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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루니 시프트, 맨유의 희망으로 거듭날까?

 

웨인 루니(2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가 24일 헐 시티전에서 4골을 넣으며 팀의 4-0 대승과 프리미어리그 1위 도약을 이끌었습니다. 전반 8분 선제골을 넣은 뒤 후반 37분, 44분, 48분에 3골을 몰아치며 상대 골문을 4번이나 흔들었던 것이죠. 그래서 루니는 헐 시티전 4골로 대런 벤트(선더랜드, 15골)를 4골 차이로 제치고 프리미어리그 득점 단독 선두(19골)에 오르며 득점왕 레이스에서 독주 체제를 형성했습니다.

한 가지 눈여겨 볼 것은 루니의 4골이 모두 문전 안에서 이뤄졌습니다. 선제골은 폴 스콜스의 중거리슛이 상대 골키퍼 몸에 맞고 흐른 것을 가볍게 밀어 넣었고 두번째 골은 문전 오르쪽에서 대런 깁슨의 대각선 패스를 받아 오른발로 강력한 슈팅을 날렸습니다. 세번째 골은 루이스 나니의 오른쪽 크로스에 이은 헤딩슛이었고 네번째 골은 문전으로 파고드는 과정에서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의 로빙패스를 받고 3명의 상대팀 선수 사이를 뚫고 무게 중심을 낮춰 오른발로 골을 터뜨렸습니다.

이러한 장면들은 루니가 지난 시즌과 비교해 볼 때 얼마만큼 달라졌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루니는 호날두-테베즈와 공존하던 지난 시즌에 팀의 골을 도와주는 이타적인 역할을 도맡았습니다. 포지션은 공격수였으나 경기 상황에 따라 왼쪽 측면과 미드필더 중앙까지 활동폭을 넓히며 팀의 빌드업을 이끌어내고 수비 가담에 임했죠. 문제는 골에 대한 욕심을 가지다보니 골 결정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상대 수비를 벗겨내기 이전과 골문과 거리가 먼 쪽에서 무리한 슈팅을 날리면서 골 결정력이 떨어진다는 외부의 비판을 받았죠.

그래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지난해 여름 호날두-테베즈가 이적하면서 루니의 위치를 타겟맨으로 고정 시켰습니다. 그러면서 루니의 득점력을 보조할 적임자로 베르바토프를 쉐도우로 활용한 것이죠. 베르바토프가 상대의 압박 세기에 따라 경기력에 기복이 심했던 아쉬움이 있지만, 다른 동료 선수들이 최전방쪽으로 많은 골 기회를 밀어줬기 때문에 루니의 가공할 득점포가 대부분의 경기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루니는 활동 범위가 최전방쪽에 쏠리면서 지난 시즌과 달리 절호의 상황에서 골 기회가 많아졌고 이것은 문전 안에서 자신의 골 결정력이 살아나는 비결이 됐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루니 시프트'가 맨유에게 있어 양날의 칼이 되고 말았습니다. 호날두-테베즈가 없는 맨유로서는 루니의 물 오른 득점포를 통해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지만, 루니의 골이 침묵하면 고전했습니다. 특히 최근 치렀던 10경기에서 5승1무4패를 기록했는데 승리를 거두지 못했던 5경기에서 루니의 골은 없었습니다. 5경기 모두 루니가 출전했던 경기였습니다. 이것은 "루니를 꽁꽁 견제하면 승산있다"는 상대팀의 수비 작전이 적중했음을 의미합니다.

루니가 올 시즌에 넣은 19골 중에서 리그 10위권 이내에 속한 팀을 상대로 기록한 골은 총 4골입니다. 버밍엄 시티-아스날-토트넘-맨시티전에서 골을 터뜨렸고 아스날전 골은 페널티킥 이었습니다. 이것은 루니의 골이 약팀에게 분포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공교롭게도 루니의 파트너인 베르바토프가 올 시즌 리그에서 넣은 7골도 약팀에게 집중됐습니다. 위건(2골)-스토크 시티-선더랜드-블랙번-헐 시티 같은 수비력이 약하고 성적이 약한 팀들을 상대로 골망을 흔든 것이죠. 루니 시프트를 비롯해서 맨유 공격의 단점은 압박 수비가 뚜거운 강팀들에게 고전을 면치 못함을 알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지난 3일 리즈 유나이티전(이하 리즈) 패배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맨유는 리그1(잉글랜드 3부리그)에 속한 리즈를 상대로 슈팅 숫자에서 18-10(유효 슈팅 5-4)로 앞섰으나 점유율에서 46-54(%)로 밀리며 특유의 '점유율 축구'가 실종 됐습니다. 이것은 리즈가 미드필더진의 압박 범위를 넓히고 선수들을 거칠게 견제하여 루니-베르바토프 투톱으로 이어지는 공격 물 줄기를 끊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리즈 뿐만이 아닙니다. 최근 맨유전에서 승리하거나 비겼던 아스톤 빌라-풀럼-버밍엄 시티-맨시티도 리즈와 같은 방식의 경기 운영을 취했습니다.

