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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이청용, 위기론 넘긴 FA컵 결승골 통쾌했다

 

일부 여론이 걱정했던 '이청용 위기론'은 없었습니다. 최근 주전으로 기용되는 빈도가 적어지면서 팀 내 입지가 좁아진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었지만, 그동안 이청용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보냈던 축구팬들은 현 상황을 의연하게 바라봤습니다. 그동안 체력 저하에 시달렸고 아시안컵 차출 여파가 있었기 때문에 휴식이 불가피했죠. 그럼에도 이청용 맹활약은 많은 사람들이 간절히 원했던 희망 사항이었고, 이청용은 볼턴의 승리가 필요한 시점에서 에이스의 기질을 발휘했습니다.

'블루 드래곤' 이청용(23, 볼턴)이 시즌 3호골을 넣으며 축구팬들에게 기분 좋은 소식을 알렸습니다. 이청용은 12일 저녁 9시 45분(이하 한국시간) 세인트 앤드류 스타디움에서 진행된 2010/11시즌 잉글리시 FA컵 8강 버밍엄 원정에서 팀의 3-2 승리를 이끄는 결승골을 터뜨렸습니다. 후반 44분 골문 중앙으로 달려드는 과정에서 케빈 데이비스(K.데이비스)가 박스 오른쪽에서 헤딩으로 패스한 것을 헤딩 슈팅으로 받아내며 상대 골망을 갈랐습니다. 후반 15분 교체 투입하면서 볼턴의 공격 흐름을 주도했던 기세에 힘입어 통쾌한 결승골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볼턴은 전반 20분 요한 엘만더가 선제골을 넣으며 기분 좋은 출발을 했습니다. 전방 공간을 쇄도하는 과정에서 이반 클라스니치의 오른발 공중 패스를 박스 중앙에서 받아 왼발 강슈팅으로 골을 기록했죠. 전반 38분에는 카메론 제롬에게 동점골을 내줬으나 후반 20분 K.데이비스가 페널티킥 골을 작렬하며 2-1로 앞섰습니다. 후반 34분 케빈 필립스에게 또 다시 동점골을 허용했지만 10분 뒤 이청용이 절묘한 헤딩 슈팅으로 볼턴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11년 만에 FA컵 4강에 진출했으며, 오는 4월에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결승행에 도전합니다.

[사진=이청용 (C) 볼턴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bwfc.premiumtv.co.uk)]

이청용 있는 볼턴vs이청용 없는 볼턴...매우 달랐다

우선, 이청용은 버밍엄 원정에서 선발 제외 됐습니다. FA컵 8강이었기 때문에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이 의외였죠. 지난달 16일 FA컵 32강 재경기 위건전, 지난달 20일 FA컵 16강 풀럼전에서 풀타임 출전했지만 프리미어리그에서는 최근 4경기 연속 선발 제외 됐습니다. '임대생' 스터리지가 첼시 소속으로서 지난 1월 FA컵 64강전을 뛰면서 대회 규정상 잔여 경기에 출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청용은 리그에서 교체 출전을 통해 체력을 안배하면서 FA컵에 전념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버밍엄전 선발 제외는 지난 2년 동안 누적된 체력 저하 및 아시안컵 출전에 따른 컨디션 여파가 아직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여론에서는 이청용이 볼턴의 에이스로서 아시안컵 이전까지 매 경기 선발 출전했던 흐름에 익숙했습니다. 그래서 블루 드래곤이 아시안컵 이후 벤치를 지키는 횟수가 잦은 것이 낯설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코일 감독은 이청용이 좀 더 휴식을 취하기를 바랬습니다. 몸 상태가 정상으로 올라오지 않은 상태에서 실전에 투입되면 경기력이 떨어지고 부상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선수 보호가 불가피했죠. 또한 엘만더는 지난해 12월 부터 최전방에서 상대 수비의 집중 견제를 이겨내지 못하고 부진했습니다. 그래서 코일 감독은 이청용이 아시안컵에 차출되거나 또는 벤치에서 휴식할 때, 엘만더가 폼을 되찾도록 오른쪽 윙어로 전환시켜 경기력 향상을 위한 자신감을 심어줬죠. 이청용이 못한다는 이유로 주전 경쟁에서 밀린 것은 아닙니다. 휴식이 가장 필요했죠.

