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축구

북한의 0-7 대패, 조롱해선 안 될 이유

 

북한이 포르투갈에게 여러차례 실점을 헌납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깝고 씁쓸하게 느껴졌습니다. 북한이라서 안타까운 부분도 있지만, 약팀이 강팀에게 처절하게 무너지는 모습이 좋지 않았습니다. 축구는 약육강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약팀이 강팀의 먹잇거리가 될 수 밖에 없지만 약팀 입장에서 생각하면 기분이 좋을리가 없습니다. 지구촌 축구팬들이 보는 앞에서 포르투갈에게 0-7로 대패하면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북한은 포르투갈전에서 이변을 일으킬 것으로 보였습니다. 포르투갈이 2008년 카를로스 퀘이로스 감독 부임 이후 견고한 수비 조직력을 자랑하는 팀들에게 고전을 면치 못했기 때문입니다. 호날두에 의존하는 공격 패턴을 일관하면서 상대 수비의 압박 타이밍을 벌어주는 문제점을 남겼고 그 과정에서 원톱의 임펙트 부족, 데쿠의 느려진 공격 전개 등이 약점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미드필더진을 장악하는 유리한 경기 운영에도 불구하고 골을 해결짓지 못하는 양상이 코트디부아르와의 월드컵 본선 1차전까지 이어지면서 공격력 침체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포르투갈이 16강에 진출하기 위해 기존과 다른 전술을 앞세워 북한과 상대했기 때문입니다. 호날두에 의존하던 공격 패턴이 메이렐르스-멘드스 같은 공격형 미드필더들의 패스를 중심으로 북한 진영을 위협했기 때문입니다. 원톱 알메이다는 2선과 거리를 좁혀 미드필더들의 패스 플레이를 유도하면서 후방 공격 옵션의 침투 공간을 확보하는 이타적인 활약을 펼쳤습니다. 포르투갈 공격의 중심인 호날두는 돌파 위주의 플레이보다는 왼쪽 공간에서 킬패스를 뿌리거나 슈팅을 시도하며 상대 수비를 흔드는데 주력했습니다.

이러한 포르투갈의 전술 변화는 북한이 예측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포르투갈이 호날두에 의존하는 팀이기 때문에 '호날두 봉쇄'에 주력하는 모습이 두드러졌습니다. 박철진이 경기 초반부터 호날두를 찰거머리처럼 따라 붙었는데 비해 시망이 포진한 오른쪽에서 공간을 내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시망이 드리블 돌파를 통해 공간을 창출하기보다는 북한 수비가 부지런히 압박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 공간에서 전반 29분 티아구의 빠른 볼 처리에 의한 전진패스가 북한 수비수 3명 사이를 뚫고 메이렐르스의 선제골로 이어졌습니다. 무실점 경기를 노렸던 북한의 기세가 무너지는 순간 이었습니다.

북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수비 숫자가 지나치게 많았다는 것입니다. 5백을 기반으로 끈끈한 수비 조직력을 내세우는 팀이기 때문에 수비수들이 많을 수 밖에 없지만 오히려 이것이 포르투갈전에서 독이 되고 말았습니다. 공격수와 미드필더를 합해 5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공격 과정에서 활동 부담이 많을 수 밖에 없으며 상대는 빠른 수비 전환을 통해 북한 선수들을 압박하고 공을 따내며 공격 기회를 잡는 능숙함을 발휘했습니다. 퀘이로스 감독이 북한의 약점을 간파하여 다득점 전략에 나선 것이 분명합니다. 코트디부아르와 G조 2위를 다투는 상황이기 때문에 골득실이 중요할 수 밖에 없으며 북한전에서 많은 골이 필요했습니다.

(참고로 퀘이로스 감독은 1996~1997년 일본 J리그 나고야 그램퍼스 사령탑을 맡았으며 동양 축구를 잘 알고 있습니다. 맨유 수석코치 시절에는 박지성과 함께 한솥밥을 먹으면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브레인 역할을 했으며 2007/08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경력이 있는 지략가 입니다.)

