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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북한전 패배' 한국, 스페인을 교훈 삼아라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아시안게임 대표팀의 북한전 0-1 패배는 아쉽지만 받아들여야 할 결과입니다. 전반 19분 72-28(%)의 확고한 점유율 우세를 나타냈고, 북한보다 더 많은 공격을 시도했고, 후반 20분 박남철의 퇴장으로 11-10(명)의 수적 우세를 점했지만 결과는 무득점 이었습니다. 90분 동안 북한의 빈틈없는 밀집 수비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 패배의 원인 이었습니다. 전반 35분 리광천에게 결승골을 허용한 상황은 어쩔 수 없었지만, 무수한 공격 기회 속에서도 골이 없었다는 점이 석연치 않습니다.

하지만 역의 관점에서 보면 북한전 패배는 '각성의 계기'로 작용합니다. 북한전은 예선 첫 경기였고 앞으로 두 경기 더 남았습니다. 요르단-팔레스타인은 북한에 비해 무게감이 떨어지는 약체이기 때문에 태극 전사들이 북한전 패배에 기 죽을 필요 없습니다. 일찍 패배를 경험할 수 있었기에 앞으로 남은 경기에서 사력을 다하여 금메달을 따겠다는 각오가 굳세질 것입니다. '매도 먼저 맞는게 낮다'는 속담처럼 말입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우승팀 스페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한국의 북한전 패배, 스페인이 오버랩되다

한국의 북한전 0-1 패배는 스페인의 남아공 월드컵 첫 경기였던 스위스전이 오버랩 됩니다. 스페인은 90분 동안 파상공세를 펼치며 골을 넣기 위해 사력을 다했지만 후반 7분 스위스에게 역습을 허용하면서 페르난드스에게 결승골을 내주고 0-1로 패했습니다. 스위스는 '명장' 히츠펠트 감독의 조련 속에 짜임새 넘치는 수비 조직력을 자랑하며 어떤 상대든 결코 물러서지 않는 경기 운영을 나타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패스 축구를 펼쳤던 스페인이라도 스위스의 밀집 수비 앞에서는 별 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스페인이 월드컵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은 스위스전 패배가 전화위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패하면 안된다'는 승리욕이 발동했던 것이죠. 자신과 상대하는 팀들이 밀집 수비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하여, 무조건 공격 하겠다는 돌격형 자세보다는 상대의 빈 틈을 노릴때까지 쉴새없이 패스를 주고 받으며 침착하게 경기를 풀어갔습니다. 그 과정에서는 안정적인 볼 키핑을 통해 끝까지 공격을 지켜냈고, 부스케츠-알론소로 짜인 더블 볼란치가 허리를 확실하게 장악하며 패스 축구의 버팀목이 되면서 상대의 역습 의지까지 무너뜨렸습니다. 스위스전 원톱으로서 부진했던 비야는 왼쪽 윙어로 전환하여 5골을 기록했습니다. 그 결과는 월드컵 우승으로 귀결 됐습니다.

그렇다고 한국이 스페인과 흡사한 팀 컬러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홍명보 감독은 이탈리아식의 컴펙트 사커를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스페인과 더불어 대회 첫 경기에서 엄청난 공격 기회 속에서도 상대의 밀집 수비에 막혀 0-1로 패했던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반면교사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첫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시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 있지만, 스페인은 월드컵 본선 첫 경기에서 패하고도 남은 6경기에서 전승하여 우승했습니다. '월드컵 첫 경기에서 패하면 우승 못한다'는 징크스를 깨뜨린 것도 스페인 이었습니다.

한국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차분한 경기 운영' 입니다. 북한전이 그랬습니다. 경기 초반부터 점유율에서 우세를 점했지만 박스 바깥에서 안쪽으로 연결되는 패스가 적극적으로 공급되지 못하면서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경기를 펼쳤습니다. 무리한 슈팅을 시도하거나, 어떻게든 박스쪽으로 볼을 보내기 위해 패스와 크로스를 띄우기에 급급하거나, 공격을 해야 하는데 볼을 잡아야 할 위치를 찾지 못해 허둥대는 불안정한 경기 운영이 전반 초반을 지나뎐서 두드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전반 35분 리광천에게 실점한 이후부터 원래의 페이스를 되찾기 위해 사력을 다했지만, 경기 초반의 공격력 저하 때문에 밀집 수비에 대한 부담감을 품게 된 것이 아쉬웠을 따름입니다.

홍명보호는 점유율 위주의 공격 축구를 선호합니다. 하지만 많은 골을 넣거나, 화려한 개인기와 감각적인 패스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파괴적인 공격 축구가 능사는 아닙니다. 한국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승이며 축구는 과정보다 결과가 더 중요합니다. 아시안게임 같은 단기전에서는 결과에 의해 희비가 엇갈리기 때문에 '한 골 싸움'에서 우세를 점하겠다는 실리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공교롭게도 스페인은 실리 축구를 통해 우승을 차지했고, 현대 축구의 대세는 공격 축구가 아닌 실리 축구입니다. 아무리 아시안게임이라고 하지만, 아시아 축구가 발전하려면 세계 축구의 흐름을 접목하면서 자신들의 강점을 키워야 합니다. 홍명보호에게 그런 역량이 요구됩니다.

앞으로 한국과 상대하는 약체 또는 다크호스들은 밀집 수비로 맞설 가능성이 큽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한국의 전력이 강하기 때문에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쳐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더욱이 박주영이 와일드카드 자격으로 오는 10일 요르단전에 출전할 예정이기 때문에 수비 축구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을 것임에 분명합니다. 한국이 상대의 밀집 수비를 제압하기 위해 무조건 공격에 올인하면 북한전처럼 뼈저린 순간을 겪게 될 지 모릅니다. 한 가지 유념할 것은, 한국 축구는 아시아 무대에서 상대의 두꺼운 수비를 무너뜨리기 위해 무수한 공격 시도를 펼쳤음에도 무너졌던 사례가 적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홍명보호는 좀 더 차분해지고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밑선에서 패스 플레이를 펼치면서 상대 수비를 윗쪽으로 끌어 올리도록 유도하고, 그 사이의 빈 틈을 노려 빠른 볼 처리와 유기적인 움직임을 통한 연계 플레이를 통해 골 기회를 마련해야 합니다. 상대 빈 공간을 찾는 과정이 어렵지만, 그 과정을 참고 견디면서 볼 배급 속도를 높이고 지속적으로 볼을 주고 받다보면 상대 수비 집중력에 한계가 올 수 있습니다. 선수들의 부족한 개인 기량을 벼락치기로 만회할 수는 없습니다. 축구는 '팀 스포츠'이기 때문에 팀에서 슬기롭게 문제점을 극복해야 합니다. 스페인의 스위스전 패배 극복 방법처럼 말입니다.

한국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이후 24년 동안 금메달 획득에 실패했습니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태극 전사 입장에서 이번 대회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목표 달성을 위해 너무 조급할 필요는 없습니다. 홍명보 감독도 병역 혜택을 지나치게 의식하면 역효과가 있었다는 점을 2개월 전 엔트리 발표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미 한 번 패했기 때문에 더 이상 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북한전 패배에 자극받아 쫓기기에는 더 큰 화를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럴수록 침착해져야 합니다. 경기를 여유있게 리드할 수 있는 힘을 우리 선수들이 길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