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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일본 축구의 한계, 수비 축구만 완벽할 뿐

 

일본 축구의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게 가려졌던 경기였습니다. 전반전에 수비 축구의 완벽함을 과시했다면 후반전에는 일본의 본래 문제점이었던 공격 축구의 부족함이 드러났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일본 축구의 한계였던 것입니다.

오카다 다케시 감독이 이끄는 일본 축구 대표팀이 19일 저녁 8시 30분(이하 한국시간) 더반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0 남아공 월드컵 E조 본선 2차전 네덜란드전에서 0-1로 패했습니다. 후반 8분 일본 문전에서 선수들이 볼 경합을 벌이는 과정에서 베슬러이 스네이더르가 로빈 판 페르시의 패스를 받아 오른발 중거리슛으로 일본 골망을 갈랐습니다. 이로써 네덜란드는 남아공 월드컵 참가국 중에 최초로 16강 진출을 확정 지었으며 일본은 카메룬을 꺾고 기사회생한 덴마크를 꺾어야 16강에 오를 수 있습니다.

일본, 네덜란드전에서 선전했지만 공격은 예전처럼 비효율적

일본은 네덜란드전에서 4-1-4-1 포메이션을 구사했습니다. 가와시마가 골키퍼, 나가토모-툴리우-나카자와-코마노가 포백, 아베가 홀딩맨, 오쿠보-엔도-하세베-마쓰이가 미드필더, 혼다가 원톱을 맡았습니다. 카메룬전에 이어 네덜란드전에서도 미드필더 혼다를 원톱으로 기용하면서 전형적인 공격수들을 배치하지 않았고, 일본 축구의 자랑인 미드필더들의 조직력을 키우며 네덜란드와 맞서겠다는 의도가 보였습니다. 전반 막판에는 오쿠보가 판 데르 빌을 크루이프턴으로 제치고 돌파하는 멋진 장면을 연출하면서 관중들의 환호를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일본은 미드필더 전체의 조화를 중요시합니다. 지금까지 공격에 비중을 키우면서 짧은 패스를 앞세운 점유율 축구를 중시했다면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수비쪽에 무게감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카메룬전 1-0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고 네덜란드와의 전반전에서 선전할 수 있었습니다. 수비시에는 엔도-하세베가 아베와 동일 선상을 유지하고 오쿠보와 마쓰이까지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하면서 수비수와 미드필더를 포함한 9명이 서로 간격을 좁혀 네덜란드 공격진을 봉쇄했습니다. 여기에 혼다까지 전방에서 상대 선수들을 압박하여 공격 템포를 늦추도록 움직이면서 네덜란드에게 골 기회를 주지 않으려 했습니다.

일본 수비 축구의 가장 큰 핵심은 포백이 골문 밑으로 내려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수비 축구를 펼치는 팀들의 전형적인 특징은 수비수들을 골문 밑으로 내리고 미드필더까지 박스 부근으로 포진시키는 극단적인 수비 축구를 펼칩니다. 하지만 이 작전은 상대팀에게 중거리슛을 허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많이 내주기 때문에 오히려 독입니다. 그래서 일본은 포백을 전방 배치하여 미드필더들과 폭을 좁히면서 라인 컨트롤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수비 균형을 강화했습니다. 중원에서는 엔도-아베-하세베가 스네이더르를 봉쇄하고 판 더르 바르트-판 페르시-카위트로 짜인 네덜란드 공격진으로 향하는 패스 물줄기를 차단하는쪽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전반전에는 일본 진영에 있던 선수들이 9명 있었습니다. 그런데 네덜란드는 일본에게 역습 기회를 내주지 않기 위해 데 용-판 보멀로 짜인 더블 볼란치를 모두 전진시키지 못하면서 4~6명의 선수들이 일본 진영에서 공격에 참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네덜란드와 숫적 우세를 점한것에 힘입어 상대팀의 공격을 무수하게 차단했고 판 더르 바르트-판 페르시-카위트-스네이더르 같은 공격 옵션들을 꽁꽁 봉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특히 판 더르 바르트-판 페르시의 전반전 패스 정확도가 61.5%에 그칠 정도로 네덜란드의 콤비 플레이가 일본의 압박에 무너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본은 네덜란드와의 전반전 점유율에서 31-69(%)의 열세를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슈팅 숫자는 5-3(유효 슈팅 4-2, 개)의 우세를 나타냈습니다. 네덜란드를 상대로 수비적인 경기를 펼치고도 상대팀에게 슈팅 기회를 내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일본 축구의 수비력이 얼마만큼 견고하고 탄탄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나카자와의 발이 느리고, 나카토모-코마노가 상대 공격 옵션에게 측면 뒷 공간을 쉽게 허용하고, 툴리우가 무리하게 공격에 가담하는 수비수들의 약점이 미드필더의 수비 지원이 어우러지면서 어떠한 단점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네덜란드 입장에서 보면 일본과의 전반전은 졸전 이었습니다. 공격 옵션 전원이 모두 발이 묶인데다 2대1 패스와 대각선 패스, 킬패스를 통한 공격 전개가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고 서로 자기 위치를 지킬려는 움직임 때문에 상대 압박을 이겨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공격 옵션끼리의 간격이 넓었던 것도 일본의 압박 타이밍을 벌어주는 문제점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후반들어 공격적으로 움직인 것이 오히려 네덜란드에게 반격의 기회를 헌납하고 말았습니다. 엔도-하세베를 오쿠보-하세베와 동일 라인으로 올리고 혼다와의 간격을 좁히면서 공격에 승부수를 띄웠던 것입니다. 하지만 오카다 감독의 전술 변화는 네덜란드의 공격력을 간과한 것입니다. 네덜란드가 엔도-하세베의 뒷 공간을 노리는 측면 침투를 통해 상대 진영을 파고들었고 그 과정에서 후반 8분 스네이더르의 중거리 골로 승부를 갈랐습니다. 만약 일본이 후반전에도 전반전처럼 수비를 강화하면서 네덜란드 공격진을 요리했다면 무승부를 통한 승점 1점 획득으로 16강 진출의 유리한 고지를 점했을지 모르지만, 오카다 감독의 공격 의지가 결국 패배를 자초했습니다.