에이스는 팀이 승리를 필요로 할 때 빛을 발하는 존재입니다. 아무리 출중한 기량을 자랑하는 선수라도 상대팀의 거센 견제에 위축되면 몸 놀림이 무거워집니다. 하지만 에이스는 자신만의 클래스로 한 순간에 경기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기질이 넘쳐납니다. 볼턴에서 이청용 존재감이 특별했던 이유는 다른 동료 선수들에게 부족했던 기교-영리함-창의성, 예측 불가능한 경기 흐름을 연출하는 재치를 겸비했습니다. 코일 감독이 패스 중심의 축구를 정착했던 그 중심에는 이청용이 있었습니다. 이청용의 출전 유무에 따라 경기력이 엇갈렸던 것도 이 때문이죠. 그리고 버밍엄전은 이청용이 볼턴의 진정한 에이스임을 각인 시켰습니다. 이청용 결승골에 의해 볼턴이 4강에 진출했죠.

볼턴은 버밍엄 원정에서 4-4-2로 나섰습니다. 야스켈라이넨이 골키퍼, 로빈슨-케이힐-휘터-스테인슨이 수비수, 페트로프-홀든-무암바-엘만더가 미드필더, K.데이비스-클라스니치가 공격수를 맡았습니다. 스터리지가 규정상 출전할 수 없는 빈 자리에는 클라스니치가 대신했죠. 버밍엄은 4-2-3-1을 활용했습니다. 포스터가 골키퍼, 머피-큐티스 데이비스(C. 데이비스)-이라네크-파나비가 수비수, 머치-퍼거슨이 더블 볼란치, 보세쥬르-필립스-라르손이 2선 미드필더, 제롬이 원톱을 맡았습니다.

경기 초반에는 버밍엄이 공수 양면에서 활기를 띄었습니다. 후방에서 원터치 패스 및 종으로 향하는 움직임을 늘리면서 빌드업 전개가 빨랐습니다. 수비시에는 미드필더들이 볼턴 선수들에게 배후 공간을 내주지 않도록 커버링에 힘을 쓰거나 포어 체킹을 시도했습니다. 그래서 볼턴은 미드필더쪽에서 패스가 계속 끊어졌습니다. 홀든-무암바가 공격의 중심을 잡아주지 못했고, 페트로프가 파나비에게 봉쇄당하면서 K.데이비스-클라스니치 투톱이 볼을 터치할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버밍엄의 제롬도 휘터-케이힐에게 막히면서 2선과의 연계 플레이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볼턴의 공격 기회가 차츰 늘어나면서 버밍엄의 공수 밸런스가 끊어졌습니다. 그 흐름은 전반 20분 엘만더의 선제골로 귀결 됐습니다.

하지만 볼턴의 공격력은 1-0 이후에도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버밍엄이 전방 및 후방 간격을 좁히고 제롬이 2선쪽으로 내려오는 움직임이 많아지는 전술 변화를 취했죠. 선수 구성원이 종-횡쪽 활동 반경을 넓히면서 압박을 강화하며 볼턴 선수들이 침투할 기회를 허용하지 않는데 주력했습니다. 그래서 홀든-무암바-페트로프가 공격의 실마리를 풀지 못했으며, K.데이비스-클라스니치가 박스 중앙쪽에서 활동 반경이 겹치면서 버밍엄 수비수들에게 고립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전반 37분까지 패스 성공률 63-57(%)로 앞섰지만 오히려 버밍엄에게 끌려다녔죠. 버밍엄 수비가 전열을 가다듬는 타이밍보다 더 빠른 패스를 전개하거나, 상대 수비가 예측하지 못하는 공간을 파고드는 움직임이 무뎌지면서 맥이 빠진 지공에 의존했습니다. 이청용 없는 문제점에 직면했습니다.

볼턴은 전반 38분 제롬에게 동점골을 내줬고 후반 초반에는 소강 상태에 빠집니다. 그래서 코일 감독은 후반 15분 클라스니치-무암바를 빼고 이청용-마크 데이비스(M.데이비스)를 동시에 투입하는 승부수를 띄웠습니다. 미드필더진에서 공격 전개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이청용-M.데이비스 같은 날카로운 패스 워크에 일가견이 있는 테크니션들을 기용했습니다. 코일 감독의 전략은 적중했습니다. 이청용 투입은 경기 흐름 반전 및 동료 선수들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영향력을 안겨줬고, M.데이비스의 존재감은 홀든의 공격 부담을 덜어줬습니다. 그러면서 엘만더가 투톱 공격수로 올라가면서 이청용이 오른쪽 측면을 마음껏 질주했죠.

