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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한국의 16강 진출, 유쾌하고 짜릿했다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8년 만에 월드컵 16강 진출을 확정 지었습니다. 그것도 원정 월드컵 첫 16강 진출이었기에 의미가 큽니다. 태극전사들과 5천만 국민들이 염원했던 16강의 꿈이 드디어 현실이 됐습니다.

한국은 23일 오전 3시 30분(이하 한국시간) 더반에 소재한 모세스 마비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0 남아공 월드컵 B조 본선 3차전 나이지리아전에서 2-2로 비겼습니다. 전반 12분 칼루 우체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전반 38분 이정수가 기성용의 프리킥 상황에서 헤딩 동점골을 넣으며 1-1로 따라 붙었습니다. 후반 3분에는 박주영이 오른발 프리킥으로 역전골을 넣었고 후반 23분 김남일의 반칙으로 아예그베니 야쿠부에게 페널티킥 골을 내줬지만 그 이후 수비진이 안정을 되찾아 추가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시각에 열렸던 아르헨티나-그리스의 경기에서 그리스가 0-2 패배로 1승2패(승점 3점)를 기록하면서, 나이지리아전 무승부로 1승1무1패(승점 4점)를 확정지었던 한국이 16강 고지에 올랐습니다. 한국은 B조 2위로 토너먼트 무대에 진출하여 오는 26일 저녁 11시 넬슨 만델라 베이에서 A조 1위 우루과이와 8강 진출을 다투게 됐습니다.

공격 분위기 잡았던 한국, 우체에게 선제골 허용

한국과 나이지리아는 4-4-2를 구사했습니다. 한국은 정성룡을 골키퍼, 이영표-조용형-이정수-차두리를 포백, 박지성-김정우-기성용-이청용을 미드필더, 박주영-염기훈을 투톱 공격수에 배치했습니다. 나이지리아는 에니에아마를 골키퍼, 아폴라비-시투-요보-오디아를 포백, 우체-아일라-에투후-오바시를 미드필더, 야쿠부-카누를 투톱 공격수에 배치하여 한국과 맞붙게 됐습니다. 한국이 아르헨티나전에서 부진했던 오범석을 선발에서 제외하고 차두리를 투입했다면 나이지리아는 그리스전에서 부상당했던 왼쪽 풀백 타이워-에치에일레가 모두 빠지고 아폴라비가 선발 출전 기회를 얻었습니다.

경기 초반 기세를 잡은 것은 한국 이었습니다. 한국의 선축으로 경기가 시작하면서 수비진-미드필더진-박주영으로 이어지는 오른쪽 공간 패스를 통해 나이지리아의 측면 뒷 공간을 파고 들었습니다. 박주영이 전반 1분 오른쪽 측면에서 박스 안으로 침투하는 이청용에게 전진패스를 이어줬던 것이 골키퍼 에니에아마와 1대1 상황이 연출되는 상황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청용이 슬라이딩으로 오른발 슈팅을 노렸으나 에니에아마의 몸과 부딪힌 충격을 받아 그라운드에 쓰러졌으나 다행히 경기에 임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한국이 패스를 주고 받아 점유율을 늘리고 전반 7분 기성용의 중거리슛을 통해 나이지리아와의 기세 싸움에서 우위를 점했습니다. 전반 10분 볼 점유율은 한국이 56-44(%)로 앞서면서 경기가 순탄하게 풀리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공격적인 움직임에 치중하면서 수비를 소홀히 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나이지리아의 오른쪽 스로인 상황에서 오바시의 크로스가 한국 골문 정면으로 파고들던 우체의 선제골로 이어졌습니다. 김정우가 오바시를 달라붙었지만 크로스 기회를 허용했고 차두리가 골문에서 우체를 놓쳤던 것이 원인 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오바시를 근접마크하는 수비수가 없었던 것이 실점의 원인이 되었는데 센터백들의 위치선정도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나이지리아는 한국전 이전까지 월드컵 본선에서 2패를 기록한 팀 이었습니다. 3전 전패를 면하기 위해 한국전에서 승부를 걸었는데, 한국이 공격에 무게를 두고 있을때를 노려 기습적인 역습을 가했습니다. 한국은 빠른 공격을 자랑하는 팀이지만 수비 조직력에 기복이 심한데다 순간적으로 집중력이 떨어지는 문제점을 나이지리아가 간파한 것이죠. 여기에 한국이 경기 초반부터 공격 분위기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결과적으로는 나이지리아가 의도하던 방향 이었습니다. 선제골을 허용했던 한국은 어려운 경기를 펼치게 됐습니다.

