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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리버풀 토레스, 이대로 무너져선 안된다

 

'엘 니뇨' 페르난도 토레스(26, 리버풀)의 기량만을 놓고 보면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공격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리버풀이 근래에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2008/09시즌 프리미어리그 준우승 당시, 토레스는 2007년 리버풀 이적 이후 두 시즌 동안 84경기에서 50골을 터뜨리며 프리미어리그 공격수 중에서 독보적인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 이후에는 리버풀이 총체적인 성적 부진에 빠지면서 부침에 시달렸지만 여전히 팀의 간판 골잡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토레스의 현재 행보는 매우 안좋습니다. 올 시즌 리그 7경기 1골 1도움에 그쳤고, 유일하게 골을 넣었던 지난 8월 29일 웨스트 브로미치전을 제외한 모든 경기에서 상대 수비에 철저히 봉쇄당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유로파리그까지 포함하면, 최근 리버풀에서 5경기 연속 무득점 부진에 빠졌으며 유로파리그에서도 골이 없는 상태입니다. 리버풀이 올 시즌 리그 18위 추락으로 강등 위협에 시달리는 원인중에 하나는 토레스의 부진입니다. 축구는 골을 넣어야 상대팀을 이기는 스포츠임을 상기하면, 토레스의 골 침묵은 리버풀이 성적 향상을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야 할 문제입니다.

토레스, 왜 슬럼프에 빠졌나?

토레스의 부진은 '어쩔 수 없는 결과'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리버풀의 어려워진 스쿼드 환경이 토레스 오름세에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죠. 특히 미드필더진이 그렇습니다. 리버풀이 2008/09시즌에 제토라인(제라드-토레스)를 앞세워 리그 득점 1위를 달리는 명불허전의 공격력을 발휘했던 원인은 알론소-마스체라노로 짜인 튼튼한 더블 볼란치가 있었습니다. 두 선수가 허리에서 많은 역할을 수행하면서 토레스 같은 공격 옵션들이 골을 넣거나 연계 플레이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선수가 지금은 리버풀 전력에 존재하지 않았고, 제라드를 제외한 미드필더들이 경기력 저하-호흡 불안-부상으로 신음하면서 토레스가 후방의 지원을 받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 토레스는 리버풀의 원톱입니다. 간혹 리버풀이 투톱을 구사할 때가 있지만 타겟맨은 어김없이 토레스의 역할입니다. 리버풀의 주 포메이션인 4-2-3-1은 3과 1의 꾸준하고 유기적인 연계 플레이가 없으면 원톱이 고립되기 쉬운 약점이 있습니다. 원톱이 그 약점을 이겨내려면 활동 부담이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웨인 루니(맨유) 디디에 드록바(첼시) 디에고 밀리토(인터 밀란) 같은 원톱들은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성향이기 때문에 스스로 공격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토레스는 이들과 다른 타입에 속합니다. 친정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이하 아틀레티코) 시절부터 최전방에서 고정된 상태에서 볼을 받는 플레이에 익숙합니다. 그래서 최전방에 고립되는 경우가 잦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 특징은 토레스의 대표적인 약점으로 거론됩니다. 그래서 리버풀에서는 페널티 박스 바깥에서 볼 터치를 늘리며 활동량을 키우기 위한 노력의 흔적이 엿보였고, 제라드 같은 2선 미드필더들이 적극적으로 상대 박스에 자리잡으면서 많은 골을 양산할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슬럼프를 부추기는 원인이 됐습니다. 빠른 템포 및 거친 플레이가 주를 이루는 프리미어리그의 격렬한 환경속에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할 수 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더욱 부지런히 뚸기위해 사력을 다하다보니 사타구니, 햄스트링 부상이 잦아졌습니다. 그 여파는 남아공 월드컵 부진으로 귀결됐고(스페인의 우승 속에서도), 올 시즌 최악의 슬럼프에 빠지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토레스는 아틀레티코 성인팀에서 두각을 떨치기 시작했던 2002/03시즌부터 2006/07시즌까지 리그 30경기 이상 소화했고, 리버풀 이적 첫 시즌이었던 2007/08시즌에는 33경기를 뛰었습니다. 하지만 2008/09시즌에는 24경기, 2009/10시즌에는 22경기에 모습을 내밀면서 경기에 출전하는 빈도가 점점 줄었습니다. 부상으로 결장하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지속적으로 경기 감각을 유지하고 자신의 장점을 최대화시킬 수 있는 흐름을 점점 잃었습니다. 물론 아틀레티코는 리버풀에 비해 컵 대회-유럽 대항전 참여 빈도가 낮습니다. 하지만 그 특징은 토레스가 많은 경기를 뛰어야 하는 중압감에 처하면서 부상이 잦아지는 꼴이 됐습니다. 여기에 리버풀이 고질적으로 백업 공격수 자원이 취약하다는 점은 토레스의 체력 부담을 키우고 말았습니다.

