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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아스날 킬러' 박지성, 역습 공격에 강했다

 

그토록 기다리던 '산소탱크' 박지성(2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의 골이 터졌습니다. 그것도 라이벌 아스날을 상대로 골망을 가른 것이어서 부진 탈출의 큰 힘이 되었고 이번 경기를 발판으로 '아스날 킬러'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불행 끝 행복 시작'이라는 말이 있듯, 이제는 박지성의 화려한 비상을 주목해야 할 때입니다.

박지성은 1일 오전 1시(이하 한국시간)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2009/10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24라운드 아스날 원정에서 시즌 첫 골을 작렬했습니다. 후반 6분 하프라인에서 공을 잡아 상대 골문 앞까지 직접 드리블 돌파를 시도했고, 상대 골키퍼 마누엘 알무니아와 맞선 상황에서 오른발로 상대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박지성의 골에 맨유는 전반 32분 알무니아의 자책골, 전반 36분 웨인 루니의 추가골로 3-1의 승리를 거두며 원정에서 값진 승리를 따냈습니다.

아스날전에서 골을 넣은 박지성은 경기 종료 후 <스카이스포츠>로 부터 '지칠 줄 모르는 플레이(Tireless Work)'라는 평가와 함께 평점 7점을 부여 받았습니다. 맨유에 객관적인 평가를 하기로 유명한 맨체스터 지역지 <맨체스터 이브닝뉴스>에서는 '특유의 에너지 넘치는 플레이로 골을 넣었다'는 칭찬을 받은 뒤 평점 7점을 기록 했습니다. 올 시즌 경기력 저하로 현지 언론에서 안좋은 평가를 받았던 박지성은 아스날전을 기점으로 현지 언론의 찬사를 받으며 자신의 위상을 새롭게 다졌습니다.

박지성, 맨유 역습 공격에 필요한 이유

박지성에게 있어 올 시즌은 프리미어리그 진출 이래 가장 힘든 시즌 이었습니다. 시즌 초반부터 대표팀 차출 후유증으로 컨디션이 저하되어 경기력이 주춤하더니 무릎 부상까지 겹쳐 지난 시즌의 폼을 되찾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여기에 맨유가 지난해 여름 호날두-테베즈와 작별로 속공에서 지공 위주의 점유율 축구로 전술을 바꾸면서 박지성의 쓰임새가 낮아지고 말았습니다.

그런 박지성이 지난 시즌 맨유의 주전이었던 이유는 호날두와 전술적인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적임자였기 때문입니다. 호날두가 맨유의 페너트레이션을 주도하면서 수비에 주력하지 않았던 것은 박지성이 한쪽 측면에서 맨유의 압박에 힘을 실어줬기 때문입니다. 박지성은 적극적인 수비 가담과 세밀한 커팅으로 상대팀의 공격 기세를 끊자마자 빌드업을 하거나 주변에 패스를 연결하며 팀의 역습 과정에 참여했고 호날두의 수비 부담을 덜어줬습니다. 조세 무리뉴 인터 밀란 감독이 박지성의 역습 능력을 칭찬했을 만큼, 맨유 전술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올 시즌은 달랐습니다. 팀의 공격 전술이 역습에서 점유율 축구로 바뀌었기 때문이죠. 빠른 패스워크와 신속한 돌파 보다는 공격 템포를 늦추면서 종방향과 횡방향을 골고루 섞는 패스 전개를 하면서 점유율을 끌어올려 많은 공격 기회를 잡는데 주력했습니다. 그래서 시즌 초반 나니-발렌시아, 그 이후에는 긱스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려 교체 출전과 결장이 잦아졌습니다. 퍼스트 터치와 볼 키핑력 불안을 비롯해 세밀한 패싱력 부족, 과감한 문전 침투 부족으로 공격력에 대한 약점이 부각됐습니다.

박지성을 주전에서 제외시킨 맨유의 저력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공격 템포가 늦다보니 상대팀이 수비 조직을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면서 페너트레이션이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루니-베르바토프 투톱이 들쭉날쭉한 경기력을 나타냈고 특히 베르바토프는 상대팀의 거센 압박에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더니 중위권팀을 비롯 잉글랜드 3부리그 팀인 리즈 유나이티드에게 조차 패하면서 점유율 축구의 한계에 직면했습니다.

그래서 퍼거슨 감독은 팀의 전술 변화를 위해 지난달 24일 헐 시티전 부터 점유율 축구를 버리고 역습 형태의 공격으로 전술 변신을 꾀했습니다. 결과는 성공적 이었습니다. 헐 시티-맨체스터 시티-아스날전에서 10골을 퍼부으며 3경기를 모두 이겼죠. 그 정점에 나니가 있었습니다. 나니는 '호날두의 재림'으로 떠올라 가공할 파괴력을 발휘하며 상대 수비진을 맘껏 두들겼습니다. 그리고 나니와 함께 헐 시티전과 아스날전에서 측면을 맡아 장단을 맞춘 선수가 바로 박지성 이었습니다. 나니가 페너트레이션으로 팀 공격을 주도하면 박지성은 특유의 공간 창출로 상대 수비의 시선을 흐트러놓으며 동료 선수의 골을 도왔습니다.