선제골 이후 주춤했던 한국, 이정수 동점골로 만회

한국은 선제골 허용 이후 수비진의 라인 컨트롤이 안정을 찾으면서 추가 실점을 줄이려고 했습니다. 좌우 풀백이 오버래핑을 자제하고 센터백과 동일 선상에서 호흡을 맞춘데다 김정우의 위치까지 밑쪽으로 쏠리면서 나이지리아의 공격 기세를 막아내려 했습니다. 나이지리아 선수들은 아프리카 특성상 한번 분위기를 타면 걷잡을 수 없이 몰아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무리하게 공격으로 나오기보다는 수비쪽에 무게감을 두었습니다. 전반 25분 점유율이 40-60(%)로 떨어졌지만 수비를 강화한 선택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미드필더들의 경기 운영은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협력 수비에 의한 압박이 끈질기지 못했고 적극적으로 달라붙지 못해 하프라인 부근에서 공을 커팅하는 횟수가 부족했습니다. 미드필더 모두가 서로 따로노는 수비 위치를 나타내면서 커버 플레이에 취약한 단점을 드러내면서 상대 공격 옵션들에게 뒷 공간을 허용하는 문제점을 나타냈습니다. 다행히 포백이 라인 컨트롤을 잘 잡으면서 상대에게 박스 안쪽으로 침투하는 기회를 허용하지 않았지만, 미드필더진의 느슨한 압박 때문에 여러차례의 공격을 내주면서 한국이 동점골을 넣을 수 있는 틈을 노리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나이지리아전은 16강 진출에 있어 중요한 경기였지만 아이러니하게 짜임새가 좋지 못했습니다.

한국은 전반 30분 박지성이 박스 왼쪽 바깥에서 공을 잡아 침투를 시도했을 때 골키퍼 에니에아마의 반칙을 유도하면서 프리킥을 얻었지만 박주영의 헤딩슛이 에네에아마의 선방에 걸렸습니다. 5분 뒤에는 우체의 중거리슛이 오른쪽 골대를 강타하는 위기 상황을 내줬지만 다행히 실점을 모면했습니다. 그리고 전반 38분, 기성용이 왼쪽 측면에서 오른발로 프리킥을 올리자 이정수가 상대 수비 뒷 공간 사이로 파고들어 절묘한 헤딩골을 작렬했습니다. 상대팀 선수들이 한국의 공격 옵션들을 마크하느라 분주할 때 이정수가 그 틈을 노려 골을 넣었고, 이정수의 위치를 파악하여 정확한 프리킥을 연결했던 기성용의 재치 또한 빛났습니다.

박주영 역전골-페널티킥 동점골 허용...한국, 월드컵 원정 첫 16강 진출 확정

한국과 상대하는 나이지리아는 후반 시작과 함께 요보를 빼고 에치에질레를 투입했습니다. 요보가 전반 막판에 부상당하면서 불가피하게 수비수를 교체한 것이죠. 요보는 그동안 나이지리아 수비의 중추 역할을 맡으면서 정신적 지주의 존재감을 가진 선수인데 불의의 부상으로 교체되고 말았습니다. 더욱이 에치에질레는 지난 그리스전에서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면서 교체되었던 이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이지리아는 에치에질레-시투-아폴라비-오디아로 짜인 포백으로 새롭게 편성하면서 후반전을 맞이했지만 얼마만큼 호흡이 맞출지 의문 이었습니다. 후반전에 나이지리아 골문을 겨냥하는 한국의 공격 옵션에게 호재였습니다.

