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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볼턴의 롱볼 습관, 이청용에게 독이 되다

 

'블루 드래곤' 이청용(22, 볼턴)이 팀의 골을 엮어내는 발판을 마련했지만 이날 경기에서는 적극적인 공격력이 살아나지 못했습니다. 롱볼 축구로 회귀한 팀의 전술과 괴리감을 나타내는 모양새 였습니다.

이청용은 2일 저녁 11시(이하 한국시간) 더 호손스에서 열린 2010/11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7라운드 웨스트 브로미치(이하 웨스트 브롬)전에서 75분 동안 출전했습니다. 후반 18분 박스 바깥 중앙에서 상대팀 선수가 머리로 걷어냈던 볼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순간, 오른발로 볼을 윗쪽으로 띄웠던 것이 케빈 데이비스의 패스에 이은 요한 엘만더의 왼발 선제골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볼턴은 후반 32분 제임스 모리슨에게 동점골을 내줬고 결국 1-1로 경기를 마쳤습니다.

이로써, 볼턴은 웨스트 브롬전 무승부로 리그 1승5무1패를 기록했으며 12위에서 11위로 진입했습니다. 7경기 동안 단 1승에 그쳤던 아쉬움이 있지만 지난 시즌처럼 무기력한 경기 운영에 발목 잡혀 무너진 경우가 없었다는 점은 '끈적한' 컬러가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한편, 이청용은 경기 종료 후 <스카이스포츠>로 부터 "때때로 훌륭했다(Outplayed at times)"는 평가와 함께 평점 6점을 부여 받았습니다. 두 팀 출전 선수 중에서 가장 낮은 평점이지만 많은 선수들이 6점을 기록했기 때문에 결코 나쁜 평점은 아닙니다.

이청용은 롱볼 축구와 궁합이 맞지 않다

볼턴의 웨스트 브롬전 공격력은 애스턴 빌라-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전에 비해 더 나빠졌습니다. 지난 두 경기에서는 강팀을 상대로 유기적인 공격력을 뽐내며 상대 진영을 위협했지만, 웨스트 브롬전에서는 멕슨 전 감독 시절에 지향했던 롱볼 축구로 돌아섰습니다. 웨스트 브롬전이 원정이었고 상대가 시즌 초반 리그 6위를 달리는 오름세를 달렸던 특징이 있지만, 그것 때문에 롱볼을 적극 이용했다고 판단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지난 두 경기에서 패스 게임으로 선전하고도 웨스트 브롬전에서 롱볼로 돌아선 것 자체가 매끄럽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볼턴 선수들이 아직까지 '롱볼 습관'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볼턴의 웨스트 브롬전선발 출전 선수중에 대부분은 멕슨 체제에서 롱볼에 익숙한 선수들이며, 데이비스-엘만더 투톱이 제공권에 강하기 때문에 후방에서 전방으로 공을 띄우는 공격 패턴을 구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올 시즌에는 데이비스-엘만더의 몸놀림이 가볍고 지난 시즌보다 폼이 좋기 때문에 롱볼을 이용한 공격을 구사하기가 쉽습니다. 문제는 그 전술이 이청용을 비롯한 미드필더들의 공격력을 축소시키면서 볼턴이 경기 흐름에서 밀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볼턴은 롱볼을 적극 활용했던 전반 30분 이전까지 점유율에서 39-61(%)의 열세를 나타냈습니다. 로빈슨-스테인슨으로 짜인 좌우 풀백이 데이비스-엘만더의 머리를 노리는 롱볼을 날렸고, 센터백으로 출전한 케이힐은 공만 잡으면 그 즉시 롱볼을 띄우며 공격진에게 다이렉트로 볼을 공급했습니다. 특히 케이힐 같은 경우에는 다른 누구보다 롱볼을 의식하는 경향이 뚜렷했습니다. 하지만 볼턴의 롱볼은 공격의 단순화를 키우는 꼴이 됐습니다. 미드필더들의 공격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면서 데이비스-엘만더의 머리에 의존했던 것이 상대팀에 공략당하는 결과로 이어졌죠. 볼을 소유하는 시간이 짧다보니 상대팀에게 점유율을 내주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만약 테일러가 선발 출전했다면 볼턴의 롱볼 축구는 탄력을 얻었을 것입니다. 테일러는 지난 여름 볼턴으로 이적한 페트로프에 의해 주전 경쟁에서 밀렸지만, 멕슨 체제에서는 데이비스와 더불어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했던 왼쪽 윙어 였습니다. 직선적인 성향의 공격 패턴을 통해 공격수들이 머리로 건네는 공을 받아 상대 배후를 공략하거나 직접 슈팅을 노리는 스타일에 익숙한 성향이죠. 하지만 페트로프-이청용으로 짜인 좌우 윙어들은 테일러와 스타일이 다릅니다. 날카로운 볼 배급을 강점으로 삼으며 직선과 곡선적인 움직임을 골고루 활용하기 때문에 롱볼을 받아내는 성향과 거리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페트로프-이청용의 공격력은 웨스트 브롬전에서 탄력을 얻지 못했습니다. 볼턴이 평소와 달리 미드필더를 중심으로 공격을 전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페트로프-이청용이 때때로 고립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좌우 풀백으로 뛰었던 로빈슨-스테인슨에게 직접적인 공격 지원을 받는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스스로 공격을 해결해야 하는 버거운 상황에 놓였죠. 더욱이 홀든-무암바로 짜인 중앙 미드필더들이 웨스트 브롬과의 허리 싸움에서 밀렸기 때문에 페트로프-이청용이 자신만의 두드러진 강점을 발휘하기에는 여건이 부족했습니다. 특히 무암바가 공격력에서 이렇다할 활약을 펼치지 못하면서 근처에 있던 이청용에게 공격 부담이 따를 수 밖에 없었죠.

