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제대하고 몇년 지나면, 군대 바깥에 있는 산봉우리에서 김밥 먹으면서 예전의 군 생활 추억을 떠올릴꺼야"

4년 전 경기도 파주에서 군 생활을 하던 어느 날, 저와 함께 수다를 떨던 고참이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고참은 군 생활에 다양한 일을 경험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많은 추억을 쌓았던 이유 때문인지 군대에서 제대하면 몇년 뒤에 군대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군대 안에 들어가기 보다는 바깥에서 풍경을 바라보며 옛 시절을 회상하겠다는 것이 그것이죠. 고참은 다른 누구보다 군 생활을 잘했기 때문에(제가 생각하기에는) 그것에 대한 보람이 넘쳤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고참의 생각과 반대였습니다. '군 생활의 추억을 떠올리기 위해 군대 바깥에서 옛 시절을 회상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죠. 당시 저는 힘들게 군 생활을 했기 때문에 고참처럼 여유롭게 생각하는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군 생활을 즐기기보다는 매일마다 전역 일수에 시간까지 계산하면서 철책 안에서 벗어나는 그 날을 기다린 거죠. 그래서 저는 '군대에서 제대하면 파주에는 오더라도 군대 근처에는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다. 군 생활이 힘들었으니까'라고 머릿속으로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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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010년 1월 1일 임진각 전망대에서 찍은 자유의 다리 모습. 효리사랑은 파주에서 군 생활을 했으나 정작 임진각을 갈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1월 1일 새해에 임진각에 갔더니 소원 하나를 빌었죠. "남북 프로축구 통일" 말입니다. (C) 효리사랑]

그런데 군대에서 제대하고 사회 생활을 하니까 서서히 군 생활에 대한 예전의 추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한달 넘게 군대 시절에 대한 꿈을 꾼 적이 있었고 무슨 일을 할때마다 군에 있을때의 에피소드들이 떠올랐죠. 2년 동안 군대에 있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군 생활을 머릿속에서 잊어버리기 어렵더군요. 특히 군대 시절의 힘들었던 경험이 치열하고 냉정한 사회 생활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군대 가기 싫었던 저의 사고방식을 '군대 다녀오기 잘했다'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군 생활에 대한 추억을 넘어서 '나도 4년 전 그 고참처럼 군대 바깥에서 군대 시절의 추억을 떠올려볼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군대 안에는 들어갈 수 없어도 위병소 바깥에서 바라본다면 예전을 회상하는데 문제 없을거란 생각이 들었죠. 물론 면회를 통해서 군대 안에 들어갈 수 있겠지만 군대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 모두 제대했기 때문에 영내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어느 날 부터 '군대 바깥에서 추억 놀이에 빠져보자'고 결심했고 파주 일대를 돌아다니는 여행 계획까지 덧붙이면서 2009년 12월 31일부터 3일 동안 파주 여행을 다니기로 결심했습니다.

서울에서 문산까지 지하철로 올라오고 문산 일대를 돌아다니니까 군대에서 외박 나왔을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문산에서 군 생활을 하던 곳 근처로 이동할때는 군대에서 훈련할때의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모텔에 있을때는 군대 외박 시절에 혼자서 1박2일 동안 자기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행복에 빠졌던 지난날을 돌이켜 봤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인 1월 1일 아침 군대 바깥에 도착하여 위병소와 막사들을 보니까 군대 시절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들이 솓구쳤습니다. 예전에 군 생활을 하던 곳에서 몇년 뒤에 다시 돌아와 군대 시절 추억을 하니 감회가 새롭더군요.

