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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지동원의 아시안컵 차출, 반대하는 이유

 

"당장 국가 대표팀에 불러도 손색 없겠다"

조광래 축구 국가 대표팀 감독은 지난 10일 한국의 광저우 아시안게임 예선 2차전 요르단전을 관전하면서 지동원(19, 전남)을 이렇게 칭찬했습니다. 지동원은 4-2-3-1의 원톱으로서 공간을 활용한 볼 배급 및 경기 상황에 따른 유연한 판단력, 볼 키핑 및 제공권에서 빛을 발하면서 한국의 요르단전 4-0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올 시즌 K리그의 신인왕 후보로서 두각을 떨쳤던 저력이 아시안게임에서도 빛을 발했습니다. 그래서 조광래 감독의 눈도장을 받게 됐습니다.

지동원은 지난 8월 11일 A매치 나이지리아전을 앞두고 조광래호에 발탁되었지만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조광래 감독이 지동원의 아시안게임 요르단전 플레이에 흡족한 반응을 보이면서 대표팀 발탁을 긍정적으로 시사했습니다. 조광래호는 내년 1월 아시안컵에서 한국의 우승을 이끌어야 할 입장이기 때문에 최정예 멤버로 대표팀을 꾸려야 합니다. 지동원의 경기력이 조광래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분명하고, 만약 아시안컵에 차출되면 한국의 우승 해결사로 활약할지 기대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동원의 아시안컵 차출은 마냥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기 어렵습니다.

'19세' 지동원의 혹사가 걱정된다

조광래호는 다음달 13일 아시안컵 예비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22명의 K리그 소속 선수들을 훈련시켜 아시안컵 최종 엔트리를 꾸릴 예정입니다. 아시안컵은 내년 1월 10일 바레인전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되며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에 의해 2주 전 부터(다음달 24일 이후) 소집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다음달 6일부터 K리그가 비시즌에 접어들기 때문에 대표팀과 K리그 사이에서 조기 차출에 공감대를 모았습니다. 아직 대표팀에 정착되지 못한 전술 능력을 기르고 옥석을 발굴하기 위해 훈련 기간을 늘리겠다는 것이 조광래 감독의 의도입니다.

만약 지동원이 조광래호에 합류하면 최종 엔트리 발탁을 위해 선배 선수들과 힘겨운 경쟁을 펼쳐야 합니다. 아무리 훈련 기간이지만 몸을 움직이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적잖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문제는 지동원이 올 시즌 많은 경기에 뛰었다는 점입니다. K리그 26경기, FA컵 4경기, 아시아축구연맹(AFC) U-19 선수권 5경기, 광저우 아시안게임 2경기를 포함해서 총 37경기에 출전했으며 앞으로 아시안게임 일정이 더 남았습니다. 만약 한국이 대회 토너먼트에서 승승장구하면 지동원은 40경기 넘게 출전할 것입니다.

단순한 수치를 놓고 보면 40경기 출전은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호날두-메시 같은 축구 천재들은 대표팀 일정까지 포함해서 1년에 50~70경기 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동원은 아직 19세이며 프로에서 처음으로 풀 시즌을 소화했던 것은 물론 대표팀 일정까지 소화했습니다. 비록 A매치에 뛰지 않았지만, 국가-청소년-아시안게임 같은 3개 대표팀에 차출 및 훈련을 받았습니다. 지난해까지 광양제철고 축구부로 활약했던 그가 K리그 및 대표팀에서 방대한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과부하에 시달리지 않은게 대단할 정도입니다. 그런 지동원에게 아시안게임 이후에 가장 절실한 것은 휴식입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최근에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는 점입니다. 지난달 15일 청소년 대표팀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다음 날에 전남의 일원으로서 인천 원정에서 풀타임 출전했습니다. 청소년 대표팀에서 2~3일에 한 경기씩 뛰었기 때문에 엄청난 체력을 소비했을 것입니다. 14일 4강 북한전에 풀타임 출전했고(한국의 0-2 패배), 15일 한국으로 귀국했고, 16일 인천 원정에서 풀타임 출전했는데 19세 선수임을 상기하면 살인적인 일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시안게임 일정도 2~3일 간격이기 때문에 또 다시 많은 힘을 쏟아야 합니다. 아시안게임 같은 경우에는 자신의 병역혜택과 달려있는 문제라서 자신에게 주어진 에너지를 그라운드에서 모두 다 투자해야 합니다.

