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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과연 박지성의 아시안컵 출전은 이루어질까?

 

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의 목표는 내년 1월 아시안컵 우승입니다. 한국은 그동안 아시아 축구 최강임을 자처했지만, 실상은 1960년 이후 반세기 동안 아시안컵 우승에 실패하여 '진정한 아시아의 No.1'임을 증명하지 못했습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 및 AFC 챔피언스리그에서의 두드러진 선전으로 탄력을 얻은 한국 축구의 질주가 탄력을 얻으려면 아시안컵 우승이 필요합니다. 또한 아시안컵에서 우승하면 '미니 월드컵'으로 통하는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참가하여 2014 브라질 월드컵을 대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에 반드시 최정예 전력으로 나서야 합니다.

하지만 대표팀이 아시안컵에서 최상의 경기력으로 대회에 임할지는 의문입니다. 선수 대부분이 K리그-J리그 소속이기 때문입니다. 1월은 K리그와 J리그의 비시즌이자 동계훈련이 시작되기 때문에 실전 감각 및 컨디션, 체력이 올라오지 않은 상태에서 대회에 참가하게 됩니다. 또한 박주영-기성용-석현준의 아시안컵 출전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세 선수는 오는 11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참가할 가능성이 높은 유럽파로서, 유럽 축구가 시즌 중이기 때문에 세 선수의 소속 구단들이 아시안게임-아시안컵 동시 출전을 허락할지 의문입니다. 병역 혜택이 절실한 세 선수에게는 아시안컵 보다는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대표팀 주장' 박지성의 아시안컵 참가가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사정 때문에 걸림돌이 될 여지가 생겼습니다. 맨유 측면의 주력 옵션이었던 안토니오 발렌시아가 발목 골절로 시즌 아웃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박지성의 선발 출전 빈도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발렌시아는 부상 회복을 위해 장기간 팀 전력에서 제외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박지성-긱스-나니의 비중이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긱스가 올해 37세의 노장으로서 1주일에 2경기 소화하기 어렵다는 것을 미루어보면, 박지성은 나니와 더불어 맨유의 성적 향상을 위해 더 많은 경기에 출전해야 합니다.

한 가지 걱정스러운 것은, 맨유가 박지성의 아시안컵 참가를 반가워할지 의문이라는 점입니다. 아시안컵은 내년 1월 카타르에서 개최되지만 시기적으로 유럽 축구 일정과 겹치며, 카타르가 잉글랜드와 엄연히 시차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박지성이 지난해 2월 A매치 이란 원정 이후 맨유에서 컨디션 저하로 경기력 향상에 어려움을 겪었고, 맨유의 붙박이 주전이 아닌 로테이션 멤버로서 치열한 주전 경쟁을 벌이는 선수임을 고려하면 아시안컵 이후의 행보가 염려되는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물론 박지성은 아시안컵에 참가해야 할 선수입니다. 유럽에서 뛰는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이 짝수년도 1월에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출전하는 것 처럼, 아시안컵은 대륙 최고의 대표팀을 가리는 대회이기 때문에 박지성 차출에 대한 명분이 실립니다. 대표팀의 주장이자 팀 전력에 없어선 안 될 에이스이기 때문에, 조광래호의 아시안컵 성적은 박지성의 존재감 및 활약상에서 가려질 가능성이 큽니다. 대표팀 뿐만 아니라, 한국 축구가 국외적으로 위상을 높이려면 아시안컵 우승은 필수이며 박지성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맨유 입장에서도 박지성은 필요합니다. 발렌시아의 장기간 결장 자체만으로 박지성의 비중이 커지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올해 12월까지는 이적시장이 개장하지 않기 때문에 박지성-긱스-나니 같은 측면 옵션들을 안고 프리미어리그-UEFA 챔피언스리그-칼링컵을 병행해야 합니다. 내년 1월 이적시장에서 윙어를 영입할 가능성이 있지만, 맨유는 구단의 재정난으로 이적시장에서 돈을 쏟는데 제약을 받기 때문에 박지성 같은 기존 선수에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리저브 팀에 있는 오베르탕을 1군으로 올리거나 안데르손-에르난데스의 윙어 전환 가능성이 예상되지만, 오베르탕은 1군에서 뛰기에는 실력이 부족하며 안데르손의 윙어 전환은 실패작 이었습니다. 에르난데스는 박스 안에서 골을 노리는 성향이기 때문에 윙어보다는 타겟맨에 적합한 체질입니다.

