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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황제' 호나우두 은퇴, 안정환을 추억하다

 

 

지난 8일 A매치 루마니아전을 끝으로 축구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를 치렀던 '축구 황제' 호나우두(35). 지난 2월 은퇴를 선언한 뒤 4개월 만에 브라질 축구협회가 마련했던 자신의 고별 경기 였습니다. 전반 30분 교체 투입하여 17분 동안 활약하며 축구 황제의 마지막을 장식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호나우두의 은퇴는 지구촌 축구팬들이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죠. 저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저는 호나우두를 1996/97시즌 FC 바르셀로나에서 뛸때부터 알게 됐습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들어올 때, 집에서 숙제나 공부를 하던중에 심심할 때 TV에서 방영했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를 시청했습니다. TV에서는 호나우두가 출전했던 바르셀로나 경기를 많이 보여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당시에는 루이스 피구(바르셀로나 팬들의 주적)의 이름이 TV에서 루이스 피고로 불렸던 시절이었죠. 그때부터 유럽 축구와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호나우두가 펑펑 골을 넣는 모습을 보면서 유럽 축구에 친숙함을 느꼈습니다. 14~15년이 지난 지금도 호나우두를 향한 추억은 정말 각별했습니다. FIFA 축구 게임 시리즈에서 주로 호나우두 소속팀을 선택했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 이후의 호나우두 커리어는 많은 축구팬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인터 밀란, 레알 마드리드, AC밀란, 그리고 브라질 대표팀을 통해서 말입니다. 지난 2009년에는 브라질 코린티안스에서 활약하면서 한때 무시 못할 스탯을 쌓으며 남아공 월드컵 출전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전망됐습니다. 끝내 둥가 감독의 선택을 받지 못했지만 많은 축구팬들이 축구 황제의 마지막 월드컵 무대를 바라고 있었죠. 그런 호나우두는 2000년대 초반에는 부상으로 힘겨워했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득점왕(8골)에 오르고 브라질의 우승을 이끌며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지금도 역대 월드컵 최다 득점자(15골)로 이름을 남기고 있죠.

 

 

혹자는 호나우두를 발만 빠른 공격수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호나우두는 그 스피드를 완벽한 골 장면으로 만들 수 있는 선수입니다. 일시적이 아닌 '주기적'으로 말입니다. 스피드 뿐만 아니라 상대 진영에서 제대로 된 골 기회를 잡으면 어떤 형태로든 골을 넣기 위해 몸부림을 칩니다. 적어도 골을 넣겠다는 욕구는 제가 그때봤던 공격수들 중에서 가장 원기왕성 했습니다. 공격수의 본분은 골이지 그 이상의 존재가 개입되는 것은 곤란합니다. 저를 비롯한 다수의 축구팬들이 기억하는 호나우두는 '골을 잘 넣는 공격수' 였습니다. 발만 빠른 공격수는 지구촌에 매우 많습니다.

 

 

그렇다고 호나우두를 미화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느 존재든 과거의 추억을 회상할 때 강렬했던 임펙트를 떠올리는 것은 기본이죠. 물론 호나우두는 잘한 경기가 있을 것이고 안될 때도 있었을 겁니다. 프로야구의 '타격 7관왕' 이대호도 안타 못치는 날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기억속에서는 시즌 별 활약을 세세히 떠올리기 힘들 것입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피곤하죠. 결국에는 호나우두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됩니다. 골을 몰아쳤던, 꾸준히 골을 터뜨렸던, 적어도 골에 있어서는 지구상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활약상 말입니다. 축구를 최소 10년 넘게 좋아했던 분들 중에 대부분은 그런 마음을 느낄거라 생각 됩니다.