결국, 볼턴은 웨스트 브롬에게 끌려다니는 경기 운영을 펼치면서 전반 35분 부터 미드필더진을 활용한 공격 패턴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35분 부터 40분까지의 점유율이 61-39(%)를 기록할 정도로 공격력을 회복하는데 주력했죠. 롱볼 축구로 회귀한 볼턴의 전략이 스스로 틀렸음을 인정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청용은 경기 초반부터 볼을 터치하는데 어려움을 겪다보니 평소의 공격력을 되찾기까지 시간이 더딜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반 막판에는 상대팀 선수의 거친 수비를 받아 오른쪽 다리에 경미한 고통을 느끼는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이청용의 공격력은 전반전보다는 후반전이 경쾌했으며 볼을 터치하고 패스를 띄우는 횟수가 더 많아졌습니다. 후반 2분 문전 중앙쪽으로 이동하고 볼을 터치하면서 왼쪽에 있던 페트로프에게 대각선 패스를 연결하면서 공격력에 대한 자신감을 되찾았죠. 18분에는 엘만더의 선제골 발판을 열어주는 패스를 띄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페트로프에 비해 상대 수비 뒷 공간을 파고드는 움직임이 부족하다보니 볼턴 입장에서 공격의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고, 30분이 되어서야 테일러와 교체 됐습니다. 경기 초반부터 팀의 롱볼 축구와 어울리지 못하면서 평소보다 몸이 무거웠던 여파를 이겨내지 못했죠. 웨스트 브롬전은 롱볼 축구와 궁합이 맞지 않다는 것을 각인시킨 경기가 됐습니다.

코일 감독은 볼턴 사령탑 부임 이후 팀의 기술 축구 정착에 힘을 기울였던 지도자였습니다. 볼턴의 고질적인 단점 이었던 롱볼 축구의 비중을 줄였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 틀을 유지하면서 이청용 같은 테크니션의 비중을 늘릴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하지만 웨스트 브롬전은 선수들이 아직 롱볼에 익숙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경기가 됐습니다. 코일 감독 입장에서도 다소 반갑지 않은 부분입니다. 어쩌면 코일 감독은 롱볼 축구가 이청용에게 독이 되었다는 점을 파악했을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