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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조광래호 중원 경쟁, 앞날이 흥미롭다

 

조광래 감독이 지휘하는 한국 축구 대표팀에서 선수 가용 폭이 넓은 지역을 꼽으라면 중원입니다. 4-1-4-1 포메이션에서 수비형-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할 수 있는 선수가 3명이지만, 총 8명의 선수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양상입니다. 이용래-기성용-김정우가 온두라스-세르비아전에서 선발 출전하여 중원을 책임졌고, 벤치에 있는 김재성-윤빛가람-신형민-고명진-구자철까지 가용할 수 있습니다. 오는 7일 가나전에서는 이용래-기성용-김정우가 주전으로 나설 것으로 보이지만 누군가의 깜짝 선발 출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용래-기성용-김정우는 조광래호가 4-2-3-1에서 4-1-4-1로 전환할 수 있었던 '중심 축' 입니다. 세 선수가 공격과 수비에 걸쳐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면서 대표팀의 짜임새 넘치는 경기 운영이 가능했죠.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은 기성용은 가운데 공간을 중심으로 활동 폭을 넓히면서 한국의 패스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이용래-김정우는 좌우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종방향으로 넓게 움직이면서 기성용 패스를 받아내거나, 주변 동료를 활용한 2차 패스를 전개하며 한국 공격의 다양화를 노렸습니다. 수비시에는 이용래-기성용-김정우가 허리에서 압박 및 포어 체킹에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죠. 포백의 수비 부담을 덜어주는데 성공했습니다.

세 선수의 활발한 움직임은 한국의 4-1-4-1이 A매치 두 경기 만에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던 원동력입니다. 어느 팀이든 중앙 미드필더들의 움직임이 많은 것은 기본이죠. 얼마전에 끝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는 FC 바르셀로나의 사비 에르난데스(11.950Km)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라이언 긱스(11.160Km)가 양팀에서 가장 많이 움직였던 중앙 미드필더들 입니다. 하지만 중앙 미드필더가 부지런히 활동하지 못하면 팀 전술이 의도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습니다. 수비형-공격형 미드필더에 국한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조광래호 4-1-4-1의 관건은 이용래-기성용-김정우가 지금의 페이스를 꾸준히 유지하느냐 입니다. 그런데 이용래는 수원의 K리그 및 AFC 챔피언스리그를 병행하면서 과부하 우려에 있으며, 기성용은 시즌중에 스코틀랜드와 한국을 오가는 체력적인 부담이 있습니다.(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나 8월 일본 원정까지) 각각 소속팀 수원과 셀틱에서 앞으로 수많은 출전 기회를 얻을 것임에 분명합니다. 빠듯한 일정 속에서 매 경기마다 최고의 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닙니다. 두 선수가 잘 버텨내기를 바라지만, 조광래호는 그렇지 않을때를 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백업 자원들이 중요합니다. 김재성-윤빛가람-신형민-고명진-구자철 같은 선수들 말입니다. 김재성은 이번 대표팀 명단에서는 수비수로 포함되었지만 조광래 감독에 의해 오른쪽 풀백으로 기용되는 것을 테스트 받기 위한 차원입니다. 포항 4-3-3의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준수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신형민은 수비형 미드필더지만 지난해 10월 일본전에서 윤빛가람과 함께 4-1-4-1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었습니다. 윤빛가람-고명진-구자철도 공격형 미드필더로 뛸 수 있는 자원들이죠. 신형민은 포항에서 원 볼란치 역할을 도맡기 때문에 기성용 백업이 가능합니다. 김재성과 더불어 포항의 K리그 상위권 질주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대표팀 검증이 필요한 것은 분명합니다.

구자철은 이용래-김정우에게 결코 뒤지는 선수가 아닙니다. 올해 초 아시안컵에서 한국의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며 득점왕까지 거머쥐었던 경험을 봐도 말입니다. 하지만 최근 폼이 안좋습니다. 독일 볼프스부르크 진출 이전까지 각급 대표팀에서 많은 경기를 소화했던 체력 저하가 아시안컵 토너먼트에서 리스크로 작용했고, 볼프스부르크에서는 넉넉한 출전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면서 실전 감각이 떨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르비아전에서는 왼쪽 윙어로 출전할 예정이었으나 컨디션 회복에 어려움을 겪은 끝에 이근호와의 선발 경쟁에서 밀렸습니다. 가나전 선발 출전을 장담하기 어렵죠.

윤빛가람은 조광래호 4-1-4-1의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적합한 유형이 아닙니다. 조광래호의 이전 포메이션이었던 4-2-3-1의 공격형 미드필더 또는 앵커맨에 어울리는 선수죠. 자신의 공격적 재능이 뒷받침하려면 수비 성향의 홀딩맨 또는 활동량이 많은 박스 투 박스와 공존해야 합니다. 수비력 및 피지컬이 약합니다. 지난해 조광래 감독과 함께했던 경남에서는 이용래(박스 투 박스)와의 호흡이 잘 맞았지만, 지금의 조광래호에서는 적극적인 수비 가담 및 투쟁적인 몸싸움이 필요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고명진을 주목합니다. 구자철 컨디션 저하, 윤빛가람 수비력 부족을 만회할 수 있는 카드죠. 신형민은 주 포지션이 수비형 미드필더, 김재성은 공격형 미드필더임에도 조광래 감독이 풀백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고명진은 4-4-2를 쓰는 서울의 중앙 미드필더와 윙어를 모두 소화할 정도로 활동량이 많으며 공격 전개가 뛰어납니다. 최근 서울에서는 상대 공격을 차단하는 수비 센스가 발달하면서 적극적인 압박이 가능해졌고 하대성의 수비 부담을 덜어줬습니다. 그 결과가 서울의 오름세로 이어지면서 조광래 감독이 고명진을 주목하게 됐죠.

그런 고명진은 지난달 25일 가시마 앤틀러스전에서 측면보다는 중앙에서 농익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전반 중반까지는 왼쪽 윙어로서 원투로 움직이는 패스 연결이 잘 안되었지만 제파로프와 자리를 바꾸면서 본래의 폼을 회복했습니다. 노자와-오가사와라가 주축이 된 상대 미드필더들의 침투 공간을 미리 선점하며 압박하는 플레이가 서울의 허리 장악으로 이어졌죠. 그 경기를 직접 관전했던 조광래 감독은 고명진을 이용래-김정우 백업으로 염두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가시마전 이전에 대표팀 발탁했지만) 8년 전 안양LG(현 FC서울) 사령탑 시절에 고명진을 영입하면서 인연을 맺었듯, 누구보다 고명진을 잘 알고 있는 감독입니다. 경남에서 직접 키웠던 이용래를 대표팀에 수혈했듯, 고명진의 앞날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만약 고명진이 서울에 이어 대표팀에서 일취월장 실력을 과시하면 조광래호 중원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 이전에는 고명진이 대표팀에서 출전 기회를 얻으며 검증 기회를 거치는 것이 더 중요하지만요. 이용래-기성용-김정우가 세르비아전을 기점으로 대표팀 중원을 주름잡았지만 2014년을 보장받은 것은 아닙니다. 구자철이 최상의 몸 상태를 회복하고, 윤빛가람이 경남에서 수비력 보완에 힘을 쓰고, 신형민-김재성이 포항에서 꾸준한 활약을 펼치면 중원 경쟁이 '중원 전쟁'으로 확대 될 수 있습니다. 조광래호 중원 경쟁의 앞날이 흥미로운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