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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전술 읽힌 맨유, 박지성이 희망이다

 

'산소탱크' 박지성(2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이 2010년 새해 첫 경기에서 왕성한 기동력을 발휘하며 팀 공격력에 힘을 실었습니다. 무엇보다 시즌 초반의 부진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평소의 경기력을 되찾았습니다. 아직까지 공격 포인트를 올리지 못한 아쉬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공격 포인트보다 이타적인 역량에서 빛을 발했던 선수임을 떠올리면 지금의 활약상은 충분히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박지성은 10일 오전 2시 30분(이하 한국시간) 세인트 앤드류스에서 열린 버밍엄 시티와의 2009/10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21라운드에 선발 출전하여 65분 동안 그라운드를 질주했습니다. 맨유는 전반 39분 카메론 제롬에게 코너킥 과정에서 선제골을 헌납했으나 후반 18분 스콧 던의 자책골로 골을 얻으며 1-1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습니다. 맨유가 슈팅 숫자 21-7(유효 슈팅 3-4), 점유율 62-38(%)로 크게 앞섰음에도 필드골을 넣지 못한것은 공격력 자체에 문제가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맨유의 점유율 축구, 박지성에게 호재로 작용하다

맨유는 버밍엄 시티 특유의 두꺼운 압박 수비를 극복하기 위해 기동력을 앞세운 공격에 중점을 맞췄습니다. 고정된 형태의 움직임을 펼치는 디미타르 베르바토프를 18인 엔트리에서 제외시키고 박지성을 과감히 선발로 기용한 작전을 선택했습니다. 박지성-루니-발렌시아의 스위칭과 활발한 움직임을 통해 상대의 수비 조직을 벗겨내겠다는 것이 맨유의 의도였습니다. 4-2-3-1의 원톱으로 세운 루니의 최전방 고립을 피하기 위해 긱스가 아닌 박지성을 왼쪽 윙어로 기용한 퍼거슨 감독의 선택은 적절한 것 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루니를 원톱으로 세운 것이 필드골 실패의 화근 이었습니다. 루니는 드록바-토레스 같은 타겟맨처럼 문전에서 골을 노리기보다는 활발한 후방 가담을 통해 공격 기회를 창출하며 동료 선수들과 연계 플레이를 하는 타입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루니는 버밍엄 시티전에서 후방으로 내려가 공격 기회를 노리는 움직임을 발휘했는데 문제는 상대 골망을 흔드는 킬러 역할을 할 선수가 없었습니다. 루니가 문전 앞에서 골을 노리는 기회가 줄어들고 이타적인 역량에 초점을 맞췄는데 이러한 활약이 박지성-발렌시아의 역할과 겹쳤기 때문입니다.

만약 맨유가 오언을 타겟맨으로 놓고 루니를 쉐도우, 박지성-발렌시아를 좌우 윙어로 놓는 4-4-2를 구사했다면 이날 경기가 잘 풀렸을 것입니다. 박지성과 발렌시아의 공격적이고 저돌적인 움직임을 강화하고 루니가 중앙에서 공격의 구심점 역할을 맡으면서 오언이 골을 해결짓는 전술, 또는 오언이 상대 수비를 흔들어주고 후방 공격 옵션의 문전 침투를 강화하는 전술을 썼다면 이날 경기에서 필드골을 생산했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그러나 박지성-루니-발렌시아 만으로는 상대의 두꺼운 수비 조직을 벗겨낼 수 있는 인원이 제한적이었고 루니가 킬러 역할을 하지 못하는 단점이 나타났습니다.

물론 맨유는 지난해 11월 29일 포츠머스전에서 루니를 원톱으로 놓는 4-2-3-1 전술로 4-0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당시 루니는 두 번의 페널티킥 골을 비롯한 해트트릭으로 팀에 대량 득점 승리를 안겼고 긱스-발렌시아가 철저히 보조 역할을 맡아 팀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당시 4-2-3-1 전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상대 수비 조직이 끈끈하지 못했고 미드필더와의 간격이 계속 벌어져 맨유가 골을 창출할 수 있는 공간을 얻는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짠물 축구로 프리미어리그 12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중인 버밍엄 시티를 상대로 4-2-3-1을 썼으나 고전을 면치 못한것은 퍼거슨 감독의 명백한 실책이었습니다.