저의 시야에서 가장 눈에 들어온 곳은 위병소 였습니다. 군대에서 제대하여 위병소를 빠져나가는 순간 두 팔을 하늘위로 팔짝 올리고 크게 소리를 질렀으니까요. 그런데 몇년 만에 위병소를 다시 바라보니까 현역 시절 근무를 섰던 추억을 비롯해서 '군 생활 이후 나는 그동안 무엇을 했을까? 정말 행복했을까?', '내가 몇년 뒤 이곳에 다시 나타난다면 그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금보다 부유했으면 좋겠는데'라는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군대 안에는 들어갈 수 없지만, 위병소 바깥에서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니까 지금의 저를 되돌아 볼 수 있었고 앞날을 향한 마음가짐을 새롭게 잡을 수 있었습니다. 위병소 바깥에 머물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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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철책에 <남북 프로축구 통일하기를/효리사랑 화이팅>이라는 문구가 담긴 리본 하나를 걸었습니다. 남북 프로축구 통일은 축구팬인 효리사랑이 두 눈으로 꼭 보고 싶은 일이며, 효리사랑 화이팅은 의미하는 내용이 큽니다. (C) 효리사랑]

파주 여행의 목적은 군 생활에 대한 추억을 나누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파주 여행을 하면서 꼭 가고 싶은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임진각 입니다. 파주하면 임진각이고 임진각은 파주에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군 생활을 하면서 임진각을 갈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임무 수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번에 꼭 가고 싶었습니다. 임진각은 자유의 다리를 볼 수 있고 철책까지 바라보면서 군대 시절 훈련했던 경험을 더듬을 수 있는 이점이 있었습니다. 자유의 다리와 철책, 제야의 종, 기념비 등을 보니까 한국이 분단 국가라는게 실감이 가더군요.

임진각을 방문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부분은 철책에서의 리본 이었습니다. 임진각이 서쪽전선에서 민간인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이기 때문이죠.(임진각 위에 있는 도라산역은 출입절차가 필요하고 방문 시간이 제한적) 그래서 리본 하나에 1,000원씩 팔으며 매직으로 글자를 새겨 메시지를 남기고 그것을 철심으로 묶어 철책에 매달 수 있도록 조성 되었습니다. 장소가 임진각인 만큼, 통일 염원에 대한 메시지들이 많았죠. 외국인들이 리본에 글자를 새기는 모습 또한 인상적 이었습니다.

특히 제가 임진각을 방문한 날이 1월 1일 이었기 때문에 메시지를 새기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리본을 구입하고 무엇을 쓸지 머릿속으로 고민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축구팬이기 때문에 축구에 대한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고 개인적으로도 인생에 대한 성공을 바랬던 터라 그것까지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효리사랑 화이팅'이라는 메시지를 리본 뒷쪽에 적었는데 문제는 축구쪽 이었습니다. 남아공월드컵에서 남북한의 선전을 바라는 내용을 적을지, 아니면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꺼낼지 말입니다.

제가 축구에 대해서 적은 내용은 '남북 프로축구 통일하기를' 이었습니다. 장소가 임진각이다보니 통일이라는 키워드가 익숙했던 것이죠. 남북한의 남아공월드컵 선전을 기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축구쪽에서 통일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소재가 바로 프로축구 통일 이었습니다. 한 민족이 통일을 원하는 것 처럼, 축구팬 입장에서도 남북 프로축구 통일을 바랄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남아공월드컵은 올해 치러지는 축구 이벤트지만 남북 프로축구 통일은 한 민족이 하나로 합쳐진 이후에 가능한 시나리오라서, 적어도 임진각에서 만큼은 남북 프로축구 통일에 애착을 느꼈습니다.

사실, 남북 프로축구 통일은 제가 예전부터 원했던 시나리오 였습니다. K리그 어느 모 팀의 팬으로서 북한 원정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죠. 과거에 대구, 울산, 포항, 대전 같은 지방 원정을 다니며 응원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북한쪽에 초점이 모아지더군요. 만약 남북 프로축구가 통일이 된다면 평양 원정, 신의주 원정, 함흥 원정, 개성 원정 같은 기분 좋은 시나리오가 현실화 됩니다. 북한에서 프로축구를 보는 것 뿐만 아니라 북한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풍경도 바라보고, 현지 주민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저절로 생깁니다. 한마디로 축구를 통해 북한 지역을 여행다니는 것입니다.

