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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혼다보다 더 칭찬하고 싶은 나가토모 유토

 

일본이 아시안컵 우승의 주인공이 되면서, 대회 최우수 선수(MVP)는 혼다 케이스케에게 돌아갔습니다. 박지성(한국) 마크 슈워처(호주) 세르베르 제파로프(우즈베키스탄)를 제치고 아시안컵 최우수 선수의 영예를 안았죠. 일본의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아시안컵 5경기에서(사우디전 결장) 1골을 기록했지만, 8강 카타르전-4강 한국전-결승 호주전 맹활약 및 우승 프리미엄에 힘입어 개인상까지 획득하게 됐습니다. 지난해 6월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 활약까지 포함하면, 일본 축구의 아이콘을 굳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혼다와 더불어 주목해야 할 선수가 있습니다. 일본의 왼쪽 풀백으로 활약했던 나가토모 유토(25, AC 체세나) 입니다. 혼다가 공격적인 포지션에서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끌으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면 나가토모는 수비쪽에서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소화하며 성실하게 뛰었습니다. 혼다를 비롯 카가와 신지, 마에다 료이치 같은 주연급 선수들을 도와주는 조연으로서 일본의 아시안컵 우승을 공헌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본선 6경기 동안 흔들림 없는 활약을 펼쳤습니다. 적어도 이 포스팅에서는 숨은MVP를 조명하고 싶다는 점에서, 혼다보다는 나가토모를 더 칭찬하고 싶습니다.

나가토모의 클래스가 느껴졌던 아시안컵

나가토모는 2년 전인 2009년을 기점으로 일본 축구 대표팀에 없어선 안 될 존재로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코마노와의 주전 경쟁 끝에 붙박이 주전으로 도약하면서 오카다 감독의 신임을 받았죠. 같은 해에는 당시 소속팀 도쿄FC에서의 맹활약을 통해 일본 J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됐습니다. 그리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일본의 16강 진출을 이끌었고, 얼마 뒤에는 이탈리아 세리에A 체세나에 임대되어 유럽에 진출했습니다. 현지에서 붙박이 주전으로 자리잡은 활약상에 아시안컵 우승 커리어까지 더해졌으니, 한마디로 승승장구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런 나가토모는 빠르고 왕성한 기동력, 지칠 줄 모르는 체력 및 지구력, 원활한 경기 완급 조절을 앞세워 '볼을 예쁘게 차려는' 일본 선수들과 다른 특성을 겸비했습니다. 투박한 유형으로 볼 수 있지만, 오히려 나가토모가 대표팀에 자리잡고 있었음에 일본 축구가 고질적으로 부족했던 부분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일본은 그동안 측면이 약하고, 승부 근성이 부족하고, 고비가 되면 체력 및 페이스가 떨어지는 단점이 하나의 공식 같았습니다. 그런데 나가토모가 일본 대표팀에 등장하면서 오카다 감독의 '지지않는 축구'가 남아공 월드컵에서 탄력을 얻었습니다. 하세베-엔도로 짜인 더블 볼란치가 지금까지 흔들리지 않았던 것도 나가토모가 단단함에 힘을 불어 넣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개인기-점유율-패싱력은 아시아 최강입니다. 그래서 화려한 기술을 자랑하는 테크니션들이 즐비합니다. 혼다-카가와가 대표적이죠. 하지만 일본 축구는 남아공 월드컵을 기점으로 업그레이드 됐습니다. 기동력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획득했죠. 나가토모를 비롯해서 우치다-하세베-엔도-오카자키 같은 활동적인 측면에서 두각을 떨치는 선수들이 일본 대표팀 주축으로 거듭낫죠. 그 중에서 나가토모가 특별한 이유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상대 공격을 막아내거나 결정적인 공격 기회를 내주는 '임펙트'가 있기 때문입니다. 공간이 넓은 측면의 이점을 활용하여 경기 분위기를 뒤집을 수 있는 능력이 있죠.

