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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드디어 발동한 치차리토의 경이적인 골 결정력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24일 스토크 시티전 2-1 승리는 단순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원정 첫 승리이자 최근 3연속 무승부의 침체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과정은 어려웠습니다. 공수 양면에 걸친 경기 내용이 답답했고 후반 36분에는 툰자이 산리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면서 무승부의 악연을 벗어나지 못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5분 뒤 멕시코 출신 하비에르 에르난데스(22, 이하 'EPL 등록명' 치차리토)의 발끝에서 상대 골망을 흔들면서 맨유가 짜릿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치차리토는 스토크 시티전에서 2골을 넣으며 맨유 승리의 해결사 역할을 했습니다. 그 경기에서의 경이적인 골 결정력은 자신의 특출난 플레이가 '드디어 발동하는' 계기로 작용했죠.

특히 전반 26분 첫번째 골 장면은 다른 골잡이들과 차원이 달랐습니다. 루이스 나니의 오른쪽 크로스에 이은 네마냐 비디치의 헤딩패스를 골문 가까이에서 점프하여 뒷통수로 밀어 넣었습니다. 상대 마크맨이 자신의 몸 동작을 눈치채지 못하여 물끄러미 바라 볼 정도로 점프 타이밍이 번뜩였습니다. 정확한 타점에 의해 헤딩골을 넣는 교과서적인 골 결정력이 아닌, 어떻게든 골을 넣겠다는 동물같은 감각을 겸비하다보니 뒷통수로 볼의 방향을 상대 골문 안으로 바꾸어놓았죠. 경기 종료 후 맨유 공식 홈페이지에서 "공이 뒷통수에 맞은게 느껴졌다. 공을 머리에 맞추었을 뿐이다"고 소감을 밝혔을 정도죠.

이러한 골 장면은 지난 8월 9일 첼시와의 커뮤니티 실드에서도 비슷하게 연출됐습니다. 후반 31분 안토니오 발렌시아의 오른쪽 크로스가 올라올 때 발리슛을 날렸던 것이 자신의 얼굴을 맞고 골로 연결됐습니다. 그 골은 자신의 맨유 공식 경기 데뷔골이자 국내 축구팬들에게 일명 '발헤슛'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의도된 형태의 골은 아니었지만 상대 골망을 흔들었다는 자체만으로도 골 결정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축구팬들에게 각인 시켰습니다.

스토크 시티와의 두 번째 골 장면은 맨유의 승리를 이끄는 값진 골 이었습니다.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의 로빙 패스를 파트리스 에브라가 왼쪽에서 이어받아 한 바퀴를 턴하여 왼발로 골문쪽에 볼을 배급했던 것을, 치차리토가 오른발로 밀어넣으며 결승골을 터뜨렸습니다. 베르바토프에서 에브라에게 로빙 패스가 연결되었을 때 골문쪽으로 쏜살같이 움직이며 상대 수비를 달고 다녔고, 그 수비수가 볼을 잡은 에브라에게 시선을 돌리는 순간에 슈팅을 노려 골을 넣었습니다. 에브라의 넓은 시야 및 한 박자 빠른 볼 배급이 좋았지만, 치차리토가 박스 안에서 골 냄새를 잘 맡는다는 것을 그 장면으로 입증했습니다.

치차리토의 2골이 의미심장한 이유는 팀의 에이스였던 웨인 루니의 거취가 해결된 이후에 벌어진 첫번째 경기였기 때문입니다. 루니는 지난 시즌 막판 발목 부상을 당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슬럼프에 빠졌고, 흡연-스캔들 문제로 논란을 빚은 끝에 맨유의 부진을 부추겼습니다. 최근에는 "맨유를 떠나겠다", "맨유는 야망이 없다"고 폭로하며 유럽 축구를 발칵 뒤집혀놓았고 우여곡절 끝에 5년 재계약을 맺었지만, 이미 충성심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언제 사고칠지 알 수 없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입니다. 루니의 재기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현 시점에서는 치차리토에게 기대는 시선이 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치차리토는 최근 5경기에서 4골을 넣었습니다. 지난달 29일 발렌시아전에서 후반 32분 교체투입한지 8분 만에 결승골을 작렬하며 맨유의 1-0 승리를 이끌었고, 지난 16일 웨스트 브로미치전에서는 팀이 2-2로 비겼으나 전반 5분에 선제골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스토크 시티전에서 2골을 꽂으며 자신의 존재감을 강렬히 어필했습니다. 발렌시아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멕시코 출신의 젊은 공격수가 거친 프리미어리그에 생존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제기되었지만, 친정팀 과달라하라에서 내뿜은 골 결정력이 맨유에서도 그대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치차리토의 체격만을 놓고 보면 프리미어리그에서의 성공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175cm의 작은 키에 체격이 호리호리하기 때문입니다. 178cm의 루니를 비롯 172cm의 카를로스 테베스(맨시티)처럼 상체 근육이 두드러지게 발전하지 않았고, 170cm의 마이클 오언과 더불어 빠른 스피드 및 골 결정력으로 승부를 거는 공통점이 있지만 잉글랜드 국적이 아닙니다. 잉글랜드와 축구 문화가 전혀 다른 멕시코 출신이기 때문에 몸싸움에서 불리할 수 밖에 없었죠. 멕시코 출신 선수들은 몸싸움 과정에서 손을 쓰는 경향이 많지만,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다부진 체격과 파워풀한 방어를 통해 상대 체격을 정면으로 밀어내거나 어깨 싸움을 거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치차리토가 낯선 무대에 성공적으로 정착할지 의문 이었습니다.

