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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맨유 에르난데스, 중요한 순간에 빛난 헤딩골

 

'만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에르난데스를 영입 못했다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경기였습니다. 실제였다면 지금쯤 우승권에 존재하지 않았겠죠. 이번 경기에서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맨유 최전방의 믿을맨은 '작은 콩' 하비에르 에르난데스(23) 였습니다.

맨유가 에르난데스의 결승골에 힘입어 '다크호스' 에버턴을 제압했습니다. 23일 저녁 8시 45분(이하 한국시간) 올드 트래포드에서 진행된 2010/11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34라운드 에버턴전에서 1-0으로 승리했습니다. 에르난데스가 후반 39분 박스 중앙에서 안토니오 발렌시아의 오른쪽 크로스를 헤딩골로 밀어넣으며 맨유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이 골로 맨유는 승점 3점을 획득하며 리그 선두(21승10무3패, 승점 73) 자리를 굳건히 지켰으며 리그 우승이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산소탱크' 박지성은 2경기 연속 결장하면서 오는 27일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 살케04(독일) 원정 선발 출전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에르난데스, 에버턴 수비 저항을 이겨냈던 해결사 본능

맨유는 에버턴전에서 4-4-2로 나섰습니다. 판 데르 사르가 골키퍼, 오셰이-에반스-퍼디난드-파비우가 수비수, 나니-안데르손-깁슨-발렌시아가 미드필더, 루니-에르난데스가 공격수로 출전했습니다. 박지성-비디치-베르바토프-스몰링은 18인 엔트리에서 제외됐습니다. 에버턴도 4-4-2로 맞섰습니다. 하워드가 골키퍼, 베인스-디스탱-자기엘카-히버트가 수비수, 빌랴레치노프-로드웰-네빌-콜먼이 미드필더, 백포드-오스만이 공격수를 맡았습니다. 한달 동안 부상에 시달렸던 케이힐이 후반 시작과 함께 교체 투입하면서 복귀전을 치렀죠.

그런 맨유는 에버턴을 무조건 이겨야 했습니다. 지난 17일 FA컵 4강 맨체스터 시티전에서 0-1로 패했고, 20일 뉴캐슬 원정에서 0-0으로 비기면서 두 경기 연속 골이 없었습니다. 만약 에버턴 골망을 가르지 못했다면 3경기 연속 무득점이 되면서 살케04 원정에 임하는 부담이 커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에버턴전이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울 고비로 작용했죠. 에버턴은 최근 리그 7경기에서 5승2무를 기록하여 7위로 발돋움했고, 맨유 원정에서는 수비수와 미드필더들이 박스쪽을 지키는 밀집 수비망을 형성하면서 최소 승점 1점을 획득하려는 의지를 나타냈습니다. 이러한 에버턴의 수비 저항은 맨유 공격을 힘들게 했습니다.

맨유는 에버턴을 상대로 슈팅 21-5(유효 슈팅 6-3, 개) 점유율 60-40(%) 패스 600-418(개)의 우세를 점했습니다. 에버턴이 수비 모드를 일관하면서 맨유가 공격 지향적인 경기를 펼치는 것은 당연합니다. 문제는 에버턴 골망을 흔드는 작업이 어려웠습니다. 상대팀이 수비 공간에 많은 인원들을 배치했습니다. 에버턴 입장에서는 선 수비-후 역습이 당초의 전술이었으나, 백포드-빌랴레치노프-오스만-콜먼 같은 공격 옵션들이 맨유의 존 디펜스를 뚫지 못하면서 수비쪽에 주력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특징이 오히려 맨유의 공격 옵션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슈팅이 많았던 것에 비해 유효 슈팅이 적었던 것은, 상대 수비진을 파고들며 슈팅을 날릴 수 있는 빈 공간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뜻입니다.

[사진=에버턴전 1-0 승리를 발표한 맨유 공식 홈페이지 (C) manutd.com]

맨유는 FA컵을 제외한 최근 5경기 중에 4경기에서 루니-에르난데스 투톱을 활용했습니다. 에르난데스가 강팀과 약팀을 가리지 않고 지속적인 골 생산을 거듭하면서 '강팀에 약한' 베르바토프를 벤치로 밀어냈습니다. '쉐도우 루니-타겟맨 에르난데스' 투톱의 완성은 기존의 루니-베르바토프 투톱 불균형을 해소할 맨유 공격의 새로운 무기로 떠올랐죠. 그런데 루니-에르난데스 투톱의 등장은 맨유와 상대했던 에버턴의 견제 대상이 됐습니다. 에버턴은 수비시 미드필더들의 활동 반경을 중앙쪽으로 밀집시켜 루니-에르난데스에게 빈 공간을 내주지 않으려 했습니다. 포백과 미드필더 사이의 간격을 좁히거나 또는 동일 선상을 유지하며 루니의 침투 공간을 사전에 막아냈고, 디스탱은 에르난데스를 밀착 마크했습니다.

