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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안데르손 동점골, 그래도 불안한 맨유 중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는 발렌시아전을 1-1로 마치고 C조 1위(4승2무)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토너먼트에 진출했습니다. 전반 32분 파블로 에르난데스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후반 17분 안데르손 올리베이라가 동점골을 넣으며 패배 위기에 몰렸던 맨유를 구했습니다.

특히 안데르손은 경기 종료 후 <스카이스포츠><맨체스터 이브닝뉴스>로 부터 팀 내 최고 평점(각각 9점, 8점)을 기록했습니다. 현지 언론의 평점이 골을 터뜨린 선수에게 지나치게 많이 부여될 때가 있지만 그렇다고 안데르손의 경기력이 나빴던 것은 아닙니다. 경기 상황마다 발렌시아 진영 정면으로 치고 드는 움직임을 앞세워 맨유 공격의 물꼬를 트는 활약을 펼쳤습니다. 볼 배급 과정에서의 조급함이 아쉬웠지만, 극심하게 부진했던 시즌 초반보다 폼이 올라온 것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맨유는 발렌시아와의 중원 싸움에서 밀렸습니다.

그 이유는 마이클 캐릭이 부진했기 때문입니다. 전반 32분 맨유 진영에서 동료 선수에게 패스를 시도할 때 초리 도밍게스에게 볼을 빼았겼고 그 과정이 파블로의 선제골로 이어졌습니다. 발렌시아 선수들의 움직임을 살펴보지 않고 뒷쪽으로 돌아섰던 것이 패스미스가 되어 실점의 빌미로 작용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상대 압박에 맥을 못추면서 공수 양면에 걸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패스의 날카로움이 이전보다 떨어졌고, 상대 미드필더들에게 뒷 공간을 쉽게 허용했고, 드리블까지 간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안데르손이 부지런한 움직임으로 그라운드를 폭 넓게 누비면서 캐릭의 부진이 어느 정도 커버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데르손으로는 역부족 이었습니다. 발렌시아 중원을 맡은 알벨다-바네가 조합이 캐릭의 동선을 철저하게 파악하고 견제를 가했기 때문이죠. 물론 캐릭은 양팀 선수들 중에서 가장 많은 이동 거리(11.755km)를 뛰었지만 전체적인 움직임이 맨유의 경기 분위기를 좌우하는 효율성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상대 압박을 피하면서 이동 거리가 많을 수 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경기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실수가 잦았습니다. 

물론 축구 선수는 매 경기를 잘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사람도 실수할 때가 있는 것 처럼, 축구 선수 입장에서도 몇몇 경기는 침체된 활약을 일관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캐릭은 슬럼프에서 탈출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지난 시즌부터 경기력 저하에 시달리며 이적설 및 방출설까지 직면할 정도로 팀 내에서의 입지가 위태로웠기 때문에 올 시즌에는 변화된 모습을 보였어야 했습니다. 최근에는 서서히 폼을 회복하면서 폴 스콜스와 더불어 맨유의 프리미어리그 3연패를 이끌던 포스를 재현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발렌시아전에서 부진하면서 맨유가 또 고민에 빠지게 됐습니다.

비록 안데르손은 발렌시아전에서 골을 넣었지만, 캐릭과 더불어 그동안 팀에 꾸준한 공헌을 하지 못했습니다. 2008/09시즌 부터 경기력 저하로 신음하면서 '제2의 스콜스'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몇몇 경기에서는 수준급의 맹활약을 펼쳤지만 한 번 부진을 겪으면 그 이후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올 시즌 초반에는 안데르손의 선발 출전 유무에 의해 맨유의 경기력이 좌우되기도 했습니다. 안데르손이 선발 출전하면 맨유가 고전하고, 그렇지 않을때는 맨유가 선전했죠. 그런 안데르손은 발렌시아를 상대로 동점골을 터뜨렸지만 그 포스가 계속 이어질지는 의문입니다.

캐릭에 비하면 안데르손은 이적(실질적으로는 방출성 이적) 가능성이 조금 낮습니다. 맨유의 중앙 미드필더들과 동선이 다른 차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진 형태의 움직임으로 볼 배급을 시도하거나 돌파를 노리는 성향으로서 맨유의 공격 분위기를 다채롭게 바꿀 수 있는 역량이 있습니다. 플레이메이커 출신의 중앙 미드필더로서 경기 컨트롤에 대한 기본적인 센스가 풍부하고, 올해 22세 선수라는 점에서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안데르손의 입지가 불투명한 이유는 기복이 심한 약점, 멘탈 문제, 느슨한 경기력을 모두 아우르는 노력 부족 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죠.

더욱 아쉬운 것은, 맨유 중원에서 믿을만한 활약을 펼칠 선수가 플래쳐 한 명에 불과합니다. 꾸준함, 실력, 90분 동안의 공헌도를 놓고 보면 플래쳐 만큼 제 몫을 다할 수 있는 맨유 중원 옵션은 없습니다. 물론 공격력에서는 스콜스가 플래쳐보다 더 좋은 자질을 겸비한 선수입니다. 하지만 스콜스는 2011년이 되는 다음달에 37세가 되며, 이미 체력적인 문제점에 직면하여 활동 폭이 좁아지고 여전히 거친 태클을 남발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올 시즌 종료 후 은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맨유가 후계자 문제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플래쳐는 스콜스와 스타일이 세부적으로 다른 선수로서, 캐릭-안데르손의 비중이 막중합니다. 하지만 두 선수는 맨유 중원에서 계륵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그리브스의 부상 악몽-깁슨의 잦은 결장은 맨유의 중원 불안을 키우는 결정타로 작용합니다. 특히 하그리브스는 올 시즌 종료 후 맨유와 계약이 종료되는데 현 시점에서는 올드 트래포드를 떠날 것으로 보입니다. 퍼거슨 감독이 하그리브스의 재계약을 자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년 넘게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더 이상 실전에 맡길 수 없는 상태죠. 깁슨 같은 경우에는 23세의 영건이라는 매리트가 있지만, 냉정히 말해 중거리슛 이외에는 특출난 장점이 없습니다. 공격 센스 및 볼 배급, 연계 플레이, 위치선정 등 여러가지 부분들이 부족합니다. 맨유에서 이렇다할 출전 기회가 없다는 점에서 1군 경기에 얼마만큼 중용을 받을지 의문입니다.

맨유는 프리미어리그와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목표로 하는 빅 클럽입니다. 그런 네임벨류를 맞추기 위해서는 모든 포지션에서 빈틈없는 활약이 요구됩니다. 하지만 팀의 허리를 상징하는 중원은 대표적인 취약 포지션 입니다. 지금의 중원 문제를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적 시장에서의 선수 영입에 눈을 돌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스콜스 은퇴 여부는 논외로 치더라도 하그리브스 계약 만료가 눈앞에 다가오는 현실이기 때문에 반드시 뉴 페이스를 데려와야 합니다. 그렇다고 캐릭-안데르손-깁슨 같은 불안한 구석이 있는 선수들을 플래쳐와 공존하기에는 무리입니다. 퍼거슨 감독이 맨유의 중원 문제를 어떻게 슬기롭게 풀어갈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