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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맨유 계륵' 베르바토프의 날개없는 추락

 

후안 베론과 디미타르 베르바토프는 닮은 꼴의 선수들 입니다. 각각 2001년과 2008년 여름에 2800만 파운드(약 480억원), 3075만 파운드(약 527억원)라는 프리미어리그 최상위권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올드 트래포드에 입성했으나 높은 이적료 가치를 충족시키지 못해 '먹튀'로 낙인 찍혔습니다. 베론이 맨유 역사상 최고의 먹튀로 꼽힌다면 베르바토프는 현지 팬들에게 '디마타르 베론'이라는 비아냥을 받으며 먹튀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두 선수는 전형적인 먹튀 치고는 경기력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베론은 맨유 초기 시절에 팀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점차 안정을 되찾으며 2002/03시즌 맨유의 프리미어리그 역전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베르바토프는 지난 시즌 맨유의 프리미어리그 3연패 멤버로 이름을 드높였고 올 시즌 29경기에서는 12골을 넣었습니다. 하지만 맨유 역사상 최고 이적료에 걸맞지 않게 기복이 심한 활약을 펼쳤다는 점은 먹튀라는 말을 들을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먹튀라는 본질 자체가 돈값에 충실하지 못한 선수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두 선수는 맨유에서 자신이 평소에 맡지 않았던 역할을 맡았습니다. 베론은 허리에서 공격적인 역할을 소화했으나 맨유에서는 살림꾼에 충실했고, 베르바토프는 레버쿠젠-토트넘 시절에 타겟맨을 맡았으나 맨유에서는 쉐도우로 뛰고 있습니다. 베론이 4-2-3-1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기에는 스콜스와 경쟁해야하는 버거움이 따른데다 패스미스가 잦았고 빠른 공격 템포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베르바토프도 타겟맨으로 뛰기에는 팀의 빠른 공격 템포에 익숙하지 못해 공을 따내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두 선수 모두 출중한 실력에 비해 맨유의 컨셉과 맞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점은 두 선수 모두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신뢰를 받던 선수들입니다. 퍼거슨 감독은 2003년 여름 베론을 향한 현지 여론의 비판에 대해 "베론은 여전히 맨유의 선수이며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나는 언제나 베론과 함께 하는 것에 행복하다"고 옹호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첼시가 베론 영입을 제의하면서 이적 시켰습니다. 또한 퍼거슨 감독은 지난 9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베르바토프는 정말 좋은 선수다. 최근 경기에서 굉장히 잘했다"며 베르바토프를 옹호했습니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의 발언을 믿을 수 없는 이유는 그가 립서비스의 달인이기 때문입니다.

베론은 맨유에서 활약한지 2년만에 첼시로 이적했습니다. 맨유 입성 당시 28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했으나 첼시 이적 당시에는 1500만 파운드(약 257억원)를 기록해 맨유 시절의 절반 수준에 머무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베르바토프는 맨유에 입성한지 2년을 앞두고 있지만 맨유에서의 미래를 확신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지난해 여름 루이스 나니와 더불어 세르히오 아게로(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트레이드 루머에 시달랬고 올 시즌 중반에는 맨유의 성적 부진 여파로 현지 언론이 제기한 살생부 명단에 포함됐습니다. 최근에는 다비드 비야(발렌시아)와의 현금 트레이드설까지 나돌고 있습니다.

퍼거슨 감독은 현지 언론이 제기하는 베르바토프의 이적설이 추측이라고 못박았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반응입니다. 아직 시즌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팀의 주축 선수로 뛰고 있는 선수의 사기를 흔들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은 몇해 전 현지 여론에서 제기하던 베론의 이적설을 부정했으나 끝내 그를 첼시에 넘겼던 장본인입니다. 만약 맨유가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4연패 달성에 실패하면 그 희생양은 베르바토프가 혹독하게 치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최근 여론의 반응입니다. 그런 반응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베르바토프가 올 시즌 맨유 전력에서 계륵으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11일 블랙번전은 베르바토프가 왜 맨유의 계륵인지를 인지할 수 있었던 경기였습니다. 베르바토프는 이날 경기에서 50개의 패스 중에 44개를 동료 선수에게 정확하게 연결했으나 정작 블랙번전에서 맡았어야 하는 역할은 패스메이커가 아닌 골잡이 였습니다. 엄연히 공격수인데다 프리미어리그 4연패를 노리던 맨유의 승리를 위해 골을 해결지었어야 하는 책임감이 따랐는데 팀의 사정과는 달리 쉐도우 역할에 충실했습니다. 이러한 룰은 마케다와 역할이 겹치면서 맨유의 공격 마무리가 매끄럽지 못한 원인이 되었고 상대의 밀집수비를 뚤지 못해 0-0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던 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베르바토프는 하프라인에서 공을 잡아 빌드업을 엮어내는 역할에 충실했습니다. 하지만 긱스-스콜스로 짜인 중앙 미드필더와 같은 동선을 유지하여 공을 잡아내거나 중원에 적극적으로 내려오는 등 쉐도우치고는 지나치게 밑선에서 공을 잡았습니다. 결국에는 마케다와의 간격을 좁히지 못해 블랙번이 중원을 기반으로 탄탄한 수비망을 구축할 수 있었고 맨유가 이를 공략하는데 실패했습니다. 더욱이 공을 끌면서 전방으로 달려들었기 때문에 팀의 공격 템포가 늦어지면서 상대의 압박 시간을 벌어줬습니다. 패스 정확도를 높이는 것은 성공했지만 오히려 이것이 맨유의 득점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었죠.