문제는 맨유가 루니-에르난데스의 견제를 풀어줄 또 다른 공격 옵션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나니가 에버턴 진영에서 꾸준히 연계 플레이에 참여했지만 스스로 박스쪽을 침투하는 공격력이 적극적이지 못했습니다. 발렌시아는 베인스의 오버래핑을 제어하는 역할에 비중을 두면서(맨유의 무실점 승리 원인) 전방위적인 공격을 펼치기에는 한계가 따랐죠. 그래서 나니가 박스쪽에서 볼을 따내거나 돌파를 시도하며 상대 수비를 농락했어야 정상이었는데 힘에 부치는 문제점을 나타냈습니다. 후반 17분에 교체된 것은 퍼거슨 감독에 의해 에버턴전 공격력이 안좋았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꼴이 됐죠. 나니 특유의 과감함이 결여된 것은 체력적인 문제를 꼬집을 수 있습니다.

중원도 문제였습니다. 안데르손-깁슨은 맨유의 붙박이 주전 선수들이 아닙니다. 루니-에르난데스-나니-발렌시아에 비해 무게감이 부족하죠. 그래서 공격을 풀어가는 감각이 떨어집니다. 그나마 안데르손은 전반전에 잘했습니다. 주변 동료 선수들과 함께 원투 패스를 비롯한 여러가지 형태의 볼을 주고 받으며 골 기회를 창출하는데 주력했죠. 그런데 후반전에는 이렇다할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맨유 공격이 측면에 의존하는 단조로운 형태가 나타났습니다. 안데르손은 기복이 심했고 깁슨은 팀 공격의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깁슨도 연계 플레이에 관여했지만 상대 수비 뒷 공간을 이용하는 원투패스 또는 대각선 패스, 빠른 원터치 패스를 통한 템포 향상이 되지 않으면서 여전히 패스 임펙트가 약한 단점을 드러냈습니다.

그럼에도 루니-에르난데스는 부진하지 않았습니다. 루니는 2선에 적극적으로 내려와 연계 플레이에 관여하며 안데르손-깁슨의 공격력 단점을 메웠고, 에르난데스는 후방에서 올라오는 볼을 받느라 최전방에서 나름 부지런히 뛰었습니다.(활동량이 많은 선수는 아니지만) 두 선수 사이의 패스가 여러차례 부정확했던 아쉬움을 남겼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맨유 미드필더들이 상대 밀집 수비에 막혀 제 구실을 못했고, 에버턴은 수비쪽에 많은 인원을 배치하며 루니-에르난데스가 집중 견제를 받기 쉬웠습니다. 그런 한계 속에서도 끝까지 자기 역할에 충실하면서 맨유가 공격 상황에서 집중력을 잃지 않고 끝까지 '1골'에 매달렸습니다.

맨유의 승리를 이끈 선수는 에르난데스 였습니다. 후반 39분 발렌시아의 오른쪽 크로스를 박스쪽에서 헤딩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박스쪽으로 공급되는 볼의 낙하 지점을 읽는 위치선정 및 탁월한 골 감각, 후반 막판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았던 끈기가 만들어낸 결승골 장면입니다. 그것이 맨유가 올 시즌 리그 우승이 유력해진 원동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박스 쪽에서 골을 해결지을 공격 옵션은 루니만 존재하지 않음을 올 시즌 에르난데스가 각인 시켰죠. 물론 베르바토프는 리그 득점 1위를 기록중이지만 약팀 경기에서 몰아 넣으면서 제대로된 평가를 받기 어렵습니다.(벤치 멤버로 전락한 이유) 반면 에르난데스는 루니와 더불어 해결사적인 기질이 넘쳤습니다.

만약 맨유가 에르난데스를 영입하지 않았다면 지난 시즌에 이어 올 시즌에도 '루니 원맨팀'이라는 이미지가 굳건했을지 모릅니다. 루니 한 명에게 의존하는 득점 패턴은 결과적으로 맨유 10번을 혹사시키는 우를 범했죠. 그것이 루니의 슬럼프 원인 이었습니다. 또는 루니가 지금까지 쉐도우를 맡아 베르바토프의 골 감각을 키우는 역할에 주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베르바토프는 상대가 수비 공간을 좁힐 때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강팀에 약한 이유) 에버턴전 같았으면 디스탱 견제에 시달리면서 페이스가 떨어질 가능성이 다분했습니다. 그런데 에르난데스는 헤딩골로 맨유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그의 킬러 본능은 에버턴전을 비롯한 다수의 중요한 승부처에서 빛을 발하면서 맨유에게 커다란 힘이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