일본은 후반들어 미드필더와 수비수들이 패스를 주고 받으며 점유율을 늘리는 축구를 노렸습니다. 31-69(%)의 열세를 나타냈던 전반전 점유율을 후반전에 39-61로 끌어올렸고, 157-394(개)로 엄청난 열세를 보였던 전반전 패스 횟수가 후반전에만 249-274로 거의 대등한 횟수를 기록하면서 공격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패스를 통한 점유율 축구로 승부를 걸었던 일본 축구의 본래 스타일이 네덜란드와의 후반전에서 재현된 것입니다.

그러나 엔도-하세베가 데 용-판 보멀과의 허리 싸움에서 우세를 점하지 못하면서 네덜란드 박스 안쪽으로 전진하는 작업이 쉽지 않았습니다. 일본 축구의 고질적 단점인 피지컬, 압박 대처 능력에 결함을 드러내면서 패스가 끊어지는 문제점이 나타났습니다. 여기에 오쿠보-혼다-마쓰이가 네덜란드 포백의 끈끈한 견제를 받아 유기적인 콤비 플레이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전반전에는 선수들끼리 서로 간격을 좁히면서 네덜란드 선수들을 압박했는데 후반전에는 간격이 벌어지면서 효율적인 공격이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일본 축구의 가장 큰 문제점인 킬러 부재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혼다가 네덜란드 진영에서 완전히 발이 묶였기 때문이죠.

그래서 일본은 나카무라-오카자키-타마다 같은 공격 옵션들을 교체하면서 오카자키-혼다 투톱의 4-4-2로 전환했으며 타마다-나카무라 같은 공격 성향의 선수들이 측면을 맡았습니다. 후반 35분 이후에는 툴리우가 공격수로 전환하면서 3-4-3으로 변신했습니다. 문제는 공격수와 미드필더와의 간격이 점점 벌어지면서 패스 플레이가 힘들어지게 됐습니다. 공수 양면에 걸쳐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던 엔도-아베는 활동적인 부담을 받으면서 지칠 수 밖에 없었고, 공수 밸런스가 따로 노는 비효율적인 경기를 펼치면서 결국 0-1로 패했습니다.

오카다 감독은 네덜란드를 이기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1승을 확보한 상태에서 승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승점 이었습니다. 후반전에 공격적으로 경기를 펼치지 않았다면 수비 축구의 완벽함을 세계에 과시했을지 모를 일입니다. 문제는 공격적으로 움직이면서 일본 축구가 기존에 안고 있었던 공격 축구의 문제점이 노출 됐습니다. 전반전이 일본 축구가 원했던 형태의 경기 흐름이었다면 후반전에는 일본 축구의 한계가 월드컵에서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카메룬전에서 롱볼 공격을 일관하며 경기의 퀄리티를 떨어뜨렸던 일본은 그저 수비 축구만 완벽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