대표적인 예가 결승 호주전 입니다. 연장 후반 3분 이충성(일본명 : 리 타다나리)에게 결승골 기회를 밀어줬던 선수가 바로 나가토모 였습니다. 왼쪽 측면 깊숙한 공간으로 이동하는 시점에 후방에서 패스를 받으면서, 자신의 마크맨이었던 윌크셔의 마크를 따돌리고 종방향으로 가속력을 발휘한 뒤 문전쪽으로 왼발 크로스를 띄웠습니다. 이충성이 박스쪽에서 노 마크였던 것을 알아챘으며, 왼발로 날렸던 크로스가 이충성에게 정확히 향했죠. 연장전이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지는 시간대였음을 상기하면 어느 시간대에서든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는 기질이 넘쳐흐릅니다. 또한 호주전에서는 일본 선수들중에서 가장 많은 15.47Km(호주 선수 포함 3위)를 질주하며 그라운드를 휘저었습니다.

4강 한국전에서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전반 35분 마에다의 동점골을 엮어내는 결정타 역할을 했죠. 혼다가 한국 진영 왼쪽에서 3명의 견제를 받고 있을 때, 바깥쪽에 있던 나가토모가 볼을 터치하면서 박스쪽으로 전력질주했고 그 과정에서 차두리의 뒷 공간을 뚫었습니다. 혼다의 볼에 시선을 맞췄던 차두리는 한 순간에 나가토모를 놓치고 말았죠. 결국 나가토모는 문전에서 마에다의 골을 어시스트 했습니다. 8강 카타르전에서는 일본이 0-1로 뒤지고 있을 때 적극적인 오버래핑으로 공격의 물꼬를 틀며, 상대 전방 압박에 위축되었던 일본의 패스 게임 분위기가 살아나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그 원동력은 일본의 3-2 역전승으로 이어졌죠.

그리고 나가토모는 수비에서도 발군 이었습니다. 악착같은 수비 견제를 취하며 상대 오른쪽 공격을 허용하지 않으려 했죠. 결승 호주전에서 홀먼, 4강 한국전에서는 이청용의 발을 묶었습니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카메룬-네덜란드-덴마크-파라과이 선수들과 경합하며 몸싸움에 밀리지 않았던 자신감이 아시안컵 토너먼트에서도 빛을 발했습니다. 170cm의 작은 체격을 이겨낸 웨이트 트레이닝 강화가 일본 대표팀의 중요한 무대에서 소금 같은 존재감이 됐습니다. 세계 정상급 풀백에 비하면 수비력의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겠지만, 상대에게 공격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심리가 다분했기 때문에 물러설 틈이 없는 수비력을 뽐냈죠.

물론 나가토모는 2010년 2월, 5월 한국전에서 부진했던 선수입니다. 2월 한국전에서 김보경, 5월 한국전에서는 박지성(당시 오른쪽 풀백 출전)에게 뚫리면서 일본의 패인 중에 하나로 거론되었죠.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남아공 월드컵 및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 축적된 경험과 내공에 의해 기량 향상에 자신감을 얻었죠. 그리고 아시안컵에서 일본의 우승을 기여하게 됐습니다. 경기력 발전을 위해 노력했던 흔적이 점점 빛을 발하는 셈입니다. 적어도 아시안컵에서는 나가토모의 클래스가 느껴졌습니다. 한국을 비롯 앞으로 일본과 경기하는 팀들은 나가토모를 철저히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가토모는 최근 FC 바르셀로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같은 유럽 빅 클럽의 영입 관심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물론 일본 언론에서 제기된 이적설입니다. 혼다-카가와 사례처럼 신빙성이 없죠. 체세나가 세리에A 강등권(20개 팀 중에 18위)에 속했기 때문에, 유럽 빅 클럽들의 주목을 받을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폼을 꾸준히 유지하고 발전시키면, 빅 클럽 이적까지는 장담할 수 없겠지만 유럽 무대에서 롱런할 수 있는 생존력을 기를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일본 축구에 대한 안좋은 시선이 있지만, 적어도 나가토모의 경기력 만큼은 딱히 흠잡을 것이 없습니다. 앞으로의 일본 대표팀 및 유럽 무대에서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싶은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