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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결승전에서 최선 다했던 박지성에게 박수를

 

'산소탱크' 박지성(3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이 환한 표정으로 빅 이어(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장면은 결국 현실이 되지 못했습니다. FC 바르셀로나(이하 바르사)와의 결승전에서 선발 출전 가능성이 높았음을 감안할 때, 만약 맨유 우승이 이루어졌다면 유럽 진출 이후 가장 화려한 시즌을 보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챔피언스리그 선발 출전&우승을 위한 세번의 도전은 모두 실패로 끝났습니다. 맨유가 바르사에게 1-3으로 패하여 준우승에 만족했습니다.

그럼에도 박지성은 결승전에서 열의를 다했습니다.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려는 자세가 뚜렷했습니다. 특히 수비에서 말입니다. 왼쪽 측면과 중앙을 오가며 끊임없는 협력 수비를 펼쳤고, 상대 공격을 직접 차단하며 역습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적어도 전반전 만큼은 알베스 봉쇄에 성공했습니다. 또한 바르사는 왼쪽 풀백 아비달까지 공격쪽으로 쉽게 접근하지 못하면서 미드필더 중심의 패스 전개에 기대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그 여파가 오히려 맨유 중원 수비력이 취약해지는 문제점을 남겼지만 맨유 입장에서도 상대 좌우 풀백의 약점을 인지했을지 모릅니다. 적어도 전반전 만큼은 박지성의 폼이 좋았습니다.

박지성은 후반전에 중앙 미드필더로 변신하면서 맨유의 불안 요소였던 수비 약점을 해소하는데 주력했죠. 전반전에 비해 존재감이 부족했던 아쉬움이 없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맨유의 중원 수비력이 매우 취약했죠. 긱스의 수비력 불안이 바르사 파상공세의 빌미로 작용하고 말았습니다. 실전 감각이 떨어진 플래처 선발 투입은 조심스런 카드였습니다. 그나마 산소탱크가 없었다면 맨유는 대량 실점을 허용했을지 모를 일입니다. 중앙쪽으로 넘나드는 바르사 선수들을 마크하거나 존 디펜스에 주력하며 수비쪽에서의 역량을 늘렸습니다.

애초부터 박지성에게 활발한 공격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팀 자체가 역습이 잘 안풀렸습니다. 에르난데스가 피케-마스체라노에게 봉쇄 당했고, 발렌시아는 아비달 수비력을 넘지 못하면서 맨유의 공격 밸런스가 무너졌습니다. 루니가 공격 진영에서 활발히 움직이면서 전반 34분 동점골을 역어냈지만, 부스케츠를 비롯한 바르사 집중 견제를 받는 상황에서 팀 공격을 짊어지기에는 외로웠습니다. 박지성은 상대 공격을 끊으면서 역습 기회를 제공했지만 동료 구성원들이 도와주지 못하면서 맨유의 공격 완성도가 떨어졌습니다. 박지성이 지난 9일 첼시전에서 에르난데스에게 킬러 패스로 골을 엮어냈던 장면이 바르사전에서 나왔어야 마땅했지만, 문제는 에르난데스가 후방에서 패스를 받는 움직임이 능동적이지 못했죠. 상대 수비에게 막혔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박지성은 바르사전에서 풀타임 출전했습니다. 후반 31분에는 자신과 함께 중앙 미드필더를 맡았던 캐릭이 교체되고 스콜스가 조커로 나왔습니다. 퍼거슨 감독이 자신의 수비력을 믿겠다는 뜻입니다. 결승전에서 제 몫을 다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박지성이 후반전에 중앙 미드필더로 전환한 것은, 맨유가 산소탱크에게 수비력을 기대하겠다는 뜻과 밀접했습니다. 에르난데스-발렌시아-긱스 같은 부진했던 선수들과 무게감이 달랐죠. 또한 박지성은 양팀 선수 중에서 세번째로 많은 이동거리(11.056km, 1위 사비-2위 긱스)를 질주하는 엄청난 기동력을 발휘했습니다.

박지성의 2010/11시즌이 끝났습니다. 올 시즌 8골 6도움을 기록하는 눈부신 공격력 발전을 이루었으며 더 이상 '골이 부족한 윙어'가 아닙니다. 경기 상황에 맞게 슈팅-패스-돌파를 자유자자로 활용하며 과감한 공격을 즐기면서 다양한 장점을 지닌 윙어로 진화했죠. 수비형 윙어에서 만능형 윙어로 거듭났습니다. 시즌 후반에는 햄스트링 부상에서 성공적으로 복귀하면서 나니를 벤치로 밀어내고 주전을 확보했으며, 시즌 전체적 관점에서는 에르난데스와 성공적으로 공존했고, 올 시즌에도 변함없이 강팀 킬러로서의 맹위를 떨쳤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의미있는 성과를 이루었지만 맨유의 프리미어리그 우승 멤버로 활약했던 경험을 빼놓을 수 없겠죠.

물론 챔피언스리그 우승 실패는 선수 본인에게 아쉬운 일입니다. 2007/08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 첼시전에서 18인 엔트리에 제외되면서 동료 선수들의 우승 장면을 지켜봤던 한을 완전히 풀지 못했죠. 하지만 챔피언스리그를 논외해도 '이미 앞문단에서 언급했던' 의미있는 성과들을 달성한 것은 사실입니다. 별 다른 특이사항이 없으면 맨유와의 재계약이 유력하며 '맨유에서 오랫동안 뛰고 싶다'는 목표는 여전히 유효할 것입니다. 점점 경기력이 발전하는 활약상을 놓고 봐도 아직 맨유 전력에 기여할 것이 많습니다. 특히 대표팀 은퇴는 맨유에 전념할 시간이 많아지는 명분으로 작용하죠.

이러한 발전 과정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선발 출전으로 직결됐습니다. 비록 팀이 도와주지 못했기 때문에 적극적인 공격을 시도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서 상대 공격을 막아내려는 활약상을 봐도 그의 저력을 읽을 수 있습니다. 2010/11시즌을 성공적으로 치렀던 경험 및 내공이 바르사전에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하는 원동력이 됐죠. 그동안 월드컵 및 챔피언스리그에서 다져진 풍부한 경험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박지성과 발렌시아-에르난데스의 바르사전 활약상이 엇갈린 것은 경험이 아닐까 싶습니다. '38세' 긱스는 중앙에서 뛰기에는 수비력이 뒷받침하지 못했고, 젊은 나니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박지성 입지는 올 시즌에 굳건히 강해졌습니다.

박지성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다음 시즌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올 시즌에는 바르사가 유럽 챔피언이 되었지만, 1993년 챔피언스리그 개편 이후 지금까지 두 시즌 연속 우승에 성공한 팀은 없었습니다. 통계상으로는 바르사의 다음 시즌 우승이 힘듭니다. 맨유가 다음 시즌 유럽 제패를 위해 내실을 탄탄히 다지면 우승을 이룰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박지성이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 실패에 좌절해서는 안 될 이유입니다. 바르사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최선을 다한 것 자체만으로 다음 시즌을 향한 긍정적 가능성을 알렸죠. 앞으로 맨유에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박지성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