또한 축구는 소통의 스포츠 입니다. 남북한 축구팬들과 국민들이 서로 친근하게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키워드는 축구가 아닐까 합니다. 남북한은 반세기 넘게 분단을 겪으면서 문화적인 차이점이 뚜렷해진 아쉬움이 있습니다.(북한이 남한의 걸 그룹과 힙합을 좋아하고 남한의 젊은 세대들이 북한가요를 좋아할까요?) 반면에 축구는 다릅니다. 남북한 모두가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이기 때문이죠. 남한 축구팬들이 정대세의 파워풀한 플레이를 좋아하고 홍영조와 안영학의 경기력을 칭찬하는 것 처럼, 북한 축구팬들도 남한 선수들의 경기를 좋아할 것입니다. 북한 축구의 실력도 우리와 대등하기 때문에 경기력 편차가 존재하지 않는 이점이 작용합니다.

만약 남북 프로축구가 통일 된다면 대한민국의 프로축구는 유럽 선진국들 처럼 20개의 팀으로 1부리그를 운영하고 2부리그와 3부리그를 확장할 수 있는 이점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경쟁력이 저절로 강화되어 프로축구의 질적인 강화를 꾀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프라가 커지면서 대한민국 축구의 내실이 탄탄해지고 월드컵과 올림픽 같은 국제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것입니다. 물론 남북한이 통일 된 이후에 가능한 시나리오지만, 축구팬으로서 그 날이 빨리 왔으면 하는 마음을 임진각에서 간절하게 생각했습니다. "남북 프로축구 통일하기를/효리사랑 화이팅"이라는 문구와 함께 말입니다.
 

-임진각, 그 외의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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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군대 시절에 파주에서 서울로 이동하려면 문산에서 경의선 열차를 타고 가야했는데, 이제는 문산도 지하철로 갈 수 있습니다. 지하철로 문산에 가니까 기분이 특별하더군요. (C) 효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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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모텔에서 먹었던 치즈 크러스티 피자. 맛있었습니다. (C) 효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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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진각으로 가는 버스를 타니까 크리스마스 트리와 복조리가 있었더군요. 서울에서는 이러한 버스를 찾아보기가 힘들기 때문에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1월 1일에 버스를 타서 그런지 기분이 특별해지더군요. 저에게 올해는 큰 행운이 찾아온다는 뜻이겠죠. (C) 효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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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문산 버스 터미널 모습. 문산 부근에서 군 생활을 했던 분들이라면 이곳을 아실 겁니다. (C) 효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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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드디어 임진각에 도착 (C) 효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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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임진각에 놀이공원이 있었는지는 그날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임진각에서 바이킹을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C) 효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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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국이 분단 국가임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C) 효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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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진각 전망대 1층에서는 파주 지역 출신들을 중심으로 한국 유명인사들의 손바닥 자국이 남겨져 있었습니다. 안정환과 조재진의 손바닥을 이곳에서 볼 수 있네요. 특히 조재진은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서 자랐더군요. (C) 효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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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진각 전망대에서 본 자유의 다리 모습 (C) 효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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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진각 전망대에서 본 제야의 종 (C) 효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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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진각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전방쪽을 바라보시는 시민들 (C) 효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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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철책 근처에서는 파주시 상품과 북한 상품을 판매하는 장소가 있었습니다. (C) 효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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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철책에서는 리본으로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한자와 영어, 한글까지 메시지가 다양하네요. (C) 효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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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통일에 대한 내용을 떠나서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엘범 대박, 대학교 합격, 가족의 행복, 그리고 <대한민국 15대 대통령 고향 "하의도민">이라는 문구도 볼 수 있었습니다. (C) 효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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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진각 전망대 오른쪽에서는 전통놀이 행사가 있었습니다. (C) 효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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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임진각 한쪽에서는 어느 모 방송국의 신년대축제 무대를 철거하는 작업이 한창 이었습니다. (C) 효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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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알록달록한 조형물들이 있다보니 이국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C) 효리사랑]

Posted by 나이스블루