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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김정우-조용형, 편견에 맞서 승리한 위너

 

'편견'이라는 단어는 우리 일상 생활에 반갑지 않은 키워드입니다. 어떤 사물과 현상에 대해서 그것에 적합하지 않은 견해를 드러내거나 한쪽으로 치우친 판단을 하는 경우를 편견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공부 잘하는 학생에게 '저 녀석은 공부만 잘했지 운동을 못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곧 편견이 되며 그 학생은 다른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할지 모릅니다.

편견의 무서움은 축구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K리그는 재미없다, K리그=텅 빈 관중, 박주영은 몸싸움에 약하다, 박지성은 공격력이 약하다, 내셔널리그 출신은 K리그에서 성공할 수 없다, 키 작은 선수는 축구하지 말아야 한다 등과 같은 편견은 축구에서 골고루 퍼졌으며 실제로 여러 대상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 편견을 극복하기까지의 과정은 많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지만 정작 그 당사자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합니다. 우리는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주역이었던 김남일이 그 이전까지 '세계 무대에서 통할 수 없다'는 편견에 시달렸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12일 한국이 남아공 월드컵 본선 첫 승을 거두었던 그리스전에서는 두 명의 주축 선수가 여론의 편견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했습니다. 김정우(28, 광주) 조용형(27, 제주)가 바로 그들입니다. 두 선수는 왜소한 체격 때문에 몸싸움이 부족하고 각각 홀딩맨과 센터백으로서 부적합하다는 편견이 따라 다녔습니다. 특히 조용형은 불안한 수비 때문에 '자동문'이라는 비아냥을 받았던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평가전에서 사람들의 편견이 틀렸음을 실력으로 입증하더니 그리스전에서 발군의 기량을 과시하며 한국에게 값진 승리를 선사했습니다.

김정우는 90분 동안 중원을 활발히 헤집고 다니며 상대 공격을 찰거머리 같이 봉쇄했습니다. 중원에서 상대팀 선수가 공을 잡으면 그 즉시 공을 빼앗거나 측면쪽으로 몰아세우는 압박을 펼치면서 그리스 공격의 길목을 봉쇄하는데 주력했습니다. 여기에 정확한 전진패스와 과감한 중거리슛으로 그리스 진영을 위협하며 공수 양면에 걸친 다재다능함을 과시했습니다. 김정우의 저돌적인 활약을 막지 못했던 그리스 주장 카라구니스는 유로 2004 우승 주역의 이름값을 과시하지 못하고 후반 시작과 함께 질책성 교체 됐습니다.

조용형은 이정수와 함께 센터백을 맡아 강력한 힘과 다부진 체격을 자랑하는 그리스 공격수들을 봉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190cm가 넘는 신장을 자랑하는 사마라스-하리스테아스를 빈틈없이 커버 플레이했고 골잡이 게카스에게 빈 공간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상대에게 이렇다할 공격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안정적인 수비 조율까지 힘을 실어주면서 그리스 공격수들을 꽁꽁 묶었고 상대팀이 한국 진영에서 슈팅을 날린 횟수는 단 2개에 불과했습니다. 한마디로 자동문이 고장난 것입니다.

불과 4개월 전 까지만 하더라도, 김정우와 조용형이 그리스전에서 맹활약을 펼칠거라 예견한 이는 드물었습니다. 두 선수는 지난 2월 10일 중국전 0-3 패배를 빌미로 수비력 부족 때문에 여론의 혹독한 질타를 받았습니다. 그 배경에는 왜소한 체격이 있었습니다. 센터백과 중앙 미드필더는 몸싸움을 많이 펼치기 때문에 체격조건이 좋은 근육질 선수들이 선호를 받기 쉽습니다. 하지만 김정우와 조용형은 그 선수들에 비해 말랐기 때문에 투쟁적인 모습이 부족하다는 여론의 평가가 지배적 이었습니다.(김정우와 조용형의 체격은 각각 183cm/70kg, 183cm/72kg 입니다.)

