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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웨인 루니, 이 죽일 놈의 '월드컵 악연'

 

올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웨인 루니(2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가 남아공 월드컵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지 못했습니다. 월드컵 유럽 예선 9경기에서 9골을 넣는 맹활약을 펼쳤으나 16강 독일전을 포함한 본선 4경기에서 무득점을 비롯 경기 내용까지 부진에 시달리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루니의 침묵은 잉글랜드가 조별본선 1승2무로 삐꺽거리고 16강에서 '철천지 원수' 독일에게 1-4로 무너지는 결정타로 작용했습니다.

독일전에서의 루니는 맨유의 공격수로서 날카로운 화력을 선보였던 선수가 맞는지 의심 될 정도의 답답함을 일관했습니다. 2선 미드필더와 폭을 좁혀 패스 플레이에 주력했을 뿐, 공격수로서 상대 수비 뒷 공간을 파고들거나 흔드는 움직임이 부족했으며 과감하게 문전으로 침투하는 장면 또한 보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36개의 패스 중에 13개를 미스할 정도로(패스 정확도 : 63.9%) 상대 수비수에게 공을 빼앗기거나 부정확한 패스를 남발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두 개의 슈팅을 놓치면서 끝내 골을 해결짓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루니의 무기력함이 월드컵 본선 내내 계속 됐습니다. 폭발적인 드리블과 뛰어난 득점력을 비롯 팀을 위해 희생하는 본래의 장점이 경기력에 전혀 묻어나오지 못했습니다. 드리블이 경쾌하지 못한데다 상대 수비 사이를 파고들려는 움직임이 부족했고 골을 넣으려는 의지가 굳세지 못했습니다. 공격의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하는데 무언가 쫓기는 듯한 조급한 마음 때문에 패스미스를 범하거나 상대 수비의 압박에 걸리는 답답함을 일관했습니다.

루니의 남아공 월드컵 부진 원인은 맨유에서의 혹사와 영향이 있었습니다. 올 시즌 맨유에서 거의 매 경기 선발 출전하며 엄청난 체력을 소모하면서 혹사를 거듭할 수 밖에 없었고 하체에 무리가 오면서 시즌 후반 오른쪽 무릎 및 발목 부상에 시달렸습니다. 지난 2월 말 무릎을 다쳐 몸이 호전되는 듯 했으나 3월 31일 바이에른 뮌헨 원정 경기 도중에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지금까지 맨유 및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무득점을 일관하고 있습니다. 맨유에서 루니 이외에는 골문 안에서 골을 넣어 줄 적임자가 없었기 때문에 루니의 부상 후유증이 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루니의 오른쪽 발목 부상은 본선 3차전 슬로베니아전에서 재발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월드컵 본선에서 상대 수비진의 집중적인 견제에 시달리다보니 공격의 활로를 개척하기 위해 부단히 움직였지만 오히려 하체에 무리가 생기는 불운이 따랐습니다. 그래서 슬로베니아전 경기 도중에 교체될 수 밖에 없었고 그 여파가 독일전에 영향을 끼치면서 이렇다할 위협적인 장면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발목 부상 재발 및 후유증을 이겨낼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질 수 밖에 없음을 상기하면, 어쩌면 2010/11시즌 맨유에서의 시즌 초반 행보가 순탄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루니는 남아공 월드컵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로 거듭나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의 경이적인 골 생산을 통해 리오넬 메시(FC 바르셀로나)의 No.1 아성을 위협하는 라이벌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난 3월 31일 바이에른 뮌헨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경기 도중 불의의 발목 부상을 당하면서 주춤한 끝에 맨유의 8강 탈락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월드컵이 세계 최고로 도약햐기 위한 발판으로 작용했지만 오히려 부진을 거듭하며 잉글랜드 16강 탈락의 주범으로 몰렸습니다.

이러한 루니의 시련이 안타까운 이유는 4년 전 독일 월드컵에서도 무득점으로 고개를 숙였기 때문입니다. 그 원인은 월드컵 직전의 부상 때문 이었습니다. 2006년 4월 29일 첼시전에서 파울루 페레이라에게 백태클을 당하며 전치 6주의 오른쪽 정강이 골절로 신음했습니다. 잉글랜드가 루니의 빠른 부상 회복을 위해 산소텐트까지 동원하며 갖은 애를 썼지만, 결국 루니는 독일 월드컵 4경기 연속 무득점으로 고개를 숙였고 잉글랜드의 8강 탈락을 막지 못했습니다.

만약 루니가 2006년 독일 월드컵과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 부상 악연에 시달리지 않았다면 잉글랜드는 기존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두었을지 모릅니다. '세계 최고의 리그' 프리미어리그의 톱클래스 기량을 유지하는 선수들이 즐비했기 때문에 우승을 노릴 수 있는 스쿼드를 보유했습니다. 문제는 루니가 부상 악연으로 인해서 최전방에서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잉글랜드가 공격적인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고 결국 두 대회에서 4강 이상의 성적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루니는 남아공 월드컵에서 4년 전 독일 월드컵에서의 악연을 극복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맨유가 지난해 여름 호날두-테베스와 작별했던 파괴력을 조력자였던 루니가 대신하면서 팀의 새로운 에이스로 거듭났고 괄목할만한 공격력을 키우며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맹활약을 벼르고 있었습니다. 팀 동료인 라이언 긱스가 지난 2월 4일 <ESPN 사커넷>을 통해 "루니는 세계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 맨유와 잉글랜드 대표팀을 위해 큰 무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것은 최고의 선수만이 할 수 있다"고 칭찬할 만큼, 루니의 남아공 월드컵 맹활약 시나리오는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예상된 수순 이었습니다.

하지만 루니는 남아공 월드컵 직전에도 또 다시 부상 발목에 잡혔습니다. 시즌 막판 발목 부상을 당했던 후유증이 남아공 월드컵에서 이어지면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공교롭게도 루니를 비롯해서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팀의 주축 멤버로 뛰었던 선수들도 컨디션 저하에 시달린 끝에 명불허전의 기량을 입증하지 못했습니다.(그래서 국내에서는 이를 '프리미어리그 저주'라고 부르죠.) 프리미어리그가 다른 리그들보다 경기 횟수가 많기 때문에 선수들이 살인적인 일정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고 맨유에서 대체 불가능한 자원이었던 루니가 대표적인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루니는 펠레-마라도나-호나우두-지단 같은 축구 황제의 반열에 포함되기 위해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기약하게 됐습니다. 지금까지의 월드컵 본선 8경기에서 무득점에 그쳤기 때문에 브라질 월드컵에서 분발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남아공 월드컵 이후 UEFA 챔피언스리그를 통해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선수로 도약할 기회는 있겠지만 '월드컵 악연'이라는 꼬리표는 브라질 월드컵 이전까지 계속 따라올 것입니다. 월드컵을 통해 세계를 품으며 잉글랜드의 우승을 이끌기에는 자신을 둘러싼 불운이라는 벽이 너무 높고 견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