문제는 맨유가 아시안컵이라는 존재를 중요시하게 여기느냐는 점입니다. 프리미어리그에서는 유능한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이 즐비하기 때문에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차출을 허락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아시안컵은 이들에게 생소할 수 있습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면서 아시안컵에 참가한 선수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동국은 미들즈브러(당시 프리미어리그 참가) 소속이었던 2007년 7월 아시안컵에 참가했지만 그때는 프리미어리그의 비시즌 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내년 1월 아시안컵은 시즌중인데다 전반기가 끝나고 후반기가 접어드는 무렵이기 때문에 맨유가 박지성의 차출을 허락할지 의문입니다.

특히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대표팀 경기에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지도자로 유명합니다. 지난 2004년 여름 맨유에 입단했던 가브리엘 에인세(현 마르세유)와의 갈등이 그 예 입니다. 에인세는 그 해 8월 퍼거슨 감독의 반대를 뿌리치고 아테네 올림픽에 참가하여 조국의 금메달 멤버로 활약했습니다. 하지만 맨유에서 안정된 입지를 보장받지 못하면서 2007년 퍼거슨 감독과의 대립끝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습니다. 반면 안데르손은 2008년 8월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했지만 맨유에 중원 옵션이 즐비한데다 프리미어리그 일정만 병행했기 때문에, 맨유가 차출을 허락했던 케이스 입니다.

또한 퍼거슨 감독은 지난 2007년 10월 13일 잉글랜드 스포츠 전문 채널 <스카이 스포츠>를 통해 "잉글랜드 축구협회가 내년 3월 A매치 치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때는 맨유를 비롯한 프리미어리그 클럽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인데 꼭 해야 하느냐"며 잉글랜드 대표팀의 A매치 일정을 비판하면서 "11월에도 A매치 데이를 갖는다. 그 이후 시즌 종료까지 클럽팀이 일관성을 갖기 위해 A매치가 있어서는 안 된다"며 A매치 일정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만약 퍼거슨 감독이 그 입장을 지금까지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면 박지성의 내년 1월 아시안컵 참가 과정이 매끄럽지 못할 염려가 듭니다.

만약 박지성이 맨유의 허락을 받아 아시안컵에 참가하더라도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오는 12월 말에 '박싱데이'를 치르는데다 프리미어리그-UEFA 챔피언스리그-칼링컵을 병행하는 빠듯한 경기 일정을 보낸 상태에서 아시안컵을 위해 카타르에 입국합니다. 발렌시아의 부상으로 경기 출전 빈도가 늘어날 가능성이 예상되기 때문에 아시안컵이 열리는 시기가 되면 체력적인 어려움을 안게 될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어쩌면 맨유가 박지성의 아시안컵 차출을 반대할 경우 무릎 보호 차원에 의한 휴식을 이유로 거절할 명분이 생깁니다. 유럽 축구에서는 소속팀이 주력 선수의 대표팀 차출을 피하기 위해 부상을 근거로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결국, 박지성의 아시안컵 참가는 맨유의 의중이 적지 않게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박지성은 한국의 아시아 제패를 위해 아시안컵에 필요한 선수지만 발렌시아의 부상이 뜻하지 않은 변수로 작용했습니다. 과연 박지성의 아시안컵 참가가 순탄하게 이루어질지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