그런 지동원이 아시안게임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입니다. 비록 요르단전에서 맹활약을 펼쳤지만 그 페이스가 앞으로 5경기에서 꾸준히 유지될지 의문입니다. 한 시즌 동안 많은 경기에 출전했던 선수들은 막판부에 이르면 페이스가 떨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아시안게임 대표팀에서는 올 시즌 경남의 6강 돌풍을 일으켰던 윤빛가람과 김주영이 벤치 멤버입니다. 경남 전술의 특성상 많이 움직이고 뛰었기 때문에, 컨디션이 저하된 상태에서 광저우행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전남의 공격형 미드필더와 왼쪽 윙어를 오갔던 지동원이 아직까지 힘에 부치지 않은게 다행스러울 정도입니다.

만약 지동원이 한국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이끌고 다음달 13일 조광래호에 차출되면 현실적으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올 시즌 내내 많은 경기를 뛰었던 어린 선수에게 일주일이라는 휴식 시간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물론 조광래 감독은 "지동원을 대표팀에 뽑겠다"고 예고하지 않았지만, "대표팀에 불러도 손색 없다"고 기량을 칭찬했기 때문에 대표팀 합류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하지만 눈앞에 다가온 대표팀 일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수 관리 입니다. 지동원은 앞으로 15년 동안 한국 축구의 미래를 짊어질 존재이기 때문에 한국 축구 입장에서 때로는 아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지동원이 아시안컵에 최종적으로 차출되면 상상하기 싫은 문제가 벌어집니다. 아시안컵이 벌어지는 카타르까지 왕복하기 때문에 시차 적응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조광래 감독의 눈도장을 얻기 위해 여유부릴 시간이 없는 것은 분명하며 대표팀 막내 생활까지 견뎌야 합니다. 아시안컵이 끝나면 곧바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전남의 동계훈련에 참가하여 정해성 신임 감독의 전술에 적응하는데 초점을 맞춥니다. 박항서 전 감독의 전술에 익숙한 그에게 정해성 감독 전술은 낯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K리그 2시즌째를 맞이하게 되죠. 2011년에는 U-20 월드컵 참가를 비롯해서, 올림픽 대표팀, 국가 대표팀 일정을 소화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한마디로 혹사에 시달리는 것이죠. 여기에 K리그에서는 2년차 징크스를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조광래 감독을 비판하거나 흔드는 것은 아닙니다. 조광래 감독이 지동원의 기량을 대표팀 급이라고 칭찬했을 뿐입니다. 지동원의 사정을 정확히 인지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쓰게 됐습니다. 지동원을 대표팀에 차출할 기회는 아시안컵 이후라도 늦지 않으며, 적어도 지동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아시안컵이 아닌 아시안게임 입니다. 아시안게임은 자신의 병역 문제가 달려있기 때문에 그 대회에 매진해야 하며, 내년에는 청소년 대표팀과 올림픽 대표팀 일정을 병행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국가 대표팀까지 추가되는 것은 무리입니다.

이동국은 90년대 후반부터 한국 축구를 빛낼 유망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각급 대표팀 차출에 따른 무리한 일정에 시달린 끝에 혹사의 대표적인 희생양이 되어 우리들이 기대했던 만큼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동국의 전례가 몇몇 선수들에게 그대로 되풀이되었고 그 혹사의 악령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박지성-이청용 같은 프리미어리거들도 혹사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우리 축구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어린 지동원이라면 혹사의 악령을 피해갈 수 있도록 한국 축구가 배려해야 합니다. 그 첫번째 시작은 아시안컵 차출 불가이며 두번째 시작은 청소년-올림픽-국가 대표팀 일정에 따른 교통 정리입니다. 적어도 지동원의 혹사는 어떻게든 막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