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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여자 축구, 일본전 1-13 패배 아시나요?

 

남자 축구의 원정 월드컵 사상 첫 16강 진출의 기쁨이 가시지 않았던 2010년 7월. 축구팬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쾌거가 독일에서 전해졌습니다. 최인철 감독이 지휘했던 U-20 여자 축구 대표팀이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U-20 월드컵에서 선전을 거듭했습니다. 지소연의 5골을 앞세워 조별리그 2승1패로 8강에 진출하더니 7월 25일 멕시코전에서 3-1로 승리하면서 4강에 올랐습니다. 개최국 독일과의 4강전에서 1-5로 대패했지만 3,4위전 상대였던 콜롬비아를 1-0으로 제압하면서 한국 축구가 FIFA 주관대회 최초로 3위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기적이 벌어졌습니다. 최덕주 감독이 이끄는 U-17 여자 축구 대표팀이 U-17 월드컵에서 일본을 승부차기 끝에 물리치고 FIFA 주관대회 사상 첫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남자 축구까지 통틀어서, 한국 축구가 세계적인 메이져 대회에서 우승의 기쁨을 누린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동안 한국 축구에 요원했던 세계 제패가 드디어 현실로 이루어졌습니다. 어린 태극 낭자들이 FIFA 시상대 위에서 동료 선수들과 우승컵을 치켜들고 입을 맞추는 장면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여자 축구 U-17 대표팀의 우승, U-20 대표팀의 3위 입상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에 이은 영광스러운 신화입니다. 한국 축구 최고의 경사였고 앞으로 계속 잊혀지지 않을 '아름다운 순간'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한국 축구는 국제 무대에서 더 이상 변방에 있지 않음을 입증했습니다. 정신력-체력-스피드 같은 한국 선수들의 기존 강점을 비롯해서 기술 및 전술 능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어 국제 무대에서 연이은 쾌거를 달성했습니다. 최고가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다했던 태극 낭자들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이루었습니다.

특히 U-17 대표팀의 우승이 의미있는 이유는 국민적인 관심과 응원 속에서 '세계 제패'를 했기 때문입니다. 여자 축구는 그동안 국내 축구팬들에게 철저하게 외면받거나 무관심받는 비인기 스포츠 였습니다. 축구가 오래전부터 남자들의 스포츠라는 이미지가 뚜렷했고, 그동안 남자 축구가 프로축구 무대인 K리그를 기반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죠. 차범근-홍명보-박지성 같은 전국구 스타플레이어들이 꾸준히 등장하면서 대중들이 남자 축구에 친숙할 수 밖에 없었고 여자 축구가 인지도에서 두드러진 열세를 나타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세계 3위를 거둔 U-20 대표팀 같은 경우, 8강 멕시코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많은 축구팬들이 관심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여자 축구의 관심 부족 원인은 아직 역사가 짧기 때문입니다. 국내 여자 축구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0년 이었으며, 그 해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 육상-역도-핸드볼 같은 다른 종목 스포츠 선수들이 참가하면서 '급조된 대표팀'을 꾸린것이 여자 축구의 첫 시작 이었습니다. 하지만 출발은 좋지 못했습니다. 대한축구협회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는 여자 대표팀의 첫 A매치는 1990년 9월 6일 서울 동대문에서 열렸던 일본과의 친선 경기였으며, 강귀녀가 한 골을 넣고도 일본에게 1-13의 대패를 허용했습니다. 그 패배의 충격이 컸던 탓인지, 3일 뒤 일본과의 리턴 매치에서는 0-5로 패하면서 무려(?) 8실점을 줄였습니다.

당시 일본과 친선 경기를 했던 이유는 그 해 10월 베이징 아시안게임을 대비하기 위한 차원 이었습니다. 그 대회에서 여자 축구가 정식 종목으로 첫 채택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아시안게임 성적은 좋지 못했습니다. 북한전 0-7 패, 일본전 1-8 패, 대만전 0-7 패, 중국전 0-8 패를 허용하면서 4연속 대량 실점으로 패했고 마지막 경기였던 홍콩전에서 1-0으로 이기면서 간신히 승리의 기쁨을 맛봤습니다. 이듬해 5월 아시아 선수권에서는 태국전 0-3 패, 대만전 0-9 패, 중국전 0-10 패로 예선 탈락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남자 축구가 그 시기에 아시아 최정상급 레벨로 자리를 잡았다면 여자 축구는 아시아 축구에서 걸음마 단계에 있었습니다. 90년대 아시아 무대에서 여자 축구를 평정했던 중국과 일본에게 무너지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북한-대만에게 밀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특히 중국은 1999년 여자 월드컵 탄생 이전까지 미국과 여자 축구계의 양대 산맥을 형성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여자 축구는 대중들에게 특이한 시선으로 비춰지면서도 외면받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습니다.

하지만 여자 축구는 대한축구협회가 2000년대 초 부터 지속적인 지원을 시작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 8월 동아시아대회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3년 뒤 U-20 월드컵 8강 진출, 지난해 아시아축구연맹(AFC) U-19 챔피언십 준우승을 통해 국제 무대에서 서서히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중국-일본-북한-대만에게 뒤졌던 여자 축구의 파워가 이제는 그들과 동등한 수준이 되었고 마침내 2010년을 기점으로 세계를 정복하는 꿈같은 순간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태극 낭자들이 FIFA 주관 대회에서 두각을 떨쳤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지도자들이 단기적인 성적에 집착하지 않고 선수들에게 철저한 기본기를 가르치며 기술적인 완성과 전술 이해력을 높였던 것이 국제 무대에서 맹활약을 펼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남자 축구가 유소년 육성 단계에서 정신력-체력-스피드를 강조하면서 기본기가 취약했다면(점차 기본기가 강화되고 있지만) 여자 축구는 기본기를 바탕으로 여러가지 장점을 흡수하며 국제 무대에서 갈고 닦은 실력을 과감히 발휘했습니다. 그리고 최덕주 감독과 최인철 감독은 철저하게 준비된 용병술을 통해 상대의 허를 찌르며 국제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이끌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자 축구는 아직 갈길이 멉니다. 여자 축구가 오랫동안 국제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기본적인 토양이 제대로 가꾸어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한축구협회에 등록된 여자 축구 선수는 1,450명이며 미국의 170만명보다 매우 부족합니다. 경쟁력 있는 선수를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여민지-지소연 같은 여자 축구 스타 플레이어가 탄생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또한 사람들의 관심이 없다는 점은 여자 축구가 성장하기 힘든 한계로 작용합니다. 남자 축구 또는 월드컵-올림픽-아시안 게임에서 나타냈던 국민적인 관심을 이제 여자 축구에 나누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남아공 월드컵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여자 축구가 남자 축구보다 더 먼저 세계를 제패할 것이다'는 명제는 사람들에게 반론을 듣거나 비웃음을 받기 일쑤였습니다. 여자 축구가 세계 무대에서 이루어낸 성과가 전무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U-20 대표팀이 FIFA 주관 대회 사상 최고였던 3위를 차지하면서 우승이 더 이상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드디어 U-17 대표팀이 우승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불과 20년 전, 일본에게 1-13으로 패했던 한국 축구가 이제는 일본을 제물로 세계 무대에서 우승하는 위풍당당함을 과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