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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박지성 맹활약 돋보였던 맨유의 발렌시아전

 

'산소탱크' 박지성(2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이 발렌시아전에 풀타임 출전하여 팀 공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인상깊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시즌 6호골 달성에 실패했지만 0-1로 밀렸던 맨유의 반격을 직접 연출했다는 점에 무게를 둘 수 있었던 경기였습니다.

박지성의 맨유는 8일 오전 4시 45분(이하 한국시간)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2010/11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32강 C조 6차전 발렌시아전에서 1-1로 비겼습니다. 전반 32분 마이클 캐릭의 패스미스가 초리 도밍게스의 패스에 이은 파블로 에르난데스의 선제골로 이어졌습니다. 동점골을 노렸던 맨유는 후반 16분 박지성이 아크 중앙으로 접근하는 과정에서 중거리슛을 날렸던 것이 상대 골키퍼 선방에 막혔고, 근처에 있던 안데르손 올리베이라가 세컨슛으로 동점골을 기록했습니다. 이로써, 맨유는 C조에서 4승2무를 기록하여 조 1위로 16강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체력 아꼈던' 맨유, 캐릭의 패스미스로 선제골 허용

맨유는 발렌시아전에서 4-4-2를 구사했습니다. 아모스가 골키퍼, 파비우-비디치-퍼디난드-하파엘이 수비수, 박지성-안데르손-캐릭-나니를 미드필더, 루니-베르바토프를 공격수로 출전 시켰습니다. 에브라-스콜스-판 데르 사르-오셰이 같은 주력 선수들은 18인 엔트리에서 제외되었고 플래쳐가 발렌시아전 후보 명단에 있었는데, 오는 14일 아스날전을 겨냥한 체력 안배라 할 수 있습니다. 박지성은 지난달 28일 블랙번전 이후 10일 동안 경기에 뛰지 않았기 때문에 발렌시아-아스날전에 동시 출전할 수 있는 명분이 실렸죠.

그런 흐름 때문인지, 맨유는 경기 초반부터 체력을 아끼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전반 20분 점유율 42-58(%), 이동 거리 26.756-27.375(Km). 패스 129-166(개)로 밀렸지만 이것도 하나의 '전략' 이었습니다. 이미 챔피언스리그 16강 진출을 확정지었고, 발렌시아와의 홈 경기였다는 점, 그리고 아스날전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반전에는 자기 진영에서 웅크리는 형태의 전술적 움직임을 취하면서 발렌시아의 오버 페이스를 유도했습니다. 후반전에 승부수를 띄우겠다는 것이 맨유의 전략이죠. 물론 발렌시아가 경기 분위기를 주도했지만 역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맨유가 의도하던대로 경기가 풀렸습니다.