하지만 치차리토는 자신의 장점 요소를 부각시켜 불안 요소를 커버하는 전략으로 프리미어리그에 당당히 도전했습니다. 상대 수비수와 정면으로 부딪히기 보다는 빠른 스피드를 통해 빈 공간을 파고들고 동료 선수와의 연계 플레이를 노리면서 견제를 이겨내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아직은 프리미어리그의 빠른 공격 템포에 적응중이기 때문에 그런 플레이가 농익지 않았지만, 골 생산에 무게를 두는 선수 치고는 팀 플레이에 녹아들려는 노력의 흔적이 보입니다. 그리고 골을 넣어야 할 기회가 찾아오면 빼어난 위치 선정으로 미리 그 지점에 다가가 대기하죠. 상대 수비가 한 박자 타이밍을 놓칠 정도로 그 몸 놀림이 민첩합니다.

이러한 치차리토의 날카롭고 기민한 움직임은 최근 맨유에서 많은 골을 터뜨리며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습니다. 자신의 공격 재능이 세계 레벨과 뒤떨어지지 않을 뿐더러, 훗날 세계 축구를 화려하게 지배하는 '축구 천재'로 거듭날 가능성을 알린 것이죠. 이미 그것은 남아공 월드컵 프랑스전-아르헨티나전에서 충분히 입증했습니다. 프랑스전에서는 문전 쇄도를 통해 상대 오프사이드 트랩을 벗기고 골을 넣었고, 아르헨티나전에서는 멕시코가 0-3으로 밀리는 상황 속에서도 상대 수비 틈 사이로 과감히 문전으로 파고든 끝에 왼발 강슛으로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멕시코 대표팀 경험이 짧았기 때문에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하지 못했지만, 그 2골의 온기는 숫자 이상의 뜨거운 무게감이 느껴졌습니다.

맨유 입장에서 치차리토의 존재감이 반가운 이유는 엄청난 이적료를 들여 영입한 선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난 4월 600만 파운드(약 106억원)에 영입한 선수였습니다. 맨유가 올해 영입한 4명의 선수(디우프-스몰링-치차리토-베베) 중에서 디우프에 이어 두번째로 적은 액수입니다. 2004년 루니 영입에 2700만 파운드(약 478억원), 2008년 베르바토프 영입에 3075만 파운드(약 545억원)라는 거액을 투자했음을 상기하면, 치차리토의 600만 파운드는 그의 실력과 잠재력에 비하면 매우 경제적인 영입 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흐름을 놓고 보면, 치차리토의 영입은 '성공작'이며 4명 중에서 유일하게 1군에서 두각을 떨쳤습니다.

만약 치차리토가 특유의 골 결정력이 빛을 발한 지금의 기세를 꾸준히 이어가면 맨유에서 '치차리토의 시대'를 열어갈 것입니다. 그럼에도 치차리토는 스토크 시티전 종료 후 맨유 공식 홈페이지와의 인터뷰에서 "모두 팀 동료들 덕분이다"며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동료 선수드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겸손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어 "세계 최고의 클럽이라 할 수 있는 맨유에서 뛸 수 있는 기회는 믿기지 않는 일이다. 이곳에서 오래 뛰며 많은 우승의 영광을 누릴 것이기 때문에 열심히 노력하겠다"며 앞날을 위해 정진하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치차리토의 거침없는 도약이 기대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