그런 토레스는 지난 4일 블랙풀전에서 경기 시작 10분 만에 사타구니 부상이 재발되면서 조기 교체 됐습니다. 그 이후가 A매치 데이였기 때문에 스페인 대표팀 일정을 거르고 오는 주말 에버턴과의 머지사이드 더비를 준비하게 되었지만, 적어도 올 시즌은 부상 악령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리버풀 미드필더진이 여전히 와해상태이며, 조 콜-요바노비치-폴센-메이렐레스-막시 같은 최근 1년 동안 안필드에 입성했던 미드필더들은 갈피를 못잡고 있습니다. 더욱이 리버풀은 최근 롱볼 축구로 전환하면서 토레스에게 제공권 역할이 강조됐습니다. 이제는 공중볼까지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햄스트링을 비롯한 하체 부상 염려가 더 커졌습니다.

토레스를 지치게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리버풀의 성적입니다. 지난 2007년 여름에 아틀레티코를 떠나고 리버풀로 이적한 결정적 배경은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향한 의지였습니다. 토레스는 아틀레티코에 대한 충성심이 강했지만, 아틀레티코는 지역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의 2인자였고 그 당시 프리메라리가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팀이 아닙니다. 세계 정상급 공격수의 네임벨류를 키우기에는 아틀레티코라는 물이 좁았기 때문에 리버풀 이적을 감행한 것이죠. 하지만 리버풀은 총체적 부진에 빠진 끝에 강등 위협에 시달리는 현실입니다. 토레스의 또 다른 부진 원인을 동기부여 부족으로 제기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만약 토레스가 지속적으로 탄탄히 성장했다면 지금쯤 '세계 최정상급 선수' 대열에 이름을 오르내렸을지 모릅니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스페인의 우승을 결정적으로 기여했거나 프리미어리그에서 여전히 눈부신 활약을 펼쳤겠죠. 올해 26세의 나이라면 그러한 시나리오는 결코 꿈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토레스의 성장은 꺾인 것이 분명하며, 남아공 월드컵 부진을 안고 돌아온 올 시즌이 힘겹기만 합니다. 특히 스페인의 월드컵 우승속에서도 무득점 부진으로 고개를 숙인것은 토레스의 축구 인생에 적잖은 오점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토레스의 슬럼프가 안타까운 이유는 출중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명성을 드높일 수 있는 기회를 점점 잃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축구 스타들이 거의 매 경기마다, 또는 항상 장밋빛 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부침의 시기를 딛고 일어선 스타들은 대중들의 화려한 주목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토레스가 어떠한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지금보다 내공이 단련된 공격수로 거듭나려면 지금의 힘겨운 시기를 극복해야 합니다. 부상 악령이 변수가 될 수 있겠지만, 그의 어깨에는 리버풀의 부활을 이끌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습니다.

물론 리버풀이 언제 빅4에 재진입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토레스는 아직 리버풀에 대한 충성심이 꺾이지 않았기 때문에 팀의 챔피언스리그 복귀를 주도하고 더 나아가 우승까지 이끄는 책임이 있습니다. 거침없는 골 폭풍으로 지구촌 축구팬들을 열광케했던 토레스가 다시 프리미어리그에서 독보적인 행보를 펼치기를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토레스의 슬럼프 탈출은 곧 리버풀의 화려한 비상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