 

 

개인적 생각이지만, 호나우두의 루마니아전 은퇴 소식을 들으면서 안정환(35, 다롄 스더)을 머릿속에 떠올렸습니다. 안정환과 호나우두는 1976년생 동갑이었던 공통점이 있습니다. 각각 한국 축구, 세계 축구 역사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활약상까지 말입니다. 호나우두가 축구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를 치렀던 이야기를 접하면서 '이제 안정환을 축구 선수로서 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안남았다'고 느꼈습니다. 안정환이 얼마전 TV 인터뷰를 통해 은퇴를 염두하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죠. 2년 전에 은퇴를 생각했다는 멘트와 함께 말입니다.

 

 

제가 호나우두의 바르셀로나 시절 활약에 이끌려 유럽 축구를 좋아했다면, 1990년대 후반에는 안정환을 통해서 K리그 매력에 흠뻑 빠졌습니다. 물론 안정환만 바라봤던 것은 아닙니다. 수원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고종수, 천안의 슈퍼스타 신태용, 안양에서 우직한 모습을 보여줬던 최용수, 전북판 원투펀치 김도훈-박성배, 울산 자갈치 김현석 등 수많은 K리그 스타들을 보면서 르네상스 열기를 실감했습니다. 특히 수원과 부산의 경기때는 관중석 스탠드가 파란색(수원-부산을 상징하는 색깔. 당시 부산은 로얄즈 시절) 빛깔 이었습니다. 당시 라이벌이었던 두 팀의 대결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고 고종수와 안정환의 맞대결을 관심 있게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1999년 6월 12일 코리아컵 멕시코전. 한국 입장에서는 멕시코전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1년 전 프랑스 월드컵에서 멕시코를 '1승 상대'로 설정했으나 끝내 1-3으로 패했죠. 그때를 설욕하기 위해서 가용할 수 있는 최정예 멤버를 활용했고 안정환이 왼쪽 윙 포워드로 기용됐습니다.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음에도 기뻤던 이유는 안정환이 멕시코 수비진을 농락했기 때문입니다. 왼쪽 측면에서의 민첩한 움직임과 빼어난 개인기로 상대 수비 뒷 공간을 파고들며 한국 공격을 주도하는 농익은 활약을 펼쳤죠. 특히 그의 '블랑코 개인기(멕시코 블랑코가 프랑스 월드컵 한국전에서 두 명의 수비진 사이를 파고들때 두 발로 볼을 잡고 점프)'가 멕시코전에서 성공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블랑코 개인기로 한국에게 충격을 안겨줬던 멕시코를 상대로 말입니다.

 

 

안정환의 블랑코 개인기는 충격적 이었습니다. 한국이 프랑스 월드컵에서 탈락하면서 여론이 시끄러울 때, '우리나라는 블랑코처럼 개인기가 뛰어난 선수가 없다'는 사람들의 말이 많았습니다. 고종수와 윤정환 같은 개인기가 출중한 선수들이 존재했던 한국 축구였지만 문제는 대표팀에서 지속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안정환은 블랑코 개인기로 '한국 선수도 개인기를 할 수 있다'는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심어줬습니다. 상대 수비수를 따돌리는 개인기는 K리그에서도 계속 되었죠. 저는 그때 '우리나라 선수의 발재간이 이렇게 화려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2007년 한국을 방한했던 티에리 앙리가 안정환의 테크닉을 치켜 세웠던 것은 진심이었다고 봅니다.

 

 

축구팬 입장에서는 한국인 선수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성공 사례가 없는 것을 아쉬워합니다. 축구 황제 호나우두가 평정했던 리그 말입니다. 하지만 안정환이 전성기 때 스페인 진출이 이루어졌다면 그때는 어땠을지 궁금해집니다. 그때는 안정환의 개인기가 한국에서 범접할 수 없는 포스였죠. 1990년대 후반 저의 마음을 뜨겁게 사로잡았던 호나우두와 안정환을 잊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다른 선수들도 있었지만, 특히 두 명의 화려한 아우라는 축구가 예술적인 스포츠임을 저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런 호나우두는 얼마전 축구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를 치렀고 안정환은 은퇴를 앞두고 있습니다. 월드컵 영웅이자 A매치 71경기를 뛰었던 안정환이 언젠가 대표팀에서 화려하게 은퇴식을 치르는 날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