을 소화했다는 점에서 그동안 휴식에 목말랐던 것이 사실입니다. 6월 A매치 이후 베트남에서 자선경기를 뛰었고 국내에서 휴식을 취했지만 충분하게 즐겼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심한 부상을 당하면서 장기간 공백이 불가피하며 실전 감각이 떨어지게 됐습니다.

더 큰 걱정은, 이청용 복귀가 예상되는 2012년 봄 또는 2012/13시즌에 볼턴 에이스의 위용을 발휘할지 알 수 없습니다.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그라운드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인간 승리를 재현할지 아니면 에두아르두의 전례를 밟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적어도 축구팬들에게 기대를 모았던 빅 클럽 이적설은 한동안 제기되지 않을 겁니다. 박지성에 이어 한국 축구의 저력을 세계 무대에 떨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불의의 부상을 당하면서 힘든 상황을 극복해야만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 과정이 선수 본인에게 고달플지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그동안 성공을 위해 질주를 거듭했던 이청용에게 낯선 순간이 찾아오고 말았습니다. 이청용 부상은 한국 축구의 미래적인 관점에서 손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박지성과 작별한 조광래호의 앞날 행보와 함께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