만약 북한이 경험 많은 팀이라면 수비보다는 미드필더진의 숫자를 늘리면서 압박을 강화하고 상대 공격 템포를 늦추는 영리함을 보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북한의 수비 축구에서는 수비 숫자에 많은 인원을 두다보니 미드필더를 활용한 수비 능력이 뒤떨어집니다. 문인국-박남철은 공격 성향의 미드필더이고 홍영조는 원 포지션이 공격수임에도 왼쪽 윙어를 맡았기 때문에 안영학이 홀딩 역할에 주력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리광천-차종혁으로 짜인 좌우 윙백들의 활동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는데 시망-호날두 봉쇄 때문에 앞쪽으로 쉽게 전진하기 어려운 환경에 있었습니다. 포르투갈전에 임하는 컨셉부터 무너진 상태였습니다.

수비 축구는 수비 숫자를 많이 두고 있다고 해서 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미드필더진을 시작으로 상대의 패스 공간을 미리 선점하고, 협력 수비를 강화하면서, 상대 공격수 움직임을 놓치지 않는 것이 기본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미드필더진을 내주고 경기에 임했기 때문에 메이렐르스-멘드스의 패스를 막기가 어려웠으며 안영학이 모든 짐을 안고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홍영조-박남철-문인국이 전진하는 형태의 패턴을 나타내면서 안영학이 메이렐르스-멘드스를 막아야만 했으니 상대팀에게 26개의 슈팅을 내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북한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8강 신화를 남아공 월드컵에서 재현하겠다는 의지가 강했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를 1-0으로 꺾고 8강에 진출했던 기적은 '냉정히 말해' 44년 전 이야기일 뿐입니다. 세계 축구는 44년 동안 급속도로 발전했으며, 선수들에게 요구되는 능력이 많아지고, 여러 형태의 전술과 지략이 늘어나면서 감독들의 전술 싸움이 치열해졌습니다. 오로지 정신력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겠다는 마음은 현대 축구에서 통하지 않습니다. 정신력 이전에는 경험과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강팀을 상대로 그런 부분이 절실히 필요합니다.(더욱이 정신력은 좋은 경기를 펼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자세일 뿐 합숙 기간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북한의 0-7 대패는 비웃음을 당하기에 충분합니다. 북한이 후반전에 골을 내주면서 무기력한 경기 자세를 보인 끝에 또 다시 골을 내주는 모습이 반복 될 때, 월드컵 본선에 참가할 수 있는 클래스인지 의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반에서 시험 성적이 안좋은 학생을 깔보는 마음이 어쩌면 북한 축구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옮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한 가지 되새겨야 할 것은 북한이 '세계 최강' 브라질을 상대로 선전했다는 것입니다. 전반전에 실점을 헌납하지 않으면서 경기 종료까지 2골을 내준 것은 약팀으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파비아누-카카 봉쇄에 성공했던 밀착 수비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정대세가 최전방과 2선을 부지런히 움직였고, 지윤남이 후반 44분 골을 터뜨린 것, 끝까지 패배하지 않으려는 투지는 소기의 성과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포르투갈전 7실점은 경험 및 실력 부족 이었을 뿐, 44년 만의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은 것 만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북한의 브라질전 선전은 그동안 조용하게 잠재되었던 능력을 과시하는 순간 이었습니다. 포르투갈전은 정신력과 수비를 강조하는 기존 북한 축구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북한식의 축구보다는 세계 축구의 흐름을 받아들여야 '무한 발전' 할 수 있다는 과제를 얻게 됐습니다. 오는 25일 코트디부아르와의 월드컵 마지막 경기는 16강 진출이 좌절된 상태에서 치르는 것이지만 마지막까지 선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월드컵 같은 세계 무대를 통해 희망과 한계를 동시에 체험한 것은 북한 축구의 앞날에 값진 일이 될지 모릅니다. 북한의 0-7 대패를 조롱해선 안 될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