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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월드컵]독일, 발라크는 없지만 외질이 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우승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독일 축구 대표팀이 치명적인 악재에 직면했습니다. 대표팀의 주장이자 정신적 지주인 미하엘 발라크(34, 첼시)가 부상으로 월드컵에 불참하게 됐습니다.

발라크는 지난 16일 잉글리시 FA컵 결승전 포츠머스전 경기 도중 케빈 프린스 보아텡의 거친 태클에 오른쪽 발목 인대를 다치면서 회복 기간만 최소 8주 이상 걸린다고 합니다. 남아공 월드컵이 불과 20여일 앞으로 남았기 때문에 월드컵 출전은 물거품입니다. 특히 보아텡은 독일 청소년 대표팀 출신의 가나 국적 선수여서 독일 국민들의 거센 비난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발라크는 남아공 월드컵 우승이 간절했던 선수였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독일이 답답한 경기를 펼친다는 외부의 비판 속에서도 8강 미국전, 4강 한국전 결승골로 조국의 결승 진출을 견인했으나 브라질에게 덜미를 잡혔습니다. 4년 뒤 자국에서 열린 독일 월드컵에서는 우승 의욕이 충만했으나 4강에서 이탈리아에게 패하여 3위에 만족했습니다. 그래서 남아공 월드컵에서 우승의 한을 풀며 베켄바우어-마테우스 같은 월드컵 우승 경력이 있는 독일 축구 레전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끝내 부상 앞에 좌절했습니다.

발라크의 월드컵 불참은 독일에게 악재입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시절부터 지금까지 발라크의 패스를 시발점 삼아 공격을 전개했기 때문입니다. 발라크의 강점인 원터치 패스를 비롯 2대1 패스와 스루패스를 기반으로 짧게 주고 받는 콤비 플레이를 유도하는 경기력은 독일 대표팀의 오랜 주 전술 이었습니다. 비록 첼시에서 수비적인 비중이 늘어나면서 공격력이 예전보다 주춤한 아쉬움이 있지만 조율 능력에서는 무게감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독일은 발라크가 빠지면서 새로운 전술을 짜야하는 버거운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독일은 발라크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여러가지 방안을 모색할 것입니다. 발라크의 백업 멤버이자 중앙 미드필더인 지몬 롤페스(레버쿠젠) 토마스 히츨슈페르거(라치오)가 부상으로 예비 엔트리에서 제외되면서 중원이 허약해진 상황입니다. 그래서 측면 자원이 중앙으로 옮길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그동안 좌우 날개로 활약했던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바이에른 뮌헨) 메수트 외질(브레멘)이 중앙으로 옮기고 루카스 포돌스키가 공격수에서 윙어로 내려갈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선수가 외질입니다. 외질은 올해 22세의 터키계 선수이며 팀 동료인 마르코 마린과 함께 독일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꼽힙니다. 다이나믹한 드리블 돌파와 현란한 발재간을 주무기로 삼는 선수인데 전형적인 독일 축구 스타일과 다른 유형으로 꼽힐만큼 독일에서 열렬한 기대와 관심을 끌었습니다. 여기에 폭발적인 스피드를 앞세워 측면을 활발하게 질주하는 파괴력이 있어, 개인의 힘으로 직접 골을 넣을 수 있는 역량까지 갖추었습니다. 왼발잡이지만 좌우 측면을 모두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 또 다른 장점입니다.

그리고 외질은 발라크처럼 짧고 간결한 패스를 주고 받으며 유기적인 콤비 플레이를 엮어낼 수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넓은 시야와 빠른 판단력을 앞세운 패싱력의 날카로움을 뽐냈던 터라 상대 수비의 허를 찌르는 결정적 공격 기회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앙 미드필더까지 겸할 수 있었고 한때 독일이 4-2-3-1을 구사할 때는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외질의 다재 다능함은 발라크가 중심이었던 독일의 전력을 외질-발라크의 공존 체제로 바꾸는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발라크 없이 남아공 월드컵에 참가하는 독일은 외질의 맹활약에 기대야 하는 상황입니다. 외질이 22세 선수인데다 국제적인 명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과소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선수 본인에게는 남아공 월드컵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투박한 스타일이 넘치는 다른 독일 선수들과 달리 남미 선수를 보는 듯한 개인기 위주의 경기를 펼치기 때문에 많은 축구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이타와 이기적인 경기력을 경기 상황에 따라 조절할 수 있는 능숙함이 있어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 스타일이 호감을 얻을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에서는 외질을 독일 축구의 단순한 유망주로 바라볼지 모릅니다. 하지만 외질은 지난해 6월 유럽 U-21 선수권 대회 결승 잉글랜드전에서 1골 2도움을 기록해 독일의 4-0 대승과 함께 대회 사상 첫 우승을 이끈 주역입니다. 지난 시즌 28경기에서 3골 12도움을 기록했고 올 시즌 31경기에서는 9골 12도움을 올리며 팀의 분데스리가 3위 진입 및 다음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출전권 획득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특히 독일 축구 전문지 키커로 부터 분데스리가 전반기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면서, 독일 축구를 대표하는 새로운 주역으로 거듭났습니다.

특히 외질은 올 시즌 분데스리가에서 득점력이 향상되면서 남아공 월드컵에서 독일의 승리를 위해 골을 터뜨릴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발라크가 독일 대표팀에서 꾸준히 골을 넣으며 공격의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해냈듯, 외질은 발라크의 강점인 골 생산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발라크의 자리인 중앙 미드필더를 맡을지, 기존의 자리였던 측면을 맡을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독일 대표팀의 공격 구심점은 발라크에서 외질로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과연 외질이 발라크가 이루지 못했던 월드컵 우승을 통해 세계적인 축구 스타로 거듭날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