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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첼시의 토레스 영입, 타이밍이 안좋았다

 

첼시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전 0-1 패배가 아쉬운 또 다른 이유는 '엘 니뇨' 페르난도 토레스의 골 침묵이 길어졌습니다. 토레스는 맨유전에서는 전반전에 박스 부근에서 상대 수비 뒷 공간을 파고드는 움직임을 활발히 시도한 것 이외에는 이렇다할 활약이 없었습니다. 지난달 2일 맨유전 부진까지 포함하면, 리버풀 시절에 맨유 킬러로 명성을 떨쳤던 선수같지 않았습니다. 첼시 이적 이후 9경기 모두 골이 없었습니다.

토레스는 지난 1월 이적시장 마감 당일 5000만 파운드(약 885억원)의 프리미어리그 최다 이적료를 기록하고 '블루스(첼시 애칭)'가 됐습니다. 지난 1~2시즌 동안 리버풀에서 굴곡이 심한 활약을 펼쳤고, 잦은 사타구니 부상 이력 때문에 5000만 파운드의 이적료가 과하다는 여론의 목소리가 제법 컸죠. 쉽게 풀이하면, 토레스 이적료는 거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토레스는 그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첼시의 새로운 에이스로 거듭나는 숙명에 직면했죠. 먹튀라는 비아냥을 듣지 않도록 말입니다.

[사진=페르난도 토레스 (C) 첼시 공식 홈페이지(chelseafc.com)]

그런 토레스 부진은 첼시 이적과 동시에 일부분 감지된 현상입니다. 드록바와의 공존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입니다. 두 선수 모두 타겟맨이기 때문에 서로의 역할이 겹칩니다. 토레스의 경우에는 빠른 순발력으로 상대 수비 뒷 공간을 무너뜨린 뒤 슈팅을 날리는 패턴에 최적화된 공격 옵션입니다. 그래서 쉐도우-윙 포워드가 어울리지 않습니다. 지난 시즌보다 경기력이 떨어졌던 드록바의 타겟맨 양보가 필요했지만 그렇다고 누군가를 보조하는 공격 전술에 익숙한 선수는 아닙니다. 아넬카는 2선 또는 측면에서의 활약이 가능하지만, 드록바와의 공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첼시는 토레스 효과를 거둘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토레스가 첼시 이적 후 9경기 무득점에 시달릴거라 생각한 분들은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리버풀 시절에 프리미어리그 최정상급 공격수로 맹위를 떨쳤고, 50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한 선수가 맞는지 의구심을 모으는 스탯입니다. 벌써부터 먹튀라는 단어가 운운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런 첼시는 셉첸코 악몽을 걱정해야 할 처지입니다. 셉첸코는 2006년 여름 이적시장 당시 프리미어리그 최고 이적료(3000만 파운드, 531억원)로 첼시에 입성했지만 기대 이하의 활약을 펼치며 끝내 먹튀가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첼시는 1월 이적시장에서 대형 공격수 영입이 불가피 했습니다. 기존의 말루다-드록바-아넬카로 짜인 스리톱(당시 4-3-3)이 시즌 초반에 반짝했을 뿐, 그 이후부터 움직임에 무게감이 실리지 않으면서 연계 플레이가 끊어지고 골까지 침묵을 지키는 동반 침묵에 빠졌습니다. 드록바-아넬카는 몇몇 경기에서 선전했지만 지난 시즌에 비하면 꾸준함이 부족했습니다. 한때는 프리미어리그 5위로 추락하면서 대형 공격수 영입의 필요성을 느꼈죠.