특히 이청용 투입은 볼턴이 승리하는 결정타가 됐습니다. 버밍엄에게 끌려다녔던 경기 분위기를 뒤엎었죠. 이청용은 후반 19분 박스 오른쪽에서 엘만더에게 옆쪽으로 스루패스를 연결하면서 상대 수비진의 배후 공간을 찾았습니다. 상대 수비가 비어있는 쪽으로 패스를 띄웠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버밍엄 수비진이 방어에 부담을 느꼈는지, 센터백 C.데이비스가 볼턴 공격수 K.데이비스를 뒷쪽에서 밀착 마크하면서 오른팔로 몸을 잡아당긴 것이 페널티킥으로 이어졌습니다. K.데이비스는 1분 뒤 페널티킥 골을 넣으면서 볼턴이 2-1로 앞섰죠. 그 골은 이청용이 연출한 골은 아니었지만, 후반 19분 스루패스를 통해 상대 포백의 라인 컨트롤이 문제있음을 블루 드래곤이 눈치챘을 것입니다.

볼턴은 2-1이 되면서 이청용 쪽으로 패스를 몰아주는 형태의 공격을 취했습니다. 버밍엄 수비를 무너뜨릴 돌파구가 필요했죠. 그런 이청용은 후반 22분 오른쪽 측면에서 드리블 돌파에 의한 역습을 펼치면서 엘만더쪽으로 크로스를 띄웠고, 5분 뒤에도 크로스를 시도한 것이 상대 수비수 몸을 맞고 코너킥을 유도했습니다. 후반 37분에는 박스 중앙에서 버밍엄 수비 3명이 가까이 달라붙는 즉시 왼쪽 빈 공간으로 스루패스를 띄우는 창의성을 발휘했습니다. 후반 42분에는 두 번의 대각선 패스로 볼턴의 공세 분위기를 끌어올렸죠. 자신의 패스를 엘만더가 받지 못했던 아쉬움에 개의치 않고 공격을 펼쳤습니다. 볼턴이 후반 34분 필립스에게 동점골을 허용했기 때문에 슈퍼 조커였던 이청용 입장에서 분발할 수 밖에 없었죠.

이청용이 인상 깊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수비 가담 이었습니다. 전반 24분 볼턴 진영 오른쪽에서 보세쥬르가 소유했던 볼을 커팅했던 것을 비롯, 버밍엄이 공격 분위기를 잡으면 재빨리 수비쪽으로 내려오면서 팀의 압박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적어도 올 시즌에는 수비력이 늘었기 때문에 버밍엄전에서 의기소침하지 않고 후방까지 챙겼습니다. 더욱이 버밍엄전에서는 스테인슨이 오른쪽 풀백으로 선발 출전하면서 역할 분담을 철저히 할 수 있는 명분을 얻었습니다. 최근에 부상 당했던 리케츠는 평소에 앞쪽으로 올라와서 공격 중심의 경기를 펼쳤기 때문에 뒷 공간이 불안했고 이청용의 후방 부담이 커졌습니다. 하지만 스테인슨이 부상에서 복귀한 것은 앞으로 이청용의 맹활약을 지탱하는 발판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청용은 후반 44분 골문으로 달려드는 상황에서 K.데이비스가 머리로 떨군 볼을 헤딩 슈팅으로 꽂아 넣으며 결승골을 작렬했습니다. 볼턴의 공격 흐름을 좌우하는 영향력에 자신감을 얻으며 볼턴의 승리를 이끄는 해결사 기질을 발휘했죠. 경기 내내 오른쪽 측면에서 활동하면서 골문쪽으로 다가선 것은 '골을 넣겠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볼턴이 경기 흐름을 장악했고 엘만더의 페이스가 떨어졌기 때문에 더 이상 오른쪽에 고정 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 이청용의 선택은 현명했으며, 자신의 위기론을 넘기는 통쾌한 결승골을 터뜨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