맨유가 버밍엄 시티전 무승부를 통해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점유율 축구가 상대팀들에게 완전히 읽힌 것입니다. 속공에서 지공 위주의 경기를 펼치면서 공격 템포가 느려졌으나 점유율을 강화하는 맨유의 공격 전술이 한 수 아래의 팀들에게 공략당하고 있기 때문이죠. 맨유와 상대하는 중위권과 하위권 팀들은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치면서 맨유의 공격 길목을 차단하는데 주력하고 이 과정에서 움직임이 영민하지 않은 베르바토프가 고립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꾸준한 공격 포인트로 회춘했던 긱스의 선발 출전 기회가 최근에 부쩍 줄은 것도 이 때문이죠.(체력 문제도 있지만)

최근 박지성의 출전 기회가 많아진 이유는 퍼거슨 감독이 점유율 축구에 변화를 주기위한 의도임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박지성은 맨유가 치렀던 최근 프리미어리그 3경기에 모두 출전하여 공격적인 움직임을 펼치고 있습니다. 특히 긱스를 제치고 프리미어리그 2경기 연속 선발 출전한 것은 앞으로 출전 기회가 많아질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퍼거슨 감독이 점유율 축구의 약점을 깨기 위해 기동력을 강화하여 긱스 대신에 박지성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점유율 축구를 근간으로 박지성의 이타적 역량을 흡수하여 공격을 다변화 하겠다는 뜻입니다.

다행히 박지성의 컨디션은 시즌 초반보다 부쩍 좋아졌습니다. 가벼운 몸 상태로 경기 초반부터 왕성한 기동력을 발휘하며 맨유의 공격 분위기를 주도하는데 앞장서는 활약상은 시즌 초반의 무기함과 대조적 이었습니다. 버밍엄 시티전에서는 왼쪽 측면과 최전방을 자유자재로 누비는 활발한 움직임과 위협적인 문전 침투를 앞세워 상대 수비를 흔드는데 주력했습니다. 이날 경기에서는 동료 선수들에게 많은 패스 기회를 받았고 후반 20분 교체되기 전까지 28개의 패스를 기록해 공격 연결에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것은 박지성이 맨유의 점유율 축구에 적응했음을 의미합니다.(박지성은 풀타임 출전 할 때 40개 이상의 패스를 기록한 적이 드물었습니다.)

박지성은 패스에 비중을 두는 경기를 펼치면서 자신의 이타적인 역량을 살리며 동료 선수의 공격을 도왔습니다. 동료 공격 옵션이 전방으로 침투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거나 상대 수비에 혼란을 야기하는 커버 플레이를 펼치며 팀의 공격 분위기를 끌어 올렸습니다. 버밍엄 시티전에서는 패스도 적극적이었고 공간 플레이와 커버 플레이 모두 뛰어났습니다. 자신의 개인기로 상대 수비수를 따돌리거나 결정적인 골 기회를 날리는 성향의 선수는 아니지만(현지 언론에서 높은 평점을 받기 힘든 결정적 이유) 팀 전술에 녹아들며 자신의 이타적인 장점을 살리는 플레이는 칭찬 받아야 마당합니다.

앞서 언급한 것 처럼, 맨유가 오언이 선발 출전하는 4-4-2 형태로 경기에 임했다면 박지성에게 더 좋았을 것입니다. 박지성의 이타적인 역량이 맨유의 필드골로 직결될 수 있는 결정적인 상황을 연출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죠. 맨유의 4-2-3-1은 루니의 킬러 본능을 약화시켰고 '루니와 역할이 겹친' 박지성의 장점이 모처럼 크게 빛을 발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를 날리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박지성의 출전 기회는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 분명합니다. 박지성의 폼은 점점 올라오고 있으며 이제는 슬럼프에서 탈출했다고 보는것이 맞습니다. 그래서 퍼거슨 감독은 긱스의 도우미 본능을 기반으로 삼는 점유율 축구가 상대에게 읽히자 박지성의 기용 폭을 늘리며 팀 전술에 변화를 주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퍼거슨 감독의 4-2-3-1 선택이 아쉬웠으나 박지성이 점유율 축구의 희망으로 떠오른 것은 맨유의 시즌 후반 경기 운영에 플러스가 될 수 있는 요소입니다. 2010년 새해 첫 경기를 치른 박지성의 밝은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