그런데 첼시가 영입한 선수는 리버풀의 달글리시 체제에서 공격력 회복을 위해 안간힘을 다했던 토레스 였습니다. 아브라모비치 첼시 구단주가 오래전부터 토레스 영입을 원했으며, 공교롭게도 셉첸코 영입 배경과 똑같습니다. 어떻게든 토레스를 데려오기 위해 투자했던 금액이 5000만 파운드라는 거액 이었습니다. 토레스 본인도 첼시 이적을 원했지만, 폼이 정상적으로 올라오지 못한 상태에서 팀을 옮긴 것은 한마디로 모험이었죠. 첼시 선수들과 시즌 중에 새롭게 호흡을 맞추며 팀 플레이에 적응하는 과제가 던져졌기 때문입니다.

토레스는 첼시 이적 후 리버풀-풀럼-맨유전에서 부진하면서 자신의 경기 패턴을 변화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2선 또는 왼쪽 측면으로 빠지면서 동료 선수와의 연계 플레이를 강화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죠. 골 침묵을 만회하기 위한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했습니다. 하지만 상대 수비 뒷 공간을 노리는 경기 패턴에 오랫동안 길들여지면서, 짧은 시간에 공격 스타일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첼시 같은 빠른 공격 템포를 주무기로 삼는 팀은 미드필더 및 공격수들의 민첩성이 빠릅니다. 토레스 본인은 부지런히 뛰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지만 풀타임을 빠르게 휘저을 수 있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멉니다. 결국에는 볼 터치가 세밀하지 못한 문제점이 나타났죠.

이러한 문제는 언젠가 해결될 수 있는 일입니다. 첼시 선수들과 꾸준히 호흡을 맞추면 점차 팀 플레이에 자신감을 얻으면서 자신만의 임펙트를 키울 수 있습니다. 토레스는 이미 프리미어리그에서 검증된 골잡이로서 상대 수비를 무너뜨릴 노하우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즌 중반에 다른 팀으로 이적하면서 그 팀만의 스타일에 적응하는 것은 벅찬 일입니다. 대다수 프리미어리그 팀들이 1월 이적시장에서의 선수 영입을 선호하지 않는 것도 조직력 문제와 맥락을 같이 합니다. 결과적으로, 토레스는 첼시에 적응하는 기간이 늘어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첼시가 토레스 적응을 키우기에는 공격력 약화에 직면하는 문제점이 나타났습니다. 그것도 시즌 후반에 말입니다.

결국, 첼시의 토레스 영입은 타이밍이 안좋았습니다. 대형 공격수 영입 필요성은 있었지만 그 선택이 토레스였다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비록 1월 이적시장에서 공격수 영입이 실패로 끝나더라도 여름 이적시장에서는 오랫동안 팀 공격을 지탱할 수 있는 옵션을 영입할 여유가 있었습니다. 또한 토레스가 리버풀의 달글리시 체제에서 성공적인 순항을 거듭할지, 아니면 호지슨 체제에서의 침체가 계속 될 지 여부를 바라보며 영입을 검토했겠죠. 물론 토레스가 시즌 막판에 갑작스럽게 폼이 살아날 가능성도 있겠지만, 첼시는 이미 토레스 부진에 따른 댓가를 치르고 말았습니다. 맨유와의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에서 말입니다. 토레스는 첼시 이적을 원했었지만, 겨울보다는 여름에 이적이 이루어졌으면 더 좋았을지 모릅니다.

토레스의 꿈은 챔피언스리그 우승 입니다. 그래서 2007년 여름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떠나 리버풀로 이적했고, 지난 1월에는 리버풀에서 첼시로 둥지를 틀었습니다. 리버풀 입성은 자신의 가치를 드높이는 계기가 되었지만, 첼시에서는 팀의 유럽 제패를 위해 많은 공헌을 해야 합니다. 이적료 5000만 파운드라는 기대치가 있죠. 그 꿈을 실현하려면 결국에는 본인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의 부진은 더 이상 되돌리기 어렵지만, 더 큰 선수로 발전하기 위한 일종의 성장 과정으로 생각하며 맹활약을 위해 힘을 쏟아야 합니다. 자신의 커리어에 오점을 남기지 않도록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