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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김동진-이영표, 그리스전 승리의 필승카드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그리스와의 남아공 월드컵 본선 1차전을 앞둔 자체 연습 경기에서 예상외의 조합을 선보였습니다. 그동안 허정무호의 왼쪽 풀백으로 활약했던 이영표의 위치가 오른쪽으로 변경됐습니다. 이영표의 자리에는 김동진이 모습을 보이면서, 김동진-조용형-이정수-이영표로 짜인 포백이 그리스전에 출격할 것으로 보입니다.

'좌 동진-우 영표'로 짜인 풀백 조합은 그리스 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동안 이영표가 줄곧 왼쪽 풀백으로 활약한데다 허정무호 출범 이후 오른쪽으로 출전한 경험이 거의 전무했기 때문입니다. 오른쪽 풀백 출전에 따른 감각 문제도 염려되지만 좌우 측면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 출신인데다 그동안 쌓아왔던 실전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에 오른쪽에 믿고 맡길 수 있습니다.

김동진은 그동안 허정무호의 철저한 백업 멤버로 굳혀졌습니다. 이영표라는 1인자에 가려지다보니 자신의 기량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시간적 기회가 부족했습니다. 지난해에는 혈행성 장애에 시달리고 대표팀 소집 도중 의식을 잃는 불의의 시간을 보내면서 월드컵 최종 엔트리 합류가 좌절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실력에서는 이영표와 버금가거나 대등하다고 볼 수 있으며 지난해까지 몸담았던 러시아리그에서도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하면서 수준급의 기량을 선보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김동진은 한국의 그리스전 승리를 위한 '비밀 병기'로 나서게 됐습니다. 한국과 본선에서 상대하는 팀들은 김동진을 이영표의 철저한 백업 멤버로 예상하겠지만 실제 실력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것임에 분명합니다. 오른쪽 풀백 주전 경쟁을 벌였던 오범석과 차두리가 그리스전에 선발 출전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감수하고 '좌 동진-우 영표' 라인을 내세운 허정무 감독의 변칙 전술이 그리스전 승리를 좌우 할 키 포인트로 떠올랐습니다.

그리스는 3-4-3과 4-3-3을 골고루 소화하는 팀이지만 3명의 공격수를 전방에 배치하는 시스템을 꾸준히 유지했습니다. 한국전에서는 그동안 그리스 대표팀에서 꾸준한 공헌을 했던 사마라스-게카스-하리스테아스(니니스)로 짜인 스리톱을 구사할 것이 분명합니다. 세 명의 특징을 하나의 키워드로 요약하면 테크닉-골잡이-하드웨어의 흐름입니다. 오범석 또는 차두리가 테크니션 성향의 사마라스를 봉쇄하기에는 측면 뒷 공간이 뚫릴 수 있는 불안함이 있으며 이영표가 하리스테아스와 정면 경합을 벌이기에는 하드웨어의 취약함을 안고 경기를 치러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리스전에서는 골 넣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실점 경기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골 넣는 작업이 어렵더라도 수비라인이 안정되어 있으면 상대팀 박스를 공략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수비 강화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허정무 감독은 사마라스-하리스테아스 봉쇄에 대한 카드로 '좌 동진-우 영표'를 내세우는 맞춤형 전략으로 그리스전을 대비하게 됐습니다.

특히 하리스테아스는 국내 여론에서 게카스-사마라스에 비해 덜 알려진 선수지만 A매치 85경기를 소화한 베테랑이며 유로 2004 우승 주역입니다. 191cm의 장신으로서 높은 점프를 앞세운 공중볼을 잘 따내며 다부진 피지컬을 앞세워 강력한 몸싸움을 자랑하는데, 특히 후방에서 넘어오는 롱볼을 머리로 받아내는 스타일은 그리스 전술의 근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영표가 공중볼이나 피지컬 같은 터프한 스타일로 상대를 몰아 붙이는 성향이 아니기 때문에 하리스테아스를 봉쇄하기가 쉽지 않은 걸림돌이 있습니다.

반면 김동진은 이영표와 달리 신체 조건을 활용한 대인 마크에 능합니다. 터프함을 자랑하는 러시아리그에서 다져졌던 방어력을 올 시즌 울산에서 충분히 과시하며 소속팀의 상위권 도약을 이끌었습니다. 물론 하리스테아스보다 7cm가 작지만 장신 선수들을 상대로 대인 마크에서 우세를 점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주눅들지 않으려는 경기 운영을 펼칠 것입니다. 스피드가 빠르지 않지만 발재간이 좋은 선수이고 기본적인 돌파력까지 갖춘 선수인 만큼, 김동진은 하리스테아스와 정면 경합을 벌이는데 온 힘을 모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영표의 오른쪽 배치도 적절합니다. 사마라스가 192cm의 장신이지만 공중볼 보다는 테크닉을 기반으로 경기를 펼치며 왼쪽 측면 뿐만 아니라 중앙으로 이동해서 패스를 받아 공격을 전개하거나 골을 노리는 성향입니다. 하리스테아스가 공중볼을 받아낸다면 사마라스는 공격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끈끈한 대인마크, 순발력을 자랑하는 이영표가 재치있게 마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이영표는 경험이라는 무기가 있기 때문에 오범석-차두리와의 경쟁에서 우세를 점할 수 있는 이점이 작용합니다.

만약 김동진과 이영표가 하리스테아스-사마라스 봉쇄에 성공하면 게카스가 슈팅을 노릴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어렵게 됩니다. 게카스는 골잡이로서의 능력이 출중하지만 미드필더진과 윙 포워드의 지원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최전방에서 스스로 고립되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허정무호의 필승 카드인 좌 동진-우 영표 라인의 그리스전 활약에 따라 한국의 남아공 월드컵 본선 첫 승 여부가 결정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