후반전을 맞이했던 한국은 역전골을 넣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였습니다. 공격 옵션들이 나이지리아 수비 뒷 공간을 노리는 움직임을 통해 상대를 흔들어 골 기회를 노리는 영리한 경기 운영을 펼쳤습니다. 그 성과는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습니다. 박주영이 후반 3분 박스 왼쪽 공간에서 오른발로 감아찼던 프리킥이 나이지리아의 오른쪽 골망을 흔들어 역전골을 넣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동안 월드컵 무대에서 불운에 시달렸으나 나이지리아전에서 골을 넣으려는 집념이 빛났던 역전골 이었습니다. 나이지리아 골키퍼 에니에아마가 박주영의 한 박자 빠른 슈팅 궤적을 늦게 읽었던 바람에 다이빙 타이밍이 늦어져 골이 들어간 것이죠.

역전에 성공한 한국은 나이지리아 진영에서 서로 패스를 주고 받으며 나이지리아의 반칙을 유도했습니다. 후반 8분에는 박주영이 박스 정면에서 프리킥을 날렸으나 골대 바깥으로 향하면서 추가골을 넣지 못했지만 슈팅 궤적이 날카로웠습니다. 상대 미드필더진의 압박이 점점 느슨해지고 반칙을 일관하면서 후반전 경기 흐름을 장악했습니다. 이에 나이지리아는 후반 11분 카누를 빼고 마틴스를 교체 투입했고, 2분 뒤에는 야쿠부가 후방의 대각선 패스를 받아 한국 문전으로 침투했으나 슈팅의 세기가 약했고 정확도가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후반 15분 이영표, 16분 박주영의 슈팅을 통해 나이지리아 골문을 겨냥하며 상대에게 공격 분위기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한국은 후반 18분 염기훈을 빼고 김남일을 교체 투입해 4-2-3-1로 전환했습니다. 김정우-김남일이 더블 볼란치를 맡고 박지성-기성용-이청용이 2선 미드필더를 형성하면서 수비를 강화해 2-1의 리드를 지키려는 의지를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허정무 감독의 의도는 6분 만에 백지화되고 말았습니다. 김남일이 박스 안에서 무리한 백태클로 페널티킥을 허용했고 야쿠부에게 동점골을 내줬습니다. 김남일이 너무 급하게 수비를 전개했던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이어졌죠. 그 이후에는 박지성-차두리-김정우가 동점골 허용 이후 2분 동안 나이지리아 진영에서 슈팅을 노렸으나 골망을 흔들지 못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미드필더와 공격수, 좌우 풀백의 오버래핑을 통한 공격적인 움직임을 통해 여러차례 슈팅 기회를 노렸습니다. 나이지리아의 좌우 풀백 뒷 공간이 열리면서 측면을 통한 공격 전개가 이어졌죠. 후반 30분에는 박주영이 에치에질레와 정면 경합하는 도중에 한 박자 빠른 슈팅을 날렸지만 공은 골대 바깥으로 향했습니다. 1분 뒤에는 이청용이 왼쪽 진영에서 중거리슈팅을 시도하면서 역전골을 넣으려는 의지를 나타냈습니다. 같은 시각에 치러졌던 아르헨티나-그리스 경기에서는 아르헨티나가 데미첼리스의 골로 1-0으로 앞섰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국의 16강 진출이 무르익었습니다.

한국은 후반 34분 마틴스에게 골문 가까이에서 역전골을 허용당할 뻔했지만 다행히 상대의 슈팅이 골문 바깥으로 부정확하게 향하면서 위기 상황을 넘겼습니다. 많은 선수들이 공격에 집중하다보니 수비의 무게감이 떨어지면서 상대에게 일격을 내줄 뻔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전열을 재정비하여 미드필더진끼리 간격을 좁히면서 패스 위주의 경기를 펼치면서 상대에게 공격 기회를 허용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후반 39분 기성용이 다리에 쥐가 날 정도로 모든 선수들이 16강 진출을 위해 상대팀 선수보다 한 발짝 더 뛰기 위한 노력을 다했습니다. 2분 뒤에는 김재성이 기성용 대신에 교체 투입했고, 인저리 타임에 김동진까지 투입하면서 시간을 벌으며 2-2 동점을 지킨 끝에 16강 진출을 확정 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