박지성, 아스날전 승리의 일등공신

어쩌면 박지성의 아스날전 선발 출전은 의외 였을지 모릅니다. 올 시즌 부상 및 부진으로 팀에 대한 기여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강팀과의 경기에서 선발로 뛸 수 있었던 명분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맨유는 지금까지 강팀과의 경기에서 로테이션보다 최정예 멤버를 출전시킨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박지성의 선발 출전이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24년 동안 맨유에서 장기 집권한 퍼거슨 감독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박지성이 아스날전에서 진가를 발휘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측면에 나니-발렌시아 같은 공격력이 뛰어난 윙어를 배치할 수 있었으나 팀의 역습 공격을 위해서는 그 전술에 적합한 선수가 우선적으로 필요했습니다. 나니가 오른쪽 윙어로 자리잡아 호날두 뺨치는 괴력의 공격력을 과시하자 발렌시아의 필요성이 없어졌습니다. 측면에서 균형잡힌 밸런스를 유지하려면 나니의 파괴력을 다른 한쪽 측면에서 도와줄 수 있는 적임자가 필요했습니다. 지난 시즌 호날두의 공격력을 도와줬던 박지성의 선발 출전이 설득력을 얻게 된 것입니다.

퍼거슨 감독의 판단은 적중했습니다. 박지성은 4-3-3 포메이션에서 나니와 함께 좌우 윙 포워드를 맡아 아스날 진영을 공략했습니다. 동료 미드필더들과 함께 패스를 주고 받으며 점유율을 확보하기 보다는 전방 돌파에 이은 패스 전개를 앞세워 상대 옆구리를 파고 들었습니다. 돌파 방향을 상대 포백 정면쪽으로 설정하여 사냐-갈라스의 시선을 측면쪽으로 돌리며 집중력을 떨어뜨렸고, 루니가 상대 수비를 앞쪽으로 끌어올리는 움직임을 취하면서 나니에게 빈 공간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나니는 박지성-루니의 공간 확보에 의해 오른쪽에서 가공할 공격력을 선보이며 아스날 수비진을 힘껏 두드렸습니다.

전반 중반부터는 맨유의 본격적인 역습이 시작 됐습니다. 데니우손-송 빌롱으로 짜인 아스날의 더블 볼란치 조합이 포백과의 간격이 벌어지는 문제점이 생긴 것이죠. 아스날이 공격의 페이스를 높이다보니 미드필더들이 앞선으로 배치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 틈을 노려 박지성과 루니가 상대 미드필더 뒷 공간에 파고들어 골문을 공략했습니다. 그래서 캐릭-스콜스-플래처로 짜인 미드필더들이 압박을 통해 아스날의 예봉을 차단하고 나니가 중심이 되는 역습 과정이 박지성-루니의 공간 장악에 힘입어 빛을 발하더니 전반전에 2골을 넣었습니다.

특히 전반 36분 루니의 골 과정은 박지성을 칭찬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지성은 나니와 함께 하프라인에서 아스날 진영쪽으로 빠르고 파고 들었습니다. 아스날 수비수들은 공을 잡았던 나니에게 시선이 쏠렸지만 토마스 베르마엘렌은 왼쪽 공간으로 돌파하던 박지성을 따라붙었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나니에게 패스를 받던 루니가 노마크 상황이 되었습니다. 루니에 대한 견제 임무를 맡았던 베르마엘렌이 박지성의 돌파에 의해 루니를 놓친것이 실점의 화근이 되었습니다. 만약 박지성이 전방쪽으로 빠르게 질주하지 않았다면 베르마엘렌이 루니를 견제하여 실점을 막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박지성이 후반 6분에 직접 드리블 돌파에 의해 골을 넣을 수 있었던 것은 선수 본인의 과감함도 돋보였지만 아스날의 공수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습니다. 데니우손-송 빌롱이 공격과 수비 사이에서 길을 잃다보니 압박마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죠. 그래서 박지성은 아스날 미드필더 뒷 공간에서 드리블로 공간을 질주하며 상대의 기세를 완전히 무너 뜨렸습니다. 이것은 박지성이 경기 초반부터 활발한 역습을 펼쳤기에 상대 수비 밸런스가 붕괴 되었던 것이며 그 흐름에 힘입어 골을 넣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박지성은 이번 경기에서 '아스날 킬러'의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지난 2006년 4월 9일 아스날을 상대로 프리미어리그 데뷔골을 터뜨렸고 지난해 5월 6일 아스날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서 선제골을 넣으며 팀의 결승 진출을 이끌었죠. 그리고 이번 아스날전 골을 통해 그동안의 부진을 만회하며 팀 공격의 활력소로 다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계기를 얻었습니다. 그런 박지성에게 있어 아스날전은 앞으로의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경기가 됐습니다. 역습에 강한 면모를 보인 박지성의 맹활약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