맨유에게 중요한 것은 골이었습니다. 블랙번 밀집 수비의 허를 찌르는 빠른 공격 템포와 상대 뒷 공간을 노리는 움직임을 통해 압박을 분산시키는 것이 중요했죠. 공교롭게도 이 역할은 베르바토프가 아닌 후반 중반에 공격형 미드필더로 교체 투입된 박지성이 소화했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베르바토프의 위치가 원톱에 있지 않았습니다. 최전방에 들어가 공격에 가담한 장면도 있었지만 하프라인에 들어가 공격을 조율하는 장면 또한 적지 않았습니다. 마케다가 교체되면서 원톱 역할을 맡아 최전방을 흔들었어야 했는데 끝까지 자기 역할을 고집합니다. 그래서 맨유는 블랙번 진영에서 패스 돌리기에 급급했을 뿐 상대의 압박을 벗겨내는데 실패했습니다.

더 가관인 것은, 후반 막판 맨유의 최전방 공격을 맡은 선수가 다름 아닌 퍼디난드 였습니다. 팀의 답답한 공격 마무리를 참지 못해 최전방으로 올라갔죠. 퍼디난드의 본래 자리인 센터백은 깁슨이 대신 맡았고 베르바토프가 중앙 미드필더, 퍼디난드가 공격수로 포지션 전환했죠. 이 작전 또한 블랙번의 촘촘한 압박 수비를 공략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이것은 루니의 부상 공백 여파가 맨유에게 컸을 뿐만 아니라 베르바토프의 공격력이 매끄럽지 못했음을 시사하는 장면입니다. 퍼디난드가 공격수로 올라오기 이전에는 베르바토프가 확실하게 골을 책임져야했기 때문이죠.

문제는 베르바토프가 상대팀의 강력한 압박을 벗겨내거나 박스 안에서 활동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토트넘 시절에는 타겟맨이었으나 맨유에서 쉐도우 역할이 몸에 베면서 박스 안에서의 활동에 익숙하지 않게 됐습니다. 올 시즌 강팀과의 경기에 부진하거나 로테이션 차원에 의한 결장을 하게 된 근본적 원인이 이 때문입니다. 지난 시즌 상대팀의 집중적인 압박을 이겨내지 못했던 어려움도 있었지만 2선으로 내려가 공을 잡아 끌고 다니는 역할이 상대의 압박 타이밍을 벌어주는 문제점이 따랐습니다. 그래서 베르바토프를 앞세운 맨유의 공격이 항상 굴곡이 심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베르바토프는 올 시즌 강팀 및 다크호스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지 못해 '강팀에 약한 선수'로 낙인 찍히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 올 시즌 종료 후 베르바토프의 거취가 팬들의 새로운 관심거리로 떠올랐습니다. 3075만 파운드의 거액 이적료를 충족시키지 못한 활약을 펼친데다 맨유 공격력에 꾸준히 공헌하지 못했습니다. 올 시즌 리그 29경기에서 12골 넣었지만 모두 약팀과의 경기에서 골망을 흔들었고 대부분의 골들이 맨유가 리드한 상태에서 기록한 만큼 영양가도 부족합니다. 최근에는 현지 언론에서 강팀과의 경기에서 부진한 이유는 정신력 때문이라는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바이에른 뮌헨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1~2차전, 지난 3일 첼시전 부진으로 맨유의 한 해 농사를 망친 장본인으로 지목되면서 맨유에서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게 됐습니다.

물론 베르바토프의 공격력은 의심할 여지없이 강하며 동료 선수들의 여전한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맨유의 컨셉과 맞지 않는 사실은 많은 축구팬들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맨유의 먹튀를 비롯 계륵으로 전락한 상태이며 그런 행보가 최근에 두드러졌습니다. 더욱이 베론과 닮은 꼴 선수여서 맨유에서의 롱런이 아닌 언제 어느 시점에서 다른 팀에 팔리는 쪽에 무게감이 실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시즌 막바지이기 때문에 그를 향한 이적설은 루머로 보는 것이 맞지만요.

베르바토프가 자신의 건재함을 증명하려면 앞으로 남은 4경기가 중요합니다. 루니가 오는 17일 맨시티전에 복귀할 예정이어서 많은 출전 시간을 확보할지는 미지수지만, 어쨌든 자신을 향한 여론의 차가운 시선에서 벗어나야 맨유가 선두 첼시를 바짝 추격할 수 있습니다. 벼랑끝에 선 베르바토프의 날개 없는 추락은 맨유 공격력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베르바토프가 맨유에서의 롱런을 보장받으려면 남은 4경기에서 모든 사활을 걸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