하지만 축구는 농구처럼 체격 조건으로 포지션을 정하는 스포츠 종목이 아닙니다. 아무리 홀딩맨이라도 에시엔같은 근육질 체격이 적합하다는 명제는 축구에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스체라노와 라사나 디아라는 170cm 초반의 단신입니다. 센터백은 다부진 체격을 자랑하는 선수들이 선호받기 쉽지만 한국에게 0-2로 패했던 그리스 수비수들은 우세한 체격을 맘껏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박주영은 프랑스리그에서 190cm 넘는 거구의 센터백을 상대로 공중볼 경합에서 이겼던 적이 여럿 있었습니다. 4년 전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이탈리아 센터백 칸나바로의 키는 176cm입니다.

물론 축구는 체격 조건이 좋은 선수들이 유리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무조건 유리하다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장신 선수들은 순발력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으며 단신 선수들은 공중볼 경합에서 정면으로 맞부딪치기 어렵습니다. 체격 조건의 한계를 이겨내는 선수들이 녹색 그라운드라는 치열한 전쟁터에서 생존할 자격이 충분합니다. 김정우와 조용형이 바로 그들입니다. 김정우는 홀딩맨으로서 성공하기 위해 지구력을 기르며 중원을 활발히 넘나들 수 있는 역량을 키웠습니다. 조용형은 특유의 영리한 플레이로 조율과 커버에서 강점을 발휘했습니다.

김정우와 조용형이 허정무 감독의 신뢰를 받는 이유는 홀딩맨과 센터백으로서 우수한 재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허정무 감독은 미드필더를 중심으로 하는 패스 플레이를 선호하는데 패싱력이 떨어지는 조원희, 잦은 부상으로 활동 폭이 좁아진 김남일 보다는 공수 양면에서 골고루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김정우를 택했습니다. 기성용이 중원에서 막히면 김정우가 정확한 스루패스와 전진패스, 빨랫줄 같은 중거리슛으로 상대 진영을 공략할 수 있는 이점이 있고 기성용과 함께 패스를 통한 콤비 플레이로 다양한 공격 패턴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악착같이 상대 중앙 미드필더를 물고 늘어지는 수비력이 근래에 향상되면서 '한국의 플래쳐(또는 뼈래쳐)'로 불리게 됐습니다.

조용형은 4백 보다는 3백의 스위퍼 체질에 적합한 성향입니다. 강력한 몸싸움으로 상대 공격수를 제압하는 파이터형 센터백이 국내에 즐비하다보니 조용형 같은 영리한 타입이 다른 수비수들과 차별화된 특성을 지녔습니다. 그래서 4백의 센터백은 파이터형을 두 명 세우기 보다는 서로 다른 유형의 선수들을 세우며 서로의 장점을 최대화시키고 단점을 덮을 수 있는 호흡을 과시하는 것이 정석입니다. 이정수-김형일-강민수가 파이터형이라면 조용형은 영리함으로 수비를 조율할 수 있는 선수입니다. 4백은 대인방어 이전에 끈끈한 수비 조율이 근간이기 때문에 조용형의 비중이 컸고 그리스전 철벽 수비의 원동력 또한 조용형 이었습니다.

그리스전 승리의 주역으로 활약했던 김정우와 조용형은 '우승후보' 아르헨티나와 치열한 격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김정우는 기성용 또는 김남일과 함께 마스체라노-베론의 발을 묶어야 하며 조용형은 메시-이과인-밀리토 같은 중앙 공격수 자원들과 경합해야 합니다. 한국이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이변을 일으키려면 두 선수의 활약이 중요합니다. 그리스전을 비롯한 최근의 오름세 행보를 놓고 보면 아르헨티나전에서 맹활약을 펼칠거라 믿습니다. 두 선수는 사람들의 편견에 맞서 승리한 '위너'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