전반전의 관건은 수비였습니다. 좌우 풀백을 맡는 '쌍둥이 형제' 파비우-하파엘이 발렌시아 측면 공격을 담당하는 알바-파블로를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돌파를 차단했죠. 비디치-퍼디난드 센터백 조합은 아드리스-도밍게스 투톱의 발을 묶었고, 미드필더진이 포백과의 간격을 좁히고 공간을 커버하는데 주력하여 무실점 경기를 의도했죠. 특히 미드필더들은 거친 몸싸움을 펼치기보다는 상대 선수들이 공격할 수 있는 예상 지점을 미리 선점하고 커버 플레이를 펼치며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줄였습니다. 상대의 볼 배급을 차단하면 그 즉시 역습 형태의 공격을 취하며 발렌시아 진영을 위협했습니다. 역습을 가다듬었다는 것은 아스날전을 겨냥한 포석 이었습니다. 아스날 수비가 역습에 약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맨유는 전반 32분 예상치 못한 실점을 허용했습니다. 캐릭의 패스미스가 빌미로 작용했죠. 캐릭은 맨유 진영 한 가운데에서 동료 선수들에게 패스를 밀어줄 때 볼을 뒷쪽에서 간수했던 것이 도밍게스에게 커팅 및 역습을 당했고, 그 과정에서 도밍게스가 문전 쇄도에 이은 오른쪽 패스를 통해 파블로가 맨유 골문쪽으로 달려들며 선제골을 터뜨렸습니다. 발렌시아의 중앙 공격을 차단하며 경기를 컨트롤했던 캐릭의 실수는 맨유가 어렵게 경기를 풀어가는 결정타로 작용했습니다. 맨유는 발렌시아전에서 최소 비겨야 C조 1위가 확정되기 때문에 그 이후 상황에서 어떻게든 골을 넣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특히 맨유 선수들의 골 과정이 아쉬웠습니다. 전반 8분 안데르손이 루니의 패스를 받아 문전으로 달려들며 슈팅을 날렸던 것이 골키퍼 과이타의 선방에 막혔고, 16분에는 베르바토프가 문전에서 슈팅을 기다렸던 박지성쪽으로 로빙패스를 연결했던 정확도가 미흡했습니다. 30분에는 박지성이 문전 쇄도 과정에서 루니의 왼쪽 돌파 및 크로스를 받아 오른발 논스톱 슈팅을 날렸지만 볼은 상대 골키퍼 정면으로 향했습니다. 35분에는 루니가 발렌시아 왼쪽 진영에서 오른발로 감아찬 슈팅이 크로스바를 강타했습니다. 수비에 무게감을 두는 경기를 펼쳤기 때문에 공격 과정에서 확실하게 상대 골망을 흔들어야 하는데 골운이 따르지 못했습니다.

맨유가 직면한 또 다른 문제는 발렌시아의 수비 조직력이 견고했다는 점입니다. 발렌시아 선수들은 맨유 공격 옵션들의 동선 및 특징을 철저히 파악하며 '맞춤형 수비 전술'로 대응했습니다. 마티유가 나니를 찰거머리처럼 따라붙었고, 루니의 이타적인 움직임에 끌려다니지 않으면서 앞 공간을 커버하는데 주력했고, 코스타는 베르바토프를 봉쇄했습니다. 알벨다-바네가 중앙 미드필더 조합은 안데르손-캐릭의 공격 전개를 끊는데 주력하여 허리 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맨유에게 몇 차례 빠른 역습을 허용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포백 및 허리진이 맨유 공격에 임기응변하게 대처했기 때문에 전반전에 골을 허용하지 않는 명분을 마련했습니다. 다만, 박지성은 왼쪽 측면과 중앙을 프리롤 형태로 움직였기 때문에 발렌시아의 견제를 이겨냈죠.

박지성이 경기 분위기 뒤집었던 후반전, 안데르손 동점골 기록

맨유는 후반전에 공격 옵션들의 위치를 앞쪽으로 끌어 올렸습니다. 발렌시아전을 최소한 비겨야 C조 1위가 확정되기 때문에 동점골을 넣는데 주력했죠. 후반 1분 루니, 3분 나니의 크로스를 통해 문전에서 한 번에 골을 노리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4분에는 캐릭의 왼쪽 논스톱 패스가 발렌시아 박스 바깥 근처까지 연결됐죠. 루니의 크로스가 베르바토프의 헤딩슛으로 이어진 것을 제외하면 결정적인 슈팅 과정은 없었지만 맨유의 공격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5분에는 '부상이 의심스런' 퍼디난드를 빼고 스몰링을 교체 투입했지만 승부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변화는 아니었습니다.