맨유 점유율 축구의 화룡정점은 루니의 득점포입니다. 하지만 점유율 축구는 템포가 느리게 진행되다보니 상대팀의 수비 전열을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줍니다. 그래서 강팀 혹은 수비력이 끈끈한 팀들과의 경기에서는 미드필더진의 볼 배급이 자유자재로 연결되지 못했고 루니-베르바토프 투톱이 고전하거나 루니가 원톱으로서 발이 묶이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이것은 맨유의 점유율 축구가 다른 팀들에게 완전히 읽혔음을 의미합니다.

루니가 헐 시티전에서 4골을 터뜨릴 수 있었던 것은 선수 본인의 득점력 향상도 있었지만 역의 관점에서 보면 상대팀의 수비가 약했습니다. 헐 시티는 리그 최다 실점 1위(22경기 46실점)를 허용할 만큼 고질적인 수비 불안에 시달리고 있으며 중앙 미드필더인 세이 올로핀야나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참가로 중원이 얕아졌습니다. 만약 헐 시티가 수비 조직력이 견고했고 수비수들의 문전 집중력이 뛰어났다면 루니는 4골을 넣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그나마 헐 시티전을 통해 맨유 공격이 희망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마이클 오언의 선발 기용 및 타겟맨으로서의 성공적인 활약이었습니다. 오언은 루니의 앞선에서 상대 포백 사이를 파고들며 루니가 골문쪽으로 침투할 수 있는 공간을 벌어줬습니다. 이것은 헐 시티 수비진이 경기 초반부터 균열이 벌어지면서 루니에게 이른 시간에 선제골을 내주고 그 이후에도 문전에서 여러차례 골 기회를 허용하는 현상으로 작용했습니다. 그 여파는 후반 막판에 수비 집중력과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지면서(오언이 교체 되었음에도) 루니에게 몰아치기 골을 허용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그동안 오언의 선발 출전 기회가 적었던 이유는 루니와의 역할이 겹치기 때문입니다. 둘 다 타겟맨을 맡고 있어서 동시 선발 출전이 힘들었던 것이죠. 퍼거슨 감독으로서는 루니의 득점력을 늘려야 하는 만큼 오언의 활용 폭을 줄이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베르바토프가 부진하면서 오언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 됐습니다. 그래서 퍼거슨 감독은 헐 시티전에서 오언을 타겟맨에 놓고 루니를 쉐도우로 포진시켰고 이 작전은 성공적 이었습니다. 오언이 최전방에서 공간을 벌려줬던 것을 루니가 골문으로 파고들어 거침없이 골 기회를 노린 것이죠.

루니-오언 투톱은 루니-베르바토프 투톱, 루니 원톱 체제보다 파괴력이 강하다는 것을 헐 시티전에서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수비력이 끈끈한 팀들과의 경기에서도 파괴력에 불을 뿜을지는 의문이지만, 오언이 경기 감각을 완전히 되찾는다면 기존의 루니 시프트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입니다. 어쩌면 맨유는 오는 28일 맨시티와의 칼링컵 4강 2차전과 다음달 1일 아스날전에서 루니-오언 투톱으로 승부수를 띄울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까지 루니 시프트는 양날의 칼이 두드러졌습니다. 하지만 헐 시티전에서 빛을 발한 루니-오언 투톱이라면 기존의 공격 색깔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맨유의 점유율 축구가 수비력이 뛰어난 상대팀들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는 현 시점에서는 루니를 타겟맨이 아닌 쉐도우로 기용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베르바토프의 무릎이 좋지 않은 지금으로서는 오언에게 많은 선발 출전 기회를 주는 것이 타당성을 얻습니다. 오언이 공간을 벌려주고 루니가 골문으로 침투해서 골을 넣는 또 다른 형태의 '루니 시프트'는 프리미어리그 4연패를 꿈꾸는 맨유의 희망으로 자리잡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