그런 맨유는 후반 13분 점유율에서 52-48(%)의 우세를 점했습니다. 전반전에 수비쪽으로 움츠려든 경기를 펼쳤기 때문에 후반전에 승부수를 띄워야 하는 입장이었고, 0-1로 밀렸던 경기 흐름을 만회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발렌시아 골문쪽으로 접근하는 볼 배급이 중앙이 아닌 측면쪽에 의존하면서 공격 패턴이 단조로워지는 약점을 노출했습니다. 안데르손-캐릭 조합이 여전히 발렌시아와의 허리 싸움에서 밀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롱볼까지 시도했지만 상대 수비에 끊기면서 이렇다할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맨유는 경기 내내 측면과 중앙을 분주하게 번갈아갔던 박지성의 전술적 역량을 최대화 시키는 변화를 택했습니다. 박지성이 골문 중앙쪽으로 비집고 들어가 상대 수비진 사이에서 빈 공간을 창출하거나, 동료 선수들이 박지성쪽으로 침투 패스를 연결하는 형태의 공격을 노렸습니다. 그런 박지성은 후반 15분 박스 왼쪽에서 중앙쪽으로 볼을 몰고 가면서 상대 수비수 세 명을 제치면서 근처에 있던 루니에게 패스를 밀어줬고, 루니가 터닝슛을 날렸으나 볼은 크로스바 바깥을 스쳤습니다. 17분에는 하파엘이 하프라인 부근에서 상대 공격을 끊고 드리블 돌파로 역습을 펼쳐 왼쪽에 있던 박지성에게 패스를 날렸습니다. 그래서 박지성은 아크 중앙쪽으로 접근해서 중거리슛을 날렸는데 상대 골키퍼 선방에 막혔던 것이 안데르손의 세컨슛에 이은 동점골로 이어졌습니다.

비록 박지성은 동점골을 넣지 못했지만, 맨유가 발렌시아 골망을 흔들 수 있도록 분위기를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릅니다. 상대 수비가 자신의 움직임을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공격 기회를 허용했죠. 동점골 이후에는 오른쪽 진영에서 볼을 터치하여 발렌시아 수비 뒷 공간을 노리는 돌파를 노리거나, 왼쪽에서 루니와 2대1 패스를 정확하게 유도하며 상대 수비를 끌고 다녔습니다. 후반 31분까지 패스 정확도 83%(40개 시도, 33개 성공)를 기록했는데, 맨유의 미드필더 및 공격수 중에서 가장 높은 수치였습니다. 박지성의 공격력이 효율적이었음을 뜻한 것이죠.

문제는 베르바토프-나니 였습니다. 박지성과 루니가 이타적인 공격 패턴에서 힘을 실어줬지만, 베르바토프-나니는 여러차례 공격 기회를 놓치거나 상대 수비에 봉쇄당하는 무기력함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베르바토프는 골 결정력 불안을 비롯해서, 후반 28분에는 박지성이 골문 안쪽으로 패스를 연결할 때 상대 수비의 오프사이드에 걸려들고 말았습니다. 나니는 후반 34분까지 맨유 선수들 중에서 두 번째로 높은 이동 거리(10.253km)를 기록했지만 발렌시아 골문 부근에서의 연계 플레이가 소극적이었고, 패스 정확도가 59%(46개 시도, 27개 성공)에 그쳤습니다.

그래서 맨유는 후반 35분 나니를 빼고 긱스를 교체 투입하여 박지성을 오른쪽 윙어로 전환했습니다. 왼쪽은 박지성이 많이 흔들었기 때문에 긱스의 정교한 패스가 통할 여지가 있었고, 발렌시아가 공격 옵션을 앞쪽으로 끌어올려 맨유 진영에서 여러차례 공격을 시도했기 때문에 박지성의 포지션 변화를 통해 상대 수비 부담을 키울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37분 박지성이 오른쪽 측면에서 드리블 돌파로 반격을 노린 것, 43분에도 박지성이 상대 공격을 차단하고 역습을 시도했던 장면 이외에는 인상 깊은 장면이 없었습니다. 44분에는 안데르손 대신에 플래쳐를 투입했으나 맨유 선수들의 움직임은 점점 무뎠습니다. 결국, 맨유는 발렌